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근교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에 위치한
기념물(전라남도 기념물 제41호)인 정암 조광조선생 적려유허비를 탐방해 보았다.
적려란 귀양 또는 유배를 뜻하고,
유허비는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워두는 비를 뜻하므로
적려유허비란
유배지에 세워진 비라고 보면 될 듯 하다.
광주광역시에서 화순군 화순읍을 거쳐 능주면으로 빠지면
목사고을 능주문이 보인다.
목사고을.
목사가 있었던 고을, 즉 사또가 있던 곳이네요.
지금은 면단위(능주면)이지만,
광주, 나주 등과 함께 큰 고을이었다고 합니다.
이 문을 지나 사거리에서 우회전.
조광조선생 유배지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보이는 삼거리에서 거의 7시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된다.
한 2~3백여미터를 지나 커브길을 감싸고 오른쪽으로
조광조선생 유배지가 나온다.
바로 건너편 길가에 주차를 하고,
적려유허비 입구 담장을 촬영해 보았다.
이 곳이 입구다.
조금은 초라해 보인다.
새로운 도로주소명이네요.
정암길 30.
정암 조광조선생이 머물렀던 곳을 복원해 놓은 듯 하다.
선생의 옛 거주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추모비각(追慕碑閣)이라고 적힌
낮고 좁은 문을 지나면
적려유허비를 볼 수 있다.
앞면은 ‘정암조선생적려유허추모비’라는 글씨가 적혀있고,
뒷면에는 선생의 유배내력이 적혀있다.
이 비는 정암 조광조(1482~1519)선생이 기묘사화로 인하여
유배왔던 이곳에서 사사당한 것을 기록한 것이라고 햔다.
선생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이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등 개혁을 단행하다가
중종 14년(1519) 훈구파의 모함을 받아
이곳 능주면 남정리에 유배되어
1개월만인 그해 12월 20일에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그 후 현종8년(1667) 당시의 능주 목사인 민여로가
우암 송시열의 글을 받아
이 비를 세워 선생의 넋을 위로하고 그 뜻을 되새기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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