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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라 광주/문화와 예술

[광주전시] 광주시립미술관 황재형 초대, <삶의 주름, 땀의 무게>전 개최

안녕하십니까?

요즘 날씨가 많이 쌀쌀합니다.
 

  광주시립미술관 황재형 초대

<삶의 주름, 땀의 무게>전 개최

- 황재형의 30여년 그림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 -


전시개막식 11월15일(금) 오후 5시 상록전시관
작가와의 대화 11월 30일(토) 오후2시 상록전시관


▲ 김재균 전 국회의원, 양형일 국회의원, 임동호 시의원, 윤형식, 강인중 가정 법원장 등 많은분들이 황재형 작가님의  개인전에 참여하셨습니다.


 

광주시립미술관(관장 황영성)은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미술화가인 황재형 화백을 초대하여 <삶의 주름, 땀의 무게> 황재형 개인전을 11월 15일부터 12월 8일까지 상록전시관에서 개최한다.


황재형 화가는 보성 출신으로 중앙대 미대를 졸업 후 1982년 가족과 함께 강원도 태백으로 들어가 직접 탄광촌의 주민이 되어 민중의 시선으로 이 땅과 민중의 모습을 그리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는 청년시기에 광주를 떠난 지 40여년 만에 광주에서 선보이는 최대 규모의 개인전으로, 한국 민중미술의 대가가 된 황재형 화백의 전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아버지의 자리, 162.1×227.3㎝, Nov.2011~Apr.2013, 캔버스에 유채



이번 전시에는 그의 화가 데뷔작인 “황지330”(1981년작)부터 우리 시대 보통 아버지들의 얼굴을 그린 최신작 “아버지의 자리”(2013년작)까지 황재형 화백의 일생에 걸친 총76점의 유화들이 전시된다.

황지330, 176×130cm, 1981, 캔버스에 유채


“황지330”은 그가 대학교 시절 그린 작품으로 당시 중앙미술대전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진 작품으로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중인 작품을 대여해와 전시한다.


 

외눈박이의 식사, 162.2×130.3cm, 1984~1996, 캔버스에 유채

탄광의 갱도 내에서 광부가 식사하는 모습을 그린 “외눈박이의 식사”(1984년작), “식사Ⅱ”(1985년작) 등 5점은 가나아트센터에서 대여해온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작품들이고,


황재형 화백이 소장하고 최근에 작업한 70점의 작품들은 1982년부터 2013년까지 작가가 보는 척박한 세상의 변화와 그러함에도 변함없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백두대간, 496×206.5cm, 1993~2004, 캔버스에 유채

또한 이 땅에 대한 애정은 그의 작품의 주요 특징으로서 10년에 걸쳐 제작한 500호짜리 “백두대간”(1993~2004년)은 그의 시선이 단지 그가 사는 곳에 머물지 않고, 한반도와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전체에 대한 애정이 그의 작품의 주요 테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걸작이다.


황재형 화백은 민중의 땀과 함께 하는 화가라 할 수 있다. 1980년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황재형 화백은 야학과 공단에서 본 가난한 노동자들의 현실에 주목하였고, 우리 사회에서 제일 소외되고 막장이라 불리던 강원도 탄광촌까지 찾아가 민중의 삶을 직접 체험하면서 진정한 화가로서의 꿈을 키운다.


그는 우연히 황지탄광에서 갱도 매몰 사고로 사망한 어느 광부의 작업복과 조우하고, 그의 유품인 작업복을 그린 “황지330”이라는 작품으로 당시 중앙미술대전에 대학생의 신분으로 입선하여 화가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러나 그를 진정한 화가로 만든 것은 관찰자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삶과 그림이 일치되는 그림을 향한 그의 열정이었다. 1982년 황재형은 가족과 함께 직접 강원도 태백의 탄광촌으로 들어가 직접 광부가 되어 삶과 일치하는 그림을 그렸다. 탄가루로 인한 결막염 때문에 광부 생활을 그만 두고 나서도 그는 탄광을 떠나지 않았다. 인생의 막장이라는 탄광에서 그들의 이웃이 되어 그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그렸다. 그가 이른바 광부화가라는 별칭을 가지게 된 이유이다.


