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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독서의 계절, 광주의 작가- 한 강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가을전어, 가을낙지, 가을꽃게... 식탁도 어느덧 제철음식으로 가을을 알려온다. 풍요로 넘치는 가을, 신선한 제철음식도 좋지만 누가 뭐래도 우리에게 필요한건 마음의 양식 아닐까? 음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독서로 채워보자. 몸과 마음을 두루 살찌우는 가장 좋은 자양분이 바로 문학이다.



올해 5, 한국인 최초의 맨부커 상 수상소식이 대한민국 문단과 서점가를 휩쓸었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의 맨부커 상은 노벨문학상과 함께 세계 최고권위의 문학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영광을 한국인이 거머쥐었다고 하니 한국에서는 경사가 났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느껴지는데, 그 영광의 수상자가 우리 광주의 작가라는 소식은 특별한 감격까지 자아낸다. 게다가 그의 소설 중에는 광주의 향기가 짙게 밴 작품도 있지 않은가? 광주인으로써 그의 소설을 대하는 자세는 결코 다른 작품들과 같을 수 없다. 가을 주말, 일용할 마음의 양식을 고르는 중이라면 당장 이 작가의 작품을 펼쳐보자. 맨부커 수상작 채식주의자를 지은 소설가 한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세계가 응답한 소설 - 채식주의자

처음 이 소설을 펼친 영국의 선정위원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미 읽어본 독자라면 알 것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느껴지는 당혹스러움과 난해함이 짓누르는 불편한 감정을 말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결국 세계를 놀라게 했다.

맨부커 선정위원회는 채식주의자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으로, 현대 한국에 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갇힌 한 육체가 다른 갇힌 육체를 이해하려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관한 소설이라며 수상사유를 밝혔다.

소설은 어느 날 채식을 선언한 여주인공이 결국 모든 음식을 거부하며 점점 나무처럼 말라가는 과정을 그린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그녀의 고집이 스스로를 말렸고 가족과 주변인들의 정신까지도 말린다. 앙상해지는 그녀는 서늘해지는 공포와 같다. 감정선을 따라가며 맞닿뜨리는 인물들의 황폐하고 불완전한 정서를 피할 길이 없다.

책장을 덮는 마음이 무겁다. 시선은 이미 책을 떠났으나 이곳저곳에 소설의 이미지가 현실에도 투영된다. ‘채식주의자를 읽는다는 것은 일종의 충격적인 경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집필과정도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생각할 거리로 다가온다. 작가로서 채식주의자를 집필하며 끊임없이 던졌을 괴로운 질문들과 고통스러운 창조의 시간을 말이다.



되살아나는 역사, 5월의 광주-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에서 확인된 한강의 밀도있는 필체가 이번엔 광주의 아픈 역사를 서술한다.

소년이 온다는 한강의 여섯 번째 소설이며 19805월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에 있었던 당시의 아픔을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그녀에게 광주는 특별한 곳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 한승원(소설가)이 우연히 집에 가져온 민주화운동 당시의 기록물을 본 후로 광주의 아픔은 곧 그녀의 아픔이 되었다.

피와 울분의 역사가 한강을 만나 소설로 살아났다. 광주라는 도시, 인물과 사건으로 재구성된 그날의 역사가 종이 위를 뚜벅뚜벅 걸어다니며 울부짖는다. 우리는 그 처절함속에서 어느새 가슴을 부여잡거나 입을 틀어막는 자신의 손을 흠칫 깨닫게 된다.

책을 출간하고 오디오북이 제작되던 당시 이 육중한 감정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아무도 녹음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라고 하니, 이쯤 되면 지나온 역사가 괴로운 건지, 한강의 소설이 서글픈 건지 구분되지 않을 지경이다.

한강의 말처럼 소년은 몇 번이고 다시 온다. 수백 년이 흘러도 광주를 잊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여기에 있다. 다시 펼칠 이 책속 에 오월의 역사를 영원히 살게 했기 때문이다.



한승원의 딸, 한강 &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앞서 언급했듯이 한강의 아버지는 전남 장흥의 소설가 한승원이다. 작가 한승원도 문학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문인이지만, 이제 아버지 한승원이 맨부커 수상자인 딸의 이름을 빌어 자신을 소개할 날이 도래했다. 한강의 작품을 따라 독서를 해온 분들이라면 세대를 거슬러 소설가 한승원의 작품도 주목해보자. 부녀가 이뤄낸 문학의 긴 강을 따라가는 여정도 이 가을의 훌륭한 독서목록이 되어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