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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자연에서 문학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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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춘추작가회, 한국가사문학관 일원에서 문학세미나 등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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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 남면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가사문학관

전라남도 북쪽에 위치해 기름진 평야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존·전승해 온 유서 깊은 고장 담양.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정신을 이어받은 조선시대 사림(士林)들은 불합리하고 모순된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큰 뜻을 이룰 수 없음을 한탄하며 낙남(落南)하여, 이곳 담양 일원에 누(樓)와 정자(亭子)를 짓고 빼어난 자연경관을 벗 삼아 시문을 지어 노래하였다.

이들은 수신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는 충성하고, 국난이 있을 때에는 분연히 일어나 구국에도 앞장섰다. 조선시대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에 국문으로 시를 제작하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사문학이 크게 발전하여 꽃을 피웠다.

이서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 정식의 축산별곡, 남극엽의 향음주례가·충효가, 유도관의 경술가·사미인곡, 남석하의 백발가·초당춘수곡·사친곡·원유가, 정해정의 석촌별곡·민농가 및 작자미상의 효자가 등 18편의 가사가 전승되고 있어 담양을 가사문학의 산실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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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춘추작가회 노남진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광주의 대표적인 문학단체인 문학춘추작가회(회장 노남진)가 담양에서 문학세미나를 열었다. 회원의 한사람으로서 동행했다. 올해로 2회 째인 문학춘추작가회의 '문학세미나'는 21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담양 남면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가사문학관 일원에서 이루어졌다.

가사문학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지역문단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세미나에는 문학춘추작가회 회원 6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세미나는 제1부 문학 강좌, 제2부 소쇄원 등 가사문학의 명소 돌아보기 등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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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춘추작가회 발행인인 박형철 이사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제1부는 손광은 시인(전남대 명예교수)이 ‘歌辭文學의 再檢討 - 전통의 연결성 접근)'이라는 주제로, 문학평론가 이명재 평론가(중앙대 명예교수)가 '빛고을의 문단사적 위상과 과제'라는 주제로 가사문학의 새로운 기점과 호남문학의 현주소 및 방향을 각각 제시했다.

한국가사문학관은 가사문학 관련 문화유산의 전승․보전과 현대적 계승․발전을 위해 담양군이 1995년부터 가사문학관 건립을 추진, 200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가사문학관은 본관과 부속건물인 자미정·세심정·산방·토산품점·전통찻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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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은 시인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전시품으로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傘仰集)과 정철의 송강집(松江集) 및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있다. 2002년부터는 영남의 규방가사를 비롯하여 기행가사, 유배가사 등의 원본 및 필사본을 수집·전시, 명실상부한 한국가사문학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세미나의 첫 번째 강사로 나선 손광은 시인은 “歌辭文學의 再檢討는 고전의 傳統性 및 비교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며“한국시가 장르 변천과정 속에서 歌詞와 歌辭라는 명칭이 쓰이고, 전자는 음악과 관련이 있고, 후자는 음악과 관련이 없이 낭송할 수 있는 작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100행 이상의 장편으로 된 작품이 많다. 그러나 지금은 구별 없이 歌辭로 통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시가무와 원시 종합예술, 호남문화의 형성배경인 마한의 집단 가무, 그 이전 고려시대 문학이 남녀 상렬지사 사리부재로 정리했던 자유분방한 표현의 자유가 있었음 직한데 문예부흥기가 고려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며“이조의 도덕적 유학사회하에서 호남시단 발흥기 때 주체가 사림시인들이었음을 상기해 보면, 호남시단의 성격규명에 중요한 논의 주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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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중앙대 명예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아울러 “가사의 형태적 특징에 따라 가사도 정격가사, 변격 가사로 구분되지만, 結辭法이 3·5·4·3조의 음수율을 가지며, 전통적 음수율이 3·4조이고 부음수율이 4·4조이다. 이것은 先作 後唱의 吟詠 위주였고, 임란이전 양반가사가 해당되었다. 변격가사는 결사법이 끝까지 4·4조로 돼 있고, 주 음수율이 先作後唱 창 위주였고, 임란 이후 평민가사, 내방가사, 민요가사, 잡가, 속가 등이 여기 속한다”며“특히 영조 때 사설시조 가사, 판소리까지 장르 개념으로 염두에 두고 보면, 文學史는 전통의 연계성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다”고 강조했다.

