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겨라 광주/문화와 예술

[광주광역시] 민주주의 오월인권길 답사

 

 

 

5·18 민주화 운동 35주년을 맞아, 광주에 있는 오월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월길은 총 5개의 테마 18개의 코스로 나눠져 있으며,

5·18 민주항쟁 사적지와 문화현장을 만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중에서 열망의 테마인 '오월인권길'을 2년 동안 답사한,

27개 기념 사적비의 위치와 내용을 아래의 사진 순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

 

 

 

 

 

 

 

오월길 지도 및 자료 제공은 구 카톨릭센터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1층 방문자센터를 이용하시거나

홈페이지를 통해서 자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http://518road.518.org/)

 

 

 

 

 

 

 

 

1. 전남대 정문 사적 1

(북구 용봉동 300/ 정문 진입 후 우측 화단)

 

 

 

이곳은 민주주의 역사가 시작된 곳으로 80년 5월 17일 자정 비상계엄이 전국 확대에 따라

전남대에 진주한 계엄군을 학생들을 구타하고 구금하였으며,

18일 오전 10시경에 출입을 막는계염군에게 항의하면서 최초의 충돌이 있었던 곳입니다.

 

 

 

 

 

 

 

2. 광주역 광장 사적 2

(북구 중흥동611-2 / 역사 입구 광장 내 도로변)

 

 

이곳은 광주시민과 계엄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곳으로, 무자비한 유혈 진압에 항의하고

나아가 비무장 시민들에게 발포, 사상자들이 나왔으며 21일 아침 주검 2구가 발견되어 이들 주검이

도청 앞 광장에 옮겨오자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민주화운동에 동참하여 항쟁은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3. 5·18최초 발포지 사적 21

(동구 계림동 250-91 / 통일회관 앞 도로변)

 

 

 

 

이곳은 계엄군이 비무장 시민을 향해 최초로 발포를 했던 곳으로

5월 19일 장갑차가 시위 군중에서 포위되자 시민에게 발포, 당시 조대부고 학생이 총상을 입었고

그 이후 투쟁이 한창 더 거세진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4. 구 시외버스공용터미널 사적 3

(동구 대인동 7-12 / 지하도 입구 광주은행 화단 내)

 

 

 

이곳은 당시 시외버스공용터미널로 계엄군은 대합실과 지하도까지 난입하여

총검을 휘둘렀다고 하며,, 이 소식은 버스를 타고 나간 사람들에 의해 곳곳에 전파되었고,

한 때 공수부대 숙영지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5. 광주MBC옛터 사적 7

(동구 궁동 18-1/ 김재규경찰학원 앞 보도)

 

 

 

 

계엄령 하에 통제된 언론이 항쟁의 진실을 보도 하지 않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광주MBC는 20일 밤에 불에 탔습니다.

다음날 새벽 KBS와 세무서에도 화재가 났으며 국민의 세금이 국민을 짓밞는

계엄군을 유지하는데 사용된 것에 대한 항의와 응징의 표현이었다고 합니다.

 

 

 

 

 

 

 

 

6. 녹두서점 옛터 사적 8

(동구 장동 55-7 / 자비신행회 앞)

 

 

 

 

이곳은 암울한 시대, 민주청년학생들이 시국토론을 벌이던 사랑방입니다.

사회과학서적을 주로 취급했던 곳이며,

이곳에 모여 격문과 현수막 제작 및 민주화촉구 궐기대회 준비를 논의했다고 합니다.

 

 

 

 

 

7. 광주YWCA옛터 사적 6

(동구 대의동 75-1 / 재봉로 길가)

 

 

 

이곳은 여성운동의 산실이자, 핵심적 투쟁활동의 근거지로 23일 녹두서점에서 장소를 옮겨 활동이

 체계화되었으며, 24일 청년들이 '민주시민화보'와 '투사회보' 등을 제작하여 항쟁소식을 전파하였고, 민주인사에게는 사태수습을 위한 회의 장소였습니다.

 

 

 

 

 

 

8. 금남로 일대 사적 4

(동구 금남로33-5 / 구 가톨릭빌딩 입구)

 

 

 

이곳은 5·18 민주화운동의 거리로, 18일 카톨릭센터 앞에서 최초 학생 연좌시위가 발생했고,

20일 저녁 택시와 버스를 중심으로 각종 차량이 참가한 시위도 발생,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전까지 30여만 광주시민이 매일 운집한 곳입니다.

