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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시골의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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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서기(酷暑起)란 말이 실감나는 요즘 날씨다. 연일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장맛비 까지 오락 가락  참 무덥습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그랬죠. 여름은 여름같이 더워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죠. 자연의 섭리를 불평 없이 순리대로 접하는 선인들의 지혜였습니다. 산업화의 발전은 지구촌의 심각한 유해환경 물질을 배출하였고 그로 인한 오존층이 파괴되어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기상대는 오존경보까지 내리게 된다. 인간은 자연에서 얻고만 사는데 인간은 자연과 공존하지 못하고 역행만 하고 사는 세태가 안타깝다.

옛날 시골의 여름나기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 고향의 소싯적 생활이 생각이 납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이면 동구 밖 냇가 당산나무아래는 부녀자를 제외한 온 동네 남정네들은 노소를 분문하고 나와서 더위를 식히곤 하였다. 혹서기의 한 여름 꽃 더위에는 논밭에 나가지 않았지요. 오늘날에는 기상대의 과학화된 계측에 의하여 오존경보를 알리는 발전된 예방을 하지만 우리의 선인들은 경험에 의한 일사병을 염려한 더위를 피해 해질 무렵에야 한 더위가 지난다음 일하려 나가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더위를 식히는 동구 밖 당산나무아래에는 정취어린 옛 풍경들을 그려본다. 당산나무 한 쪽에서는 장군, 멍군 장기놀이요 강돌을 베개 삼아 드르렁~드르렁 오침을 즐기는 동네 할아버지, 아저씨 들은, 통풍이 잘된 삼베 바지에 빳빳하게 밥풀 메겨서 입었으므로 직접 피부에 닫지 않아 자연을 이용한 최고의 피서방법으로 지혜로운 망중한을 즐겼다.

  꼬맹이들은 낮잠을 즐길 수 없는 어린 시절 이였기에 알 몸 그대로 물속에 뛰어들어 물장구 치고 물놀이 하던 철없던 시절 이였다. 물속에 잠수해 들어가 메기도잡고 빡아살이도 잡아 개버들 나무 꺾어 껍데기 벗긴 줄기에 잡은 물고기 줄줄이 끼어들고 의기 양양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자랑했던 일이 생각이 난다. 물고기 한 마리라도 자급자족하던 시절, 없이 살았던 시대였기에 자연스런 식욕을 위한 욕구는 어린이에게 까지도 식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은 자연스런운 인간의 욕구였을 것이다.

  물질 만능의 풍요로움으로 변해버린 세태는 넘쳐나는 고열량의 식품홍수 속에 과다 영양섭취로 인한 전쟁도 아닌 과체중 살과의 전쟁은 처절 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풍요 속에 괴로움,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되고 있다. 요즘 신세대들이 듣기에도 생소한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절대적 빈곤을 해결하지 못 했던 일, 보리 수확이 되기 전 겨우내 먹어버리린 식량은 봄 이되면서 보리가 익기 전에 바닥이나서 고개도 아닌 보릿고개란 고개를 넘어야 했던 시절 지금은 아득히 먼 옛날 옛적의 전설의 고향과 같은 지나가버린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 시절은 요즘처럼 무더운 삼복의 더위 때는 가정의 샤워시설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다 마당가에 있는 작두식 샘물이나 깊은 샘통에서 두레박 넣어 퍼 올린 물로 등멱을 했었다. 그러나 집안에 샘이 있는 가구는 많지 않았다. 물지게나 아니면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길러왔었다. 동네 앞 냇물은 낮 시간에는 어린이의 놀이공간이요 밤에는 어른들이 등 멱을 하고 멱을 감을 수 있는 등 최대의 자연이 만들어준 위락 시설 이였다. 밤이면 마당 한 가운데 모기를 쫒기 위한 모닥불을 피워놓고 평상위에 온가족이 둘러앉아 하지감자, 옥수수 삶아 먹으면서 여름밤을 보냈었다.

 대부분 시골의 점심은 부엌 앞 써가레에 대나무로 만든 밥 바구니를 매달아 보관하고 때가 되면 내려서 먹었다. 비록 쌀 한 톨 섞이지 않은 꽁보리밥에 물 말아 풋고추 된장에 찍어먹으면 세상이 부러울 게 없었던 그 때의 소박한 삶이 그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일들이 지금생각하면 아련히 떠오르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