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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마애여래불상의 신비

마애여래불상의 신비


백석산자락 운천사 가는길

광주 상무지구에서 시내쪽으로 들어오다가 호남대학교 쌍촌캠퍼스 뒤쪽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아파트단지가 훌쩍 쏫아있고 그 옆으로 나지막한 백석산이 있다. 한때는 심심산골로 함부로 발걸음을 하기 어려웠던 곳이지만 지금은 동네 뒷산에모 못 미치는 언덕같은 산이다. 그럼에도 이산에는 이름난 절이 두곳이나 있다. 산 정상에 있는 향림사와 산 언저리에 있는 운천사다. 이 중에서 절의 내력이나 명성으로 보아 운천사를 놓치면 안 된다.
난 우연한 기회로 이곳 수도승 지필스님과 인연이 닿아 여기를 가끔 찾는다. 자그만 승방에서 나누는 차 한잔이 최고의 공양이 되고 불심이 되는 느낌좋은 곳이다.

운천사 외관
운천사 외관

바로 앞으로 아파트가 있고 산도 낮아 절 자체는 볼품이 없다. 하지만 운천사에는 우리나라에서 정말 흔히 보기 힘든 것이 있다. 중국의 윈강석불에서나 볼수 있는 풍경이 여기에 있다. 그 귀한 모습은 밖에서는 볼 수 없다. 마치 불법의 귀속인양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처음 대웅전을 들어선 사람들은 누나 아하!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 모습을 보자. 대웅전 정면에는 다른 절에서는 항상 있는 불상이 없다. 대신 커다란 바위가 절 방안에 들어와 있다. 바위 밑에 여느 절처럼 배단이 있고 앞에는 불단까지 갖춰져 있다. 바위앞에 어째서 라는 의구심이 들기전에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눈에 들어온다. 바위만큼이나 크다. 이처럼 마애불을 주불처럼 전각안에 모시고 있는 곳은 해남 대둔사 북미륵암 용화전 빼고는 운천사가 유일하다.

운천사 마애불
운천사 마애불

정면에서 찬찬히 보자..
뭔가 어색하다. 비례가 안맞다. 머리가 작고 몸통이 너무 크다. 논산 관촌사의 은진미륵에서 머리위의 탑을 빼고 앉여놓은 모습이다.  귀가 길게 늘어지고 얼굴이 넓으며, 길쭉한 눈. 근엄한 얼굴표정이 딱 그렇다.
비대칭적인 불상은 고려시대 불상의 공통된 특징이니 이를 특징화하지 않더라도 아주 귀한 자료라는 얘기임에는 틀림없다.또한 마애불의 모양을 보건대 약함을 들고 있는 것 같아서 대부분 약사불로 이해한다.

마애불 정면 모습
마애불 정면 모습

허나 지필스님처럼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분들도 있다. 얼굴의 표정이나 주변 형상등이 비로자나불로 해석함이 옳다는 것. 불상을 옆에서 자세히 보면 손가락 모양이 약함을 든 약사불과는 다르다. 오히려 손을 가슴으로 올리지 않았을 뿐 비로자나불의 지권인을 취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경우를 밀교의 영향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이 부처가 조성된 시기를 고려로 봤을 때 신라말의 밀교들이 전라도까지 전파된 때와 일치한다. 밀교에서 비로자라불은 오방불의 중심으로 일신불이라 한다. 말 자체로는 태양, 즉 광명을 의미한다. 이러한 밀교적인 모습은 대표적으로 운주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그와 조성시기가 비슷한 이곳 또한 이러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이 이 절에서 중요하진 않다. 마애불의 신비한 의미와 형상이 귀하다는 것을 유념해둘 뿐이다.

우측에서 본 마애불
우측에서 본 마애불

좌측에서 본 마애불
좌측에서 본 마애불

운천사는 규모에 비해 내력은 만만찮다. 원효대사 마애불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걸 보면 천년 고찰이라 해도 무방하다. 원래의 이름은 정토사였다 한다. 원효대사가 무등산 원효사에 주석하던 어느 날 서쪽 하늘에서 서기가 가득히 서린 것을 보고 제자 보광화상을 보냈더니 큰 바위에서 빛이 솟아나오므로, 그곳에 이 마애불을 새겼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후 절의 중흥기나 쇠퇴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절은 지금도 개축중이다.

운천사 대웅전 내부
운천사 대웅전 내부

운천사 대웅전 외관
운천사 대웅전 외관

 

출처 : 유투어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