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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라 광주/문화와 예술

'쑥대머리' 그 득음의 경지를 엿보다.

교통신호 대기 중 금남로 대로에서 창문을 내린 체 창 가락을 뽑으며 차 한대가 옆으로 다가섰다. 뭔 소리다냐!  좀 놀란 마음에 어색함으로 슬쩍 견 눈질로 보았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개량한복을 하얗게 차려 입고 핸들을 잡은 체 연신 소리를 토해낸다. 주변 시선에 전혀 괘념치 않고 가락을 이어갈 기세다....

쑥대머리 귀신형용(鬼神形容) 적막옥방(寂寞獄房)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漢陽郎君) 보고지고 오리정(五里亭) 정별(情別) 후로 일장서(一張書)를 내가 못 봤으니 부모봉양(父母奉養) 글공부에 겨를이~~~

요즘 코미디프로에서 웃음 꺼리 소제로 전락한 이 판소리는 춘향가 중 옥중가의 한토막이다. 임방울로 알려진 명창 임승근의 데뷔 가락이기도한 이 노래는 뼈아픈 근대사를 지내온 민초들의 설움을 대변함으로써 100만장 이상의 음반이 판매된 유명한 곡이다.

중년이면 흥얼거렸던 기억이 한번쯤 있을 판소리는 특별한 도구 없이도 가능한 소요 거리로, 지금도 소수의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소리를 보면 뱃속에서 울어 나오는 통성, 징소리처럼 부서져 퍼지는 파성, 쇠망치를 치는 듯한 철성, 쉰 목소리 수리성, 세미한 소리 세성, 굽어진 소리 항성, 콧소리 비성, 귀신의 울음 같은 귀곡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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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우리 고장에 이런 창법에 뛰어난 명창이 있다. 소위 득음의 경지에 이른 소리꾼으로 송정리 출신 국창 임승근이 바로 그 사람이다. 쑥대머리로 유명세를 시작하여 국창이라 불리는 임방울은 사실 벼슬을 받은 적도 없고, 무형문화재 보유자도 아니다. 그런 그가 국창으로 불리는 것은 근대사에서 민족의 설움을 노래함으로 서민들의 가슴을 대변한 것 때문이라 생각된다.

  임승근은 수년간 토굴을 파고 독공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넘어 자신만의 독창적 소리의 세계를 닦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석어 서편제와 동편제를 아우른 걸출한 소리 예술가 이다. 그는 언재나 가난한 서민들과 함께 했고 시골장터나 강변의 모래사장에서 노래한 음유시인이었다.

 임방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연유는 어려서 울지도 않고, 방울방울 잘 놀아서 임방울이라 불렸다는 것과, 당대의 어느 명창이 임승근의 판소리 공연을 보고 경지에 이른 소리에 탄복하면서, "너야 말로 은방울이다"라고 찬사를 보낸 것이 굳어져 임방울이 되었다고도 한다.

 국창 임방울을 기념하는 경연대회가 매년 광주에서 열리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 시민들은 일상의 삶에서 명창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예술가를 만나는 전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기왕에 예향 광주가 문화 수도를 추구한다면 시민들의 문화의식도 함께 함양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려면 생활 속에서 좋은 문화를 만나는 것도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도산 지하철역을  도산임방울역이라 하면 어떨까! 그리고 그 역에 우리 가락과 임방울의 내역을 전시해 놓는 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많은 시민들이 일상에서 우리가락에 대한 정보들을 접하고 임방울 같은 명창의 소리 세계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도산역 전철 경보음을 ‘쑥대머리~~’가락으로 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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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정공원의 추모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