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블럭과 아스파트길 시멘트로 포장한 길에 익숙해진 도시인들, 포장된 길을 버리고 호젓하고 풋풋한 흙냄새 길을 걸어 본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문명이 주는 혜택보다도 자연이 베풀어주는 혜택에서 사람은 웃음을 되찾는다. 그래서 시골길에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노래가 있고 시가 흐르는 그런 길을 아무 이유 없이 걸어보자. 왜 그런지 기분이 상쾌해진다.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던 세월을 되돌아보자.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자. 그러면 자연미의 풍만을 채울 수 있다. 한번쯤은 자연 그대로에 물 흐르듯 자신을 맡겨보자. 그러면 즐거운 상상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른다.
지난달 광주시 지정 기념물 제1호 환벽당이 ‘광주 환벽당 일원’이라는 명칭으로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107호로 재지정됐다.
광주호 다리를 건너 광주 충효동 마을 왼쪽 길로 들어서면 언덕위에 이끼 낀 돌담과
오랜 세월의 나이만큼 큰 무게를 이고 묵묵히 견뎌 온 고목들의 품 안에 환벽당이 터를 잡고 있다.
이 정자는 1532년 조선 명종 때 광주 충효리 태생인 사촌(沙村) 김윤제(1501~1572)가 홍문관교리,
나주목사 등 13개 고을의 성주를 역임한 후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세운 별서정자이다.
우암 송시열이 쓴 제액이 있고 석천 임억령(石川 林億齡)과 조자이(趙子以)가 쓴 시도
현판으로 걸려있다.
정자 아래로 산이 물에 박힌 듯 비치는 잔잔한 강물이 흘러 말 그대로 명경지수다.
환벽당 밑에 물웅덩이(용소)가 있는데 이곳은 송강 정철에 대한 일화가 내려온다.
전설에 의하면 환벽당에서 사촌 선생이 오수를 즐기고 있을 때 꿈에 환벽당 앞 물웅덩이에서
갑자기 물이 부글부글 끓더니 거대한 청룡이 수면위로 솟구쳐 올라와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놀라 깨어나 하인을 시켜 살펴보라하자 그곳에서 어린 동자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사촌 선생이 어린 동자(후 송강 정철)을 불러 문답하는 중에 그 영특함에 놀라 집에 머물게 하여
학문을 매진케 하였으며 정철 나이 17세에 그를 외손녀 사위로 삼고 정철의 학문적, 경제적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지금도 용소 옆에는 송강이 이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잡았다는 조대가 남아있다. 정철은 사제의 인연을 맺고 27세로 과거에 급제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 후 후진 양성에 크게 기여했으며 송강 정철, 서하당 김성원 등 삶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싶은 정감도 함께 나누어 이를 풍류와 예술로 승화시킨 그 뿌리가 현대에 이르러 예향의 빛 옷을 입고 화려한 역사의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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