 

 

 

 

 

 

 

9. 광주YMCA 사적 5-4

(동구 금남로 119 / YMCA건물 1층 기둥)

 

 

 

이곳은 항쟁지도부의 주요 옥내집회 장소이며,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대한 총기 훈련을

 실시했던 곳입니다. 도청과 함께 최후의 항전지이며 항쟁 이후에도 수많은 집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10. 상무관 사적 5-3

(동구 금남로112-1 / 상무관 입구 좌측)

 

 

이곳은 당시 희생자의 주검을 임시 안치했던 곳으로, 관을 안치하고 빈소가 차려졌으며,

항쟁기간 동안 가족들을 찾던 시민들이 분노의 눈물을 삼키던 곳입니다.

 

 

 

 

 

 

 

 

 

11. 5·18민주광장 사적 5-2

(동구 금남로 115-1 / 옛 수협 터 앞 버스정류장)

 

 

이곳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으로, 당시 분수대를 연단으로 각종집회를 열어

항쟁의지를 불태웠으며, 18일 이전 3일 동안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대규모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던 곳입니다.

 

 

 

 

 

 

12. 구 전남도청 사적 5-1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구 전남도청 정문 우측)

아직 사적비가 없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5·18민주화운동 기록물로 등록

기념비와 5·18 민중항쟁 알림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항쟁본부이자 27일 최후의 격전지로 많은 시민군이 산화한 곳으로,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계엄군은 21일 시민들에게 무차별 발포 후,

시민들의 결사항전에 쫓겨 외각으로 철수하였으며, 이후 시민공동체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13. 남동성당 사적 25

(동구 남동 55 / 남동성당 정문 우측)

 

 

 

이곳은 22일 당시 주임신부를 비롯한 광주 유력 민주인사 12명이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수습대책을 논의했던 장소로, 김수환 추기경에게 광주 상황을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하여 5·18민주성당으로 명명되었다고 합니다.

 

 

 

 

 

 

 

 

 

 

14. 전남대학교 병원 사적 9

(동구 학동457-3 / 장례식장 앞 화단)

 

 

이곳은 당시 부상당한 시민과 시민군을 헌신적으로 치료한 야전 병원이며,

시민 헌혈 운동도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민군은 이 병원 옥상에 무기를 갖추고

계엄군과 저항전투를 펼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15. 조선대학교 사적 12

(동구 서석동 48 / 정문 입구 소공원)

 

 

 

이곳은 민주화운동 이전부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으며, 항쟁기간에는 시민군 지도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18일~21일까지 시내 곳곳에서 연행된 시민과 학생들이

이곳에서 계엄군에게 폭행을 당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16. 배고픈 다리(현 홍림교) 사적 13

(동구 학동 273-1 / 남광주 농협 앞)

 

 

이곳은 21일 시민군이 시내중심가에서 계엄군을 물리친 뒤 지역 방위한 곳으로

조선대 뒷산으로 퇴각한 계엄군이 다시 시내로 오는 것을 대비하여

방어망을 구축하고 경계를 펼친 곳입니다.

 

 

 

 

 

 

17. 주남마을 인근 양민 학살지 사적 14

(동구 소태동 175 / 용산 차량기지 맞은편)

 

 

 

이곳은 조선대 뒷산을 넘어 퇴각한 계엄군들이 오가는 차량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한 곳으로,

특히 23일 승객을 태운 버스를 사격하고, 부상당한 2명을 끌고 가 살해 후 매장한 곳으로

주민의 신고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18. 광목간 양민 학살지 사적 15

(남구 송하동 538 / 광주대 건너편 승강장)

 

 

 

이곳은 24일 계엄군간의 오인사격으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당한 곳이며

오인사격 분풀이로 광목간 도로 주변 주택들을 수색하여 무고한 주민들을 살상,

항쟁기간 중 이곳을 지나던 민간차량을 사격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곳입니다.

 

 

 

 

 

 

19. 광주기독병원 사적 10

(남구 양림동 264 / 병원 입구 화단)

 

 

 

이곳은 부상당한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한 민주 의료의 현장이며, 수혈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시민들과 초등학생들까지 헌혈에 동참한 곳으로 항쟁 뒤에도 부상자들을 가족처럼 돌 본 곳입니다.

 

 

 

 

 

20. 구 광주적십자병원 사적 11

(동구 불로동 174 / 병원 밖 횡단보도 도로변)

 

 

 

이곳은 당시 부상당한 시민과 시민군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본 곳이며 피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나서 헌혈하며 훌륭한 시민 정신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21. 광주공원 광장 사적 20

(남구 구동 21-1 / 광주공원 입구 중앙 계단)

 

 

 

 

이곳은 인근 시, 군 지역에서 총과 탄약을 가져와 시민군을 편성하고 사격술을 훈련했던 곳으로

24일 도청으로 통합될 때까지 순찰과 차량 등록 등, 일시적 치안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나중에 치열한 격전지 중에 한 곳이라고 합니다.

