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선비들의 뿌리, 광주향교 ~
영남의 선비문화는 서원에서 탄생했고, 호남의 선비문화는 정자에서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는 선비라는 말이 꼭 들어있다. 서원이나 정자는 양반들의 세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로라 하는 권세가 없었던 사람들은 어디서 공부를 했을까? 바로 향교다. 몰락한 양반이나 일반 서민의 자제들이 글을 배웠던 곳이 향교였다. 그래서 정자문화로 상류층의 행색을 가름했던 호남에서는 향교가 중요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각 고을마다 이름난 향교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광주향교도 안동의 도산서원만큼이나 중요한 공부방이었다는 얘기도 된다.
광주향교
광주향교 입구
도심 속의 광주향교는 여러채의 고풍스런 전통 한옥으로 아담하게 배치되어 있다. 흔히들 향교란 유교전통을 공부하는 곳 정도로만 이해할 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러나 향교는 지금의 학교이상의 중요하고 필요한 기관이었다는 걸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 정도의 관심만으로도 향교는 썩 다르게 느껴진다. 광주향교는 광주의 중심인 충장로나 금남로에서도 멀지 않아 쉽게 찾을 수 있다. 시내 중심권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도 행운이다. 광주천을 사이에 두고 도심과 마주하고 있는 광주공원입구에서 좌측으로 50m만 가면 향교의 정문이다.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 금방 알 수 있다. 향교 바로 앞에 간선도로가 있으나 교통량이 많지 않아서 일까 조용한 산사에 들어온 기분이다.
광주향교 명륜당
명륜당앞에서 본 향교풍경
향교앞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하마비. 누구든지 여기서는 말을 내려 걸어가야 한다는 비석이다. 하마비 앞에는 비각이 있는데 안에는 수십개의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이것저것 풀이해보면 광주향교는 육백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데, 공자님을 비롯한 다섯 분의 성인과 두 분의 송나라의 현인, 그리고 신라, 고려, 조선조에 이르는 십팔 현인들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단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국립중고등학교같은 역할을 했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향교앞 비각
비각안에 있는 비석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중앙에 두고 명륜당이 맨 앞에 있고 양쪽에 동제와 서제. 한단높은 곳에 대성전이 들어서 있다. 이곳 명륜당 에서는 유교경서의 강의 하고 있어 때 맞춰가면 교실에서 서생들의 글 읽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복을 입은 훈장님 앞에 중장년의 서생들이 혼나는 모습이란...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다. 요새는 돈주고도 보기 힘든 장면이지 않은가..
향교앞 하마비
출처 : 유투어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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