또한 손시인은 “세상 삶을 표현할 때 유장하고 완만한 만연체의 호흡으로 노래하면 가사가 되고, 그것을 긴축하고 간결하고 소박한 것을 즐겨하는 儒林들의 서정성을 표현하는 그릇이었다면, 가사는 현실적이고 진술적이고 설복적인 유고이념 또는 교훈적인 불교이념을 표현하는데 알맞은 형태였고, 그러나 임란 이후 가사는 장편화 되어 산문성을 띤 것이 많다”고 밝혔다.

특히 손시인은 가사문학의 기점에 대해 “민족문학은 전통의 연계 없이 이룰 수 없으며, 전통은 불변성, 지속성이 아니라 일관성을 뜻한다. 그러므로 용어의 가치개념에서 자아의 각성이 추구되는 근대의 기점이 시기 구분의 상한선이 되어야 한다”며“자아상실, 자아분열, 인간부재, 인간소외의 상황 현대성과 이전의 사설시조 개화가사 창가보다 자유스런 민중의식의 시형, 신체시보다 더 진보적인 주관표출이 훨씬 분방했던 1860년 영정조시대를 근대 자유시의 특징적 근거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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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리씨가 주옥같은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끝으로 손시인은“문학사 이해는 그 문학을 배태한 시대 역사상황과 결별할 수 없다. 역사와 문학은 시대를 사는 삶의 흔적이기 때문에 작품의 구조분석이 아닌 장르 개념의 가사 사적 연구에 있어서 문학은 역사의 반영으로 이해해야 한다”며“문학사는 문학사의 내용적 흐름을 분류 파악 진술해야 하며, 시대 역사 사이에 내재한 지속성, 일관성이 맥락 층위와의 사이에서 작품의 유기적 통합차원에서 살펴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두 번째 강사로 나선 문학평론가 이명재씨는 광주·전남문학이 서울중심의 문단을 혁파하고, 지방화시대에 걸 맞는 주인의식으로 개선해 가면서 남도특유의 개성을 지녀야 한다는 내용의 주제발표를 했다.

이 교수는 먼저 “빛고을 문단은 현대문학의 초창기인 신문학기 문단에서는 타 지역에 비해 여러모로 변방에 소외된 느낌이었으나, 1920년대 초엽에 서구 문예이론이나 창작에서 희곡의 선구자인 김우진(목포)과 수필이론의 정립자인 김진섭(목포) 등 동경유학생들이 주류문단 밖에서 유학생 잡지나 신문 등을 활용한 활약을 전개함으로써 비로소 빛고을 문단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광주-전남 문단이 한국문단 전반에 걸쳐 이룩한 업적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1930년대 당시에 현대 시론과 창작을 겸비한 데다 서울의 주류문단에서 손수 <시문학> 의 문예지를 관장한 용아 박용철(광주)이 한반도 전역에서 순수본격문학시대를 연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50년대 전반의 한국전란 당시 김현승을 비롯한 이 고장 문인들이 광주에서 펴낸 <신문학>과 목포에서 낸 <시정신>이 한국문단의 보루로서 공백기를 메우는 역할을 맡아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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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을 듣고 있는 문학춘추작가회 회원들.