 

 

 

 

 

 

 

22. 양동시장 사적 19

(서구 양동 5-10 / 양동시장역 1번 출구)

 

 

이곳은 시민군들에게 주먹밥과 약, 생필품을 제공하는 등

모든 상인과 시민이 하나로 되어 대동정신을 발휘한 곳이라고 합니다.

 

 

 

 

 

 

23. 농성광장 격전지 사적 16

(서구 농성동 671-2 / 농성광장 지하철 입구)

 

 

 

이곳은 시내에서 쫓겨 온 계엄군이 통제선을 설치, 농성광장의 시민군 방어선과 대치 중

인근주택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시민이 희생당한 곳이라고 합니다.

 

 

 

 

 

 

24. 국군광주병원 사적 23

(서구 화정동 산45 / 광송간 도로의 병원 옛터 입구)

 

 

이곳은 연행된 시민들이 심문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으로 부상당하자 끌려와 강제 치료를 받던 곳으로

치료과정에서도 고초를 겪었다고 합니다. 이곳 의료진들은 시민들이 보안대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거의 모든 환자들의 상태를 거짓으로 보고해 주었다고 합니다.

 

 

 

 

 

 

25. 505보안부대 옛터 사적 26

(서구 쌍촌동 993-1 일원 / 구 송원마트 옆길 안)

 

 

 

이곳은 민주화운동을 전후로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예비 검속하여 구금한 곳으로

민주화운동을 불순한 폭동으로 왜곡 및 조작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고문과 폭행을 자행한 곳이라고 합니다.

 

 

 

 

 

 

26. 상무대 옛터 사적 17

(서구 치평동 1258 / 예술의전당 예식장 도로변)

 

 

 

이곳은 계엄사령부 전남북 계엄분소가 있었으며 시민수습대책위원들이 드나들며

협상을 벌였던 곳입니다.

항쟁 뒤에는 3천명이 붙잡혀와 고문과 구타를 당했고 택지개발로 인해 인근에 옮겨져 복원되어

전시관 설치, 그날의 역사를 증명합니다..

 

 

 

 

 

 

 

 

27. 들불야학 옛터(광천동성당) 사적 27

(서구 광천동 640 / 광천동성당 내)

 

 

이곳은 들불야학의 일곱 열사들이 투사회보를 제작한 곳이며, 광천시민아파트에서 주민운동과 야학활동을 펼치고 지도부가 참여하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곳입니다.

 

 

 

 

 

 

 

 

28. 무등경기장 정문 사적 18

(북구 임동 316 / 정문 버스정류장 근처)

 

 

 

이곳은 20일 계엄군의 과잉진압에 격분한 운전기사들이 모여 항쟁 참가를 선언,

차량 시위를 시작한 곳으로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금남로로 향하며

연대의식과 항쟁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 넣은 계기가 되었으며,

매년 5월 20일을 '민주기사의 날'로 정하여 기념한다고 합니다.

 

 

 

 

 

 

 

29. 광주교도소 사적 22

(북구 문흥동 838-4 / 교도소 입구 좌측 보도)

 

 

이곳은 계엄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담양, 순천방면으로 이동하는 차량과 시민에게 중화기로

사격을 가해 희생자가 발생하였으며, 시민들이 끌려와 고문을 받고, 이로 사망한 희생자 시신은

야산에 매장되어 5·18직후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30. 5·18구묘지 사적 24

(북구 수곡동 산29-2 / 구묘지 입구 우측)

 

 

 

이곳은 민중항쟁 당시 산화한 영령들이 묻혔던 곳으로 '망월동 묘지'라고 부르며,

항쟁이 끝나고 계엄군은 사망자들을 폭도라고 부르며 29일부터 시민들은 장례식을 치루지 못하고

리어카에 실어 간략하게 매장했다가 94년 묘지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97년 민주묘지가 조성되어

희생자들이 새롭게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사적 기념비 27개가 설치된 곳을 다 소개해드렸습니다.

한곳씩 찾아가 흔적들을 찾아보니 그날의 아픔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매년 518일이 되면 오월길 도보 순례단을 모집하오니,

그날의 역사적 흔적을 만나 사람과 사람을, 역사와 현재를 이어 줄 그 길을

걸어보면서 민주주의 역사의 한 축을 경험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