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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광주광역시]광주시 회개로와 전평제 탐방기(2013.7.20)-광주랑

 

광주광역시 회재로와 전평제 탐방기(2013.7.20)

 

회재(懷齋)로와 운리사(雲裏祠)

  안전행정부는 1918년 일제강점기에 지번이 부여되어 100여 년간 사용했던 주소의 기준을 지번에서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바꿔진다. 위치정보체계 도입으로 국민생활양식의 일대 혁신을 기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하하기 위하여 21세기 물류 정보화시대에 맞는 체계도입이 된다. 2014년 도로 명 건물명 주소체계가 전면시행이 가까워져가며 도로 명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광주시내에도 충장로, 금남로, 의재로 등 수많은 명칭으로 불러지며 광주시의 역사속에 유명한 옛 선인들의 호를 명명하여 향토의 지역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근래에는 그 외 국제행사 월드컵4강로 등으로 명명하여 역사속의 흐름을 후세에까지 잘 알 수있게 되었다.

 

  본 블로거 기자는 광주시 시내도로 회재로 편으로 역사속의 그 뜻을 알아보았다. 회재로는 광주서구 칠석동 950-1시작 백운동639-1까지 3.4km를 말한다. 백운동-풍암지구-농산물유통단지-매월동-칠석동으로 이어진다.

<문헌>인물고(人物考)와 위키 백과의 자료에 의하면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은 현 광주시 매월동에서 태어나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중종 21년(1526~선조 26년1593년)회재 선생은 조선시대에 성리학과 예학으로 이름을 널리 날린 학자요 우국지사이다. 나주목사 등 관직을 역임했으며 임진왜란이 의병활동을 하였다.

  음성박씨 문중에서는 1997년 운리사(雲裏祠)를 복원하여 영정을 모시고 있다. 운리사에는 <회재유집> 목판화는 광주시 유형문화제 23호로 등록되어 있다. 금당산 하부 자락에 자리한 운리사는 절이 아니며 회재의 영정(影幀)과 회재유집지방문화재 목판이 보관되어 있는 사당이다. 현재는 아파트 숲에 가려서 찾기가 어려운 아쉬움이 있다. 광주시에서는 그 공을 기려 도로 명 회재로 로 명명하게 되었다.

 

운리사주소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769-1

새 주소안내변환기 : http://www.juso.go.kr/openIndexPage.do

 

전평제와 회재(懷齋)선생

  인물고(人物考) 문헌에 의하면 개산방죽(介山防築)회재선생은 광주 선도면 개산 현재 매월동 회산에서 살면서 개금산 아래 개산송당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선생은 43세 때 개산 남쪽의 물을 끌어드려 농사를 짓기 위해 방죽을 막았다. 방죽 위에 수월당(水月堂)을 짓고 이 정자에서 고봉 기대승과 같이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그 후 1943년 매원동, 벽진동 농경에 농업농수 공급을 위하고 재해방지를 위해 축조 중앙에 인공섬을 만들어 산책목교를 설치하고 다리 입구에는 2013.5월 전평제에 옛날의 수월당을 광주시 서구청에서 완전 복원하여 산뜻하게 단장되어 전평제의 중앙에 산책나무다리 입구에 자리하여 전 평제를 찾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현재 시민들이 매월저수지라고 말하면 더 쉬게 알고 있으며 완전한 호수공원으로 변모하였다. 시내 쪽으로는 계금산을 뒤로하고 앞쪽으로는 백마산이 있는 기슭에 위치한 경관이 수려한 전평제는 도심 속에 있는 공원이지만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 물이 맑기로 유명하며 광주시에서는 모기유충구제 시범지역으로 선정 미꾸라지를 양식하고 있다. 산책로에는 야생화를 조성하였고 연꽃이 개화를 시작하면서 산책로에 여름 꽃 배롱나무가 만개해 여름의 운치를 더해준다.

 

전평제(매월저수지) : 광주광역시 서구 매월동 513

전 평제 면적 : 46,992㎡

 

광주광역시 광주랑블로그 기자단 최찬규

 

 

회개 사당 운리사

회개 사당 운리사

회개 사당 운리사

전평제(매월저수지)

전평제(매월저수지)

전평제(매월저수지)

전평제(매월저수지)

전평제(매월저수지)

전평제(매월저수지)

전평제(매월저수지)

전평제(매월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