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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4 식영정-수남학구당 - 빛창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4 식영정/수남학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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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해서 무등산 고샅길에 대한 이야기를 1,2,3에 나눠서 쓰고 있는데요~ 이번엔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4번째 수남학구당 이야기입니다. 무등산고샅길에 포함되어 있는 수남학구당, 식영전을 따라 이어내려가면 수남학구당이 나와요. 식영정과 함꼐 수남학구당에 대한 포스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 전에 무등산 고샅길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다시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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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하시면 사진이 더욱 크게 보입니다.


[고샅길 구간] 좌측
풍암정사 - 민간신앙지 - 삼괴정 - 평무들 - 취가정 - 환벽당 - 지실마을 - 한국가사문학관 - 식영정 - 수남학구당 - 죽림재 - 만수정 - 동강조대 - 개선마을 - 벅수 - 개선사지석등 - 금곡마을 - 분청사기가마터 - 풍암정사

[무등산 옛길 3구간]우측
장원삼거리-장원정-4수원지-덕봉-충장사-풍암정-도요지-호수생태원-취가정-환벽당




무등산 고샅길이란?


'길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길을 품는다.'
늘 다녀서 그것이 나를 이끄는 길인지 조차도 알아채기 힘든 도시의 길이 있는가 하면, 발길 끊겨 수풀에 덮히고 기억조차 희미해진 옛길이 있습니다. 잊혀진 그 길도 지금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분명 한 4,5백년전쯤엔 댕기머리 학동부터 고명한 선비까지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품어내며 살아갔을 길입니다.

여기 무등의 북동쪽으로 흐르는 원효계곡, 그 물줄기가 제법 깊어져 짙푸르러지는 끝자락엔 사람들의 기억을 비웃기라도 하듯 노송을 벗삼아 4백년 풍상을 이겨낸 풍암정사가 우뚝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시작해 5백년 역사가 깃든 오십리 고샅길을 다시 걷습니다. 우리들에게 잊혀졌던 아주 오래된 길로 일부는 아스팔트로 덮히고 또 일부는 아직 가시덤불에 숨겨진 길일 겁니다.


광주호를 한바퀴 도는 여정과 겹칩니다. 1976년에 만들어진 댐으로 물에 잠길 것들은 호숫가 곳곳에 옮겨 놓았습니다. 무등 산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내를 이루고 들을 적시고 길을 만들고 또 사람을 키워냈을 그 길로 학동들은 골목골목을 넘어서 이웃마을 배움터를 오가고 마을사람들은 일상의 무거운 짐들을 지고 삶의 질긴 끈을 이어가고 당내의 내노라 하는 선비들은 서로 오가며 학문을 논하고 시가를 짓고 세상을 이야기했을 소통의 그 길입니다.




 

무등산 고샅길 中 식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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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
식영정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정자입니다. 전남기념물 제 1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환벽당, 송강정과 함께 정송강유적이라고 불리던 식영정은, 원래 16세기 중반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은 정자라고 해요.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임억령이 지었는데, 그 뜻이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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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을 올라가는 길에는 이처럼 식영정을 올바르게 잘 찾아갈 수 있도록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한국가사문학관에서 몇백미터 좀 안가서 보면 바로 식영정이 위치해 있습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걷다 보니 동화속에나 나올 것 같은 풍경과 함께 식영정으로 향하는 단아한 형태의 계단이 반기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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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단풍잎과 함께 큼직큼직한 나무들이 여름임을 증명이나 하듯 울창한 숲을 이루어 식영정을 찾는 사람들을 반기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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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서술했듯이 이곳 식영정은 석천 임억령의 정자입니다. 조선 명종 15년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인 석천을 위해 지어진 곳으로 식영정 경내에는 서하당과 석천을 주향으로 모셨던 성산사가 있었는데, 그동안 없어진 것을 최근에 복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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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비가 내리는 날이여서였을까요.. 왠지 선계에 온 듯한 착각에 초록빛도 더욱 돋보여서 너무나 신비로운 분위기(?) 같았습니다. 화창한 날에 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 여행을 하는 것도 나름 묘한 분위기를 느끼는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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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 오른쪽을 보면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큰 나무가 있습니다. 어른 세명이 감싸야 될 정도의 크기를 가진 큰~ 나무였습니다. 이 나무가 울창한 푸르름을 뽐낼 것을 상상하니 식영정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한쪽으론 호수가 있고 반대편으론 울창한 숲이 위치해 있어서,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삶의 여유와 함께 묵향의 그윽한 시가 읊어 질 것 같은 상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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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고샅길 中 수남학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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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을 연구하며 유교의 기풍을 진작하기 위해 설립된 수남학구당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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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남학구당]
지정종목 :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 전남문화재자료 제 12호
지정연도 : 1984년 2월 29일
소재지 :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 1
시대 : 조선
종류 / 분류 :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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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남학구당은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1570년(선조 3)에 창평에 살고 있는 25개 성씨가 숭고한 도의(道義)와 국가의 문무정책에 따라 학업을 연구하며 유교의 기풍을 진작하기 위하여 서원을 창건한 후, 1619년에 학구당이라 고쳤으며, 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현재는 본당 2층 4칸, 관리사 3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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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불교진흥정책에 따라 사찰을 건립하였다가, 조선시대에 배불숭유정책으로 바뀌게 되자 사찰을 없애고 그 자리에 새로운 국가이념에 맞는 서원이나 향교 또는 학구당 등을 건립한 것으로 추측되며 담양의 수남학구당과 수북학구당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사회질서에 맞는 형태로 바뀐 유적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정치·사회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관학으로서 중앙에 성균관, 지방에 향교가 있었고 사학으로는 서원, 서재(書齋), 서당 등이 있었는데, 이곳 담양에만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학구당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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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남학구당은 창평학구당이라고도 불리면서, 인재양성을 통해 사회적으로 유교적 기풍을 진작시키려고 했던 곳인걸 배우고 나니 이곳 수남학구당이 더더욱 고귀하게 느껴졌고 문화적가치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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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남학구당을 찾았던 날은 비가 많이 오고 있었습니다.시원한 빗줄기가 찍힌 사진속의 수남학구당 모습을 보니 또 색다른 수남학구당의 매력이 보이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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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남학구당 내부의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학업을 연구했던 모습이 떠올려지는 듯 합니다. 사방으로 뚫린  문으로 자연의 정기를 느끼며 학업을 한 선비들은 몸과 마음 모두 학업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구당 풍경소리라는 서예의 필체가 더욱 이곳을 학업하던 곳이란 의미를 부각시켜주는 듯 보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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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남학구당을 둘러봄며 자연에 둘러쌓인 경치를 보니 수남 학구당은 단순히 학업만을 위한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수남학구당을 둘러보면서 자연이 공존하는 곳, 자연과 함께 하는 학업이 이뤄지는 장소란 생각이 더욱 크게 들었습니다. 주변 곳곳에 담장과 어우러진 단풍나무가 가을에 수남학구당에 오면 더욱 반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휴가철에 무등산고샅길 다녀오시는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