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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추억의 흑백사진 6. 동계천변

동계천변

 고단했지만 아름다운 사랑 넘쳤을 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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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인시장 입구 동문다리~전남여고 후문쪽 동계천 주변(1951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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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위를 복개하여 도로로 변한 현재의 동계천변 모습


과거 천변이나 노변(路邊)은 가난한 이들이 주로 모여 살았다. 요즘이야 물길이 흐르는 주변이 전망 운운하고, 길 가 땅이 더 높은 값어치로 거래되지만 옛날엔 언감생심이다. 없이 살고, 힘없던 이들이 밀려나 살던 곳이 아니던가. 물길 가의 위험하고 지저분한 환경, 길 가의 어수선함이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요, 가진 자들이 선호할 곳은 더더욱 아니었으리.

사진 속의 좁은 개천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지붕 낮은 초가집들이 그런 짐작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1951년에 찍은 사진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이 사진이 보여주는 풍경이 그렇다. 사진은 지금의 대인시장입구에 있었던 동문다리에서 전남여고 후문 쪽으로 난 동계천 주변을 보여주고 있다(동문다리에서 보면 전남여고쪽하고 지금의 대인시장쪽을 볼 수 있었으나 이 사진 오른쪽 그림자로 보아 전남여고쪽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큰 물이라도 진다면, 내는 넘치고 물은 집으로 달려들었을 것이고, 가난했던 이들은 이불 몇 채 이고지고 피난길이라도 올랐을. 물이 마르면, 곱지 않은 향기를 내며 썩어갈 얕은 내와 함께 일상을 보냈을. 참으로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의 모습이다.

그러나 꼭 어찌 그런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인가. 힘없는 작은 흙다리 하나로 이어진 개천 좌우의 이웃들은 지금보다는 훨씬 살가운 정을 주고 받으며 살았으리라. 늦가을(또는 초봄?)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날, 손녀는 걸리고 손자는 등에 업고 길을 나서는 어머니,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도 정이 흐를듯 여유롭기만 하다. 천변에 작은 초가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고 어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정마저 없었을 텐가.

이곳은 지금 개천위를 아예 덮고 도로로 만들어 길이 되어 버렸다. 천변을 오갔을 정겨운 추억은 이제 없다. 대신 길가로는 높은 건물들이 들어섰고 동계천의 추억은 나이 든 어른들의 기억속에만 있을 뿐이다. 과거 사진에서 보이는 동계천의 약한 S라인은 지금의 길에 그대로 드러난다. 왼쪽 판자로 둘러친 담벼락의 선이 지금 빌딩의 모습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신기하다. 왼쪽 길가 건물은 양철지붕인 것으로 보아 보통의 주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고 나머지는 모두 주택이었을 것 같다. 주택가였던 이 곳이 대부분 상가나 높은 빌딩으로 변해 있으니 세월의 흐름을 짐작할 뿐이다. 세월 앞에 인간 삶의 모습은 너무도 많이 변해버려 이제 흔적조차 없다. 팍팍했지만 정겨움이 흘렀을 동계천 주변의 삶이 그리워진다.

                                                                                                                                    
김옥렬_전대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