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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파란눈의 선교사들이 사랑한 마을 - 양림동 선교문화기행

 

파란눈의 선교사들이 사랑한 마을 - 양림동 선교문화기행

19세기 후반, 우리로서는 조선말.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파견할 선교사를 뽑기 위한 선교대회가 열렸다. 여기서 한국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언더우드가 이런 연설을 한다.
“여러분 한국에는 죽어 가는 영혼 1,200만이 있습니다...그리고 복음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면서 여러분이 와서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한국사람 선교사 윤치호는 이렇게 강변한다.
“한국인들은 살아있는 1,200만으로서 어린아이들이 어머니가 구해 올 약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만큼 복음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몇몇 선교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선교사들이 와 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국으로 가는 선교사가 되어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대한민국 선교문화의 일단면을 보여주는 얘기다.

서울과 인천에서 시작된 기독교 전파가 목포와 군산을 거쳐 광주에 들어 온 것은 1900년대 초반. 일제치하의 구속이 막 시작되던 때이자 거세게 일던 동학 운동이 일본과 청국의 개입으로 잦아들던 시기다.
 광주를 찾은 선교사들이 터를 잡은 곳이 지금의 양림동. 사직도서관과 수피아여고 사이의 양림산 기슭. 풍장터 아래였다. 서울의 남산처럼 높진 않아도 광주어디서나 등대처럼 바라다 보이고, 죽은자를 모시던 영적인 땅이라 쉽게 집지을 땅을 구할 수 있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양림동 교회
양림동 교회
목포와 군산에서 여의치 않던 선교활동은 광주에서 꽃을 피우게 되고 양림동은 전라도 지역 기독교의 산실이 된다. 서울 다음으로 신식병원 제중원이 설립되고,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전문병원이 처음으로 세워진 것도 바로 양림동이다. 때문에 양림동은 선교마을이기 이전에 전라도에 근대문화를 꽃피게 한 텃밭같은 곳이다.
지금도 양림동에는 당시의 모습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 모습을 찾아 양림동을 돌아보는 여정은 어디서도 느껴볼 수 없는 뿌듯한 경험이다. 이처럼 근대문화의 근간으로서의 선교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없을뿐더러, 초기 선교사들의 생활터전이 잘 보존된 곳도 없어서다.
사직도서관
사직도서관
선교기념비
선교기념비
양림동 선교문화 탐방의 시작점은 사직도서관. 도서관앞에 서 있는 선교기념비를 들머리 삼는다. 광주를 가장먼저 찾은 선교사는 배유지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유진벨. 그가 처음 광주에서 예배를 올린곳이 사직도서관 자리다. 이곳을 터전으로 배유지는 광주 최초의 교회와 숭일・수피아 학교, 기독병원을 세운다. 그의 자손들은 아직도 한국에서 그의 뜻을 받돌고 있는데, 의료 봉사의 대부역할을 하고 있는 인세반과 인요한이 바로 그들이다.
사직도서관에서 사직공원쪽으로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면 호남신학대학교다. 학교안에 있는 김현승 시비를 지나면 양림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선다. 계단을 오르면 기독교의 성지라 하는 선교사묘역이 산 정상에 있다. 산이라지만 고작 10분도 걷지 오르지 않는 언덕같은 곳. 평평한 정상 한켠에 유진벨 부부와 오웬을 비롯한 22기의 선교사묘가 모여있다.
선교사 묘역 풍경
선교사 묘역 풍경
선교사묘역-오웬과 유진벨의 묘비가 보인다
선교사묘역-오웬과 유진벨의 묘비가 보인다
묘역을 가로질러 산 반대편으로 내려오면 수피아 여고를 바라보며 가벼운 산책을 하게 된다. 울창한 참나무숲이 좋다. 산길을 내려오면 정면에 커티스메모리얼홀, 즉 배유지기념 예배당이 있다. 광주지방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서양식 건물로 경사를 이용해 지었다. 앞에서 보면 2층이고 뒤에서 보면 단층이다. 자연스레 집안에는 계단도 없다. 기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건축학적으로도 고증해볼 가치가 놓은 건물이란다.
배유지기념예배당
배유지기념예배당
예배당에서 길을 따라 잠시 나오면 사랑의 열매가 열리는 호랑가시나무가 있다. 이 나무가 살수 있는 북방한계선이 바로 여기다. 이곳을 중심으로 양림산 기슭 곳곳에 선교사들이 살던 집들이 터를 잡고 있다. 모두를 지은지 100여년이 된 초창기 양옥들이다. 원요한 선교사가 살던집과 유수만 선교사가 살던 집 뒤에 윌슨 선교사가 살던 집이 있다. 한센병의 아버지로 불리며 죽는날까지 나환자들을 치료했던 윌슨 선생이 1920년에 지은 집인데, 광주에서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집구경을 하러 온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는 후문이 있다. 이곳은 영화 촬영장으로도 여러번 사용되었는데, 드라마 구미호외전에서 김태희가 살던 집이 바로 여기다.
윌슨 선교사 사택
윌슨 선교사 사택
피터슨선교사사택
피터슨선교사사택
윌슨선교사 사택

윌슨선교사 사택

툭 터진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다 기독병원 뒷길로 올라서면 수피아여고. 양림교회쪽으로 내려오면 교회옆에 어비슨 기념관과 오웬기념관이 있다. 눈여겨 볼곳은 오웬기념관인데, 선교사로활동하다 이곳에서 순교한 오웬을 기려 그의 친지들이 건립하였다. 1914년 이 건물이 지어진 이래 광주의 사교문화가 싹트게 된다. 광주 최초의 오페라공연이 여기서 열렸고, 3.1운동을 고취하는 설교가 행해진 곳도 여기다.

수피아여고
수피아여고
이처럼 양림동에는 파란눈의 선교사들이 살면서 겪었던 고뇌와 고통, 한편으로는 그들이 느꼈을 보람과 행복이 고스란히 숨어 있다. 선교문화로서가 아니라 근대문화의 산실로서의 양림동이 이래서 존재한다.

 

출처 : 유투어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