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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라 광주/문화와 예술

[평화통일역사기행]평화통일 광주시민아카데미 국외연수 제3편(2014.11.8.)-광주랑

 

 

 

평화통일 광주시민아카데미 국외연수 제3(2014.11.8.)

"옛 대성중학교(용정중학교) 윤동주 시비와 청산리 승전비답사"

  연수 3째날(11.8일) 연길에서 2박을 한 후 길림성 용정시를 약 4시간을 버스로 이동한다. 연변지역은 인구 50만 조선족자치구로 인구비율 40% 모든 간판의 표시에 한글을 먼저 쓰고 중국어로 표시한다. 현재 중국 길림성에 속한다. 중국의 동북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만주지역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이며 대조영이 발해를 창건한 지역이다. 중국에서도 연길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길림성지역은 낙후된 지역으로 주민들은 옥수수농사가 주농업 이었다.

  투어버스 차창밖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밭 추수가 끝난 들녘에는 빈 옥수수빈대만 서 있는 황량한 들판이 계속되었다. 용정에 있는 윤동주 생가를 방문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끌려가 해방되기 직전 32세의 젊은 나이에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희생된 애국시인이다. 생가입구에는 최근에 세워진 듯한 표지석에“중국조선민족애국시인 윤동주시인 생가”라고 쓰여 있었다. 복원된 전통한옥 내에 자연석에는 “별을 혜는 밤” "나 무" 등 주옥같은 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답사는 1921년에 용정에 있는 대성중학교를 방문 윤동주 시비와 항일열사 기념관과 이상설 역사기념관 찾아 정일권 전 정치인, 문익환 목사 등이 이 학교 출신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현재는 주변의 학교를 통합 용정중학교로 개명되어 있다. 다시 화룡 청산리 전적비가 있는 이동한다. 가는 길 멀리 일송정이 조망됐으나 일정상 답사를 하지못한 아쉬움이 있다. 비좁은 비포장 길을 어렵게 통과하여 청산리 승전비에 도착한다.

1952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 김좌진, 홍범도 의병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청산리 6일간의 전투에서 독립군보다 수배가 많은 일본군을 대파한 전투 대승전적 비에서 우리단원들은 희생된 선열들에 대한 마음속으로 묵념을 올리고 참배하는 시간이 되었다.

  전날(7일4~6시)오후 연변대학 역사학 교수 고성용 교수와, 연변대학생과의 남의 시간을 갖고 토론의 시간이 되었다. 고 교수는 조선족 3세대로 제주도가 선조의 고향이라고 했다. 연변에 대한 조선족에 역사의 대한 과거와 현재에 대한 활동 등을 설명 했으며 광주의 518국립묘지도 다녀갔다고 하며 광주와 인연이 있다고 했다. 고 교수는 비록 국적은 중국이지만 조선족 3세대로 교수로서 확고한 위치에서 활동하는 모습이 좋았다. (연재 마지막 4편으로 이어집니다.)

광주광역시 광주랑블로그 기자단 최찬규
 

(좌 5번째) 연변대학교 고성용 역사학과 교수 학생과 토론회를 마치고 기념촬영

복원된 윤동주 생가 연수단원들의 기념촬영

윤동주 생가

생가입구에는 최근에 세워진 듯한 표지석에중국조선민족애국시인 윤동주시인 생가라고 쓰여 있었다

생가 내실에는 서거 69년을 추모하는 분향소에서 묵념을 하고 있는 연수생

고성용 연변대 교수, 대학생 토론회

고성용 연변대 교수, 대학생 토론회

고성용 연변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와의  우리 단원들과 토론회

대성중학교출신인 윤동주 시비가 묘교에 세워져 있다.

대성중학교 지금은 전시관으로 사용

윤동주 생가에 있는 주옥같은 시비가  생각 정원에 놓여 있다.

옛 대성중학교 에 있는 전시관 에는 독립운가들의 기록과 사진등이 전시되어 있다.

연길 시내

연길시내를 흐르는 강에서 낚시

연수 단원들의 식사

연길 시내 

길시 야경 

중국의 경제발전은 시내 건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짓는 건물에는 대부분 LED조명으로 건물의 미를 나타나게 하고 있다. 4년전 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변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공장소나 거리도 쓰레기를 그때그때 바로 미화원의 청소를 하고 있었다.

 

중국은 건물에 LED로 휘황찬란한 야경을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