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곰두리봉사회 박용구회장을 만나다.
[광주광역시 곰두리 봉사회 방문]
은퇴자들의 재능활용을 통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자리처가 있다고 하여
<광주시 곰두리 봉사회>라는 곳에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능활용이라고 하니 처음에는 단순히 퇴직자들의 노후설계나, 인생 2막을 열어주는 단체라고 생각했는데요,
시장주변 건물에 아담하게 세워진 사무실을 방문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취재거리가 없을까봐 걱정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광주광역시곰두리봉사회의 박용구회장을 만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곳은 아주 가치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어요.
[전국 최초 차량봉사]
어린 나이에 하반신 장애를 앓은 박용구회장은 매일 기도했다고 합니다.
'만약 몸만 낫게 해주신다면 걷지 못하고 앞 못 보는 이들을 위해 평생 봉사하면서 살아가겠노라.'
그 기도가 닿았던 것인지, 중국의 영험한 한의사를 만나 천신만고 끝에 두 다리로 걷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최초로 차량봉사를 하게 된 것이죠.
그는 1968년부터 지금까지 차량봉사를 묵묵히 해습니다.
장애를 가진 이의 두 다리가 되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도록 했답니다.
걷지 못하는 학생의 등학교를 책임지고, 그들이 재활치료 및 재활훈련을 받아 사회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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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 무슨 봉사냐고 핀잔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실 자신의 이익이 생기지 않으면 봉사라는 것도 이어나가기가 힘든 것이지요.
지속적으로 후원을 받는 단체나, 봉사라는 이름 아래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단체도 없진 않을 것입니다.
박용구 회장은 평생동안 봉사를 결심했지만,
집의 가세가 심하게 기울었을 때는 그런 그의 결심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지탱해준 것은 그의 부인, 문양례 여사라고 덧붙였습니다.
[정신적 조력자 부인, 문양례 여사]
'기왕에 하기로 한 것이니, 끝까지 해내시오.'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어렵게 살아온 적 없는 그의 부인은
평생 식당일에, 험하고 궃은 일을 하면서 박용구 회장을 뒷바라지를 하며 그를 지지해왔다고 합니다.
인터뷰하는 도중 박용구 회장은 아내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꾸준함으로 얻은 신뢰]
장애를 가진 분이나 독거노인 분들과 친해지고 오랫동안 함께하기는 힘든 것일 겁니다.
하지만 꾸준히 봉사를 하니 그분들한테도 신뢰가 생기고 그의 봉사를 진실한 것으로 받아드려 준 것이죠.
지금도 장애인 단체 분들을 모시고 1년에 4차례 계절마다 나들이도 가고
각 요일마다 무료식사봉사, 문화예술봉사 등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장애인들을 돕고 후원한다고 합니다.
약력
광주광역시장애인차량봉사회 창립회장(前)
광주시민사회단체총연합 상임공동대표
광주광역시 자원봉사센터 이사
광주국제행사성공시민협의회 위원
광주광역시 시민감사관
광주광역시 동구청아카데미 추진위원
광주광역시 안전문화추진협의회 위원
대한민국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사)광주광역시안전모니터봉사단연합회 남구지회장
(사)광주광역시 곰두리봉사회 회장
(사)광주광역시 사회복지심부름지원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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