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승지를 지낸 정엄(鄭淹, 호 楊村)의 효행 정려, 명종 때 문과 급제한 정엄은 5도 관찰사를 지낸 정만종의 아들로 기질이 온아하고 사람됨이 단정 성실, 일을 정확히 처리하였다. 선조 4년, 전라도의 강직한 관리 3인에 뽑혔고 남원 부사 재직 시 민을 잘 돌보아 백성들이 따랐다. 효성이 지극하여 병중인 모친을 밤낮 돌보다 모친이 돌아가시자 슬픔에 병을 얻어 별세, 1611년 그효성을 기려 정려가 하사되었다. 1975년 석조로 재건. 문헌 고증은 없으나 한양까지 주인의 문서를 심부름 하다 죽은 충견 이야기가 전해져 후대에 정려 한켠에 견석상을 세웠다. 이곳 강변에는 물레방아가 있었다.
촬영편집 최종환(광주근대역사문화해설사, 광주시 블로그 기자단) 자료출처 : 송인동 교수(호신대, 역사문화자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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