이 교수는“그러므로 광주-전남은 새로운 문단의 빛고을로서 예부터 歌辭와 時調文學의 원천지라는 자긍심을 갖고 의연하게 주인 노릇을 해야 한다”며“우리는 예전부터 藝鄕과 義鄕의 본산이기도 한 이 고장의 두 德目들을 지혜롭게 조화,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광주-전남의 문학방향에 대해“광주·전남문학의 역사는 지역적 특성과 해당문인들의 작품 특질 및 동인지 활동을 망라해서 다루되, 중앙문단과 연결하는 시각으로 접근해야하며, 빛고을 문학사 역시 전북지방까지 아우른 호남문단 중심지로 다루어야 한다”며“문학사의 대상에는 문인들의 중요 작품을 주로 하되, 그 폭을 國內外까지 망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모름지기 빛고을의 심장에 이렇다 할 문학기념관 하나 없음은 藝鄕인 호남 수도로서의 體貌에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운 일이다. 광주에는 적어도 한국 현대문학의 큰 공로자인 龍兒 박용철과 茶兄 김현승을 기리는 현대문학관을 시급하게 세워야 한다”며“그래야 산 문학공간으로서 관광과 전시로써 지방문화를 더 효율적으로 선양함은 물론이요, 각종 백일장이나 강연회 및 교육장으로 활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우리는 우선 이 고장을 바람직한 歌辭文學의 메카답게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현대문학 지도를 솔선해서 빛고을 문학예술의 중흥 기반을 닦아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청소년들에게 문화에 대한 자극을 줌과 동시에 올바른 문예 지도를 해야한다”며“우선 되도록 지방의 發表 지면들을 가꾸고 서울을 포함한 타 지역의 문단과 교류하며 自生力을 지니고 활발한 문예활동을 펴나가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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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당 현판에 새겨진 하서 김인후의 48영 한시가 눈길을 끈다.

문학 강좌 후 새로운 음악문화를 추구하는 음유시인이자 포크가수인 한보리씨가 “떠도는 무렵”“붉고 푸른 못”“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등을 키타 연주와 함께 찬밥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들려 줘 참석자들로부터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참석자들은 가사문학관 주변 식당에서 중식을 하면서 회원들 간  정담을 나눈 후,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 소쇄원을 둘러보았다.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쇄원은 년 중 수많은 외지인과 관광객이 찾는 가사문학의 대표적인 산실로서, 현재는 양산보의 후손이 관리하고 있으며, 소정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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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계류에서 물놀이하고 있는 사람들

담양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기도 한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소쇄원은 1983년 국가 사적 304호로 지정됐다가 2008년 5월 명승 제40호로 재분류됐다. 광풍각과 제월당을 중심으로 한 4060㎡는 지정구역, 주변 11만 8866㎡는 보호구역으로 각각 설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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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의 장기자랑  시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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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의 장기자랑  시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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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들의 장기자랑 시간3

소쇄원은 처음에는 제월당(霽月堂), 광풍각(光風閣), 애양단(愛陽壇), 대봉대(待鳳臺) 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다. 문화해설사로부터 소쇄원의 역사적 배경과 그곳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 소쇄원의 가치와 역사가 더욱 새롭게 다가오고, 조선시대 선비들의 심성이 오롯이 묻어나는 것 같다.

제월당, 광풍각, 애양단, 계류, 대나무 밭 등이 민간정원의 청취를 물씬 안겨주며, 길손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날도 많은 사람들이 소쇄원의 싱그러운 나무그늘과 정자, 계류의 물에 몸을 누이며, 무더위를 한껏 밀어내고 있었다.

당초 환벽당, 식영정, 명옥헌 등을 추가로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날씨가 너무 더워 일정을 변경,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교정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간식 먹으며, 회원들의 장기자랑인 흥겹고 즐거운 한마당 축제를 벌였다. 모두가 멀티 플레이어이다.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문학인들만의 자유롭고 편안한 문학모임을 통해 문학적인 소양도 넓히고, 정보도 나누면서 친목도 다지고, 자연 속에서 문학의 길을 묻는 좋은 기회로 몸과 마음이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