▲  선탄부, 권씨, 60.7×72.6㎝, 1996, 캔버스에 유채        ▲ 탄천의 노을 11, 259.1×181.8㎝, 2011, 캔버스에 유채

1991년 강원도 태백의 황재형을 알아본 한국의 대표화랑 중 하나인 가나아트가 황재형의 개인전을 개최하여 비로소 황재형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다. 인생의 막장에서 인생의 진실을 담는 작가, 인간의 고통을 스스로 느끼며 인간의 애환을 담는 작가로 말이다. 헤드 랜턴을 낀 채 갱도 내에서 도시락을 먹는 광부의 모습을 담담히 그린 “식사 Ⅱ”(1985), “외눈박이의 식사”(1984), 고개를 숙이고 연장을 든 가방을 어깨에 맨 노동자의 뒷모습을 그린 “역에서“(1986), 탄광촌을 흐르는 검은 하천에 비친 노을을 그린 ”탄천의 노을“(1990) 등 탄광촌의 풍경과 작업의 모습 등이 그려졌다.


1984년부터 2010년까지 그는 개인전을 할 때마다 <쥘 흙과 뉠 땅>이라는 제목을 고집했다. 6번의 개인전 모두 마찬가지였다. 산들이 겹쳐있고 그 산 한 모퉁이에 자리 잡은 마을과 생명력을 그린 “백두대간”(1993), 온통 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절규하는 눈빛의 “선탄부 권씨”(1996), 다닥다닥 붙어있는 낙엽 같은 판잣집들을 그린 “삶의 무게”(1999), 돌멩이를 얹어놓은 슬레이트 지붕을 가진 낡은 집에 비추는 “노을 한 자락”(2003), 험준한 계곡 아래 조그맣게 모여 있는 눈 쌓인 판잣집에서 새어나오는 노란 불빛을 그린 “아랫목Ⅱ”(2004), 비탈지에 형성된 판잣집들에 비추이는 “고한의 볕”(2006) 등은 모두 쥘 흙만 있을 뿐 뉠 땅 하나 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었다.


▲ 고한의 볕, 162.2×130.3cm, 2006~2008, 캔버스에 흙과 혼합재료

▲ 존엄의 자리, 162.1×227.3cm, 2010, 캔버스에 유채


작가는 “그림을 통해 너무 편한 잠을 자는 사람에게는 불편함을, 불편한 잠을 자는 사람에게는 안식을 주고 싶다.”며 “서울이 더 탄광 같고, 이 속에서 시름하는 실업자들 가운데 광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한다.


이제 태백은 탄광촌은 사라지고 관광도시 태백을 내세우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탄광만 막장이 아닙니다. 서울 어디라도 막장은 있습니다. 저는 그 시대의 삶과 정면으로 부딪혔을 뿐입니다.” 태백은 그의 생활의 근거지, 그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이제 탄광은 사라지고 없지만 소재와 풍경이 바뀌었을 뿐 그의 작업엔 여전히 뿌리 깊은 고뇌가 느껴진다.


올해부터 그의 개인전 제목이 <삶의 주름, 땀의 무게>로 바뀌었다. 황재형이 태백으로 들어간 지 벌써 30여년, 한 세대가 지나고 대한민국이 그만큼 바뀌었다. 그러나 시대와 사회가 바뀌어도 이 땅과 이 땅위에서 사는 민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작품이 말해주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던 개막식에는 소리꾼 장사익 선생님이 참석하여 개막식을 빛내 주셨습니다.

황재형 작가님의 그림을 보시고 팬이 되셨다고 하네요.


11월 30일에 있는 작가와의 대화에서는 한국큐레이터협회 윤범모 회장, 성곡미술관 박천남 학예연구실장이 참여해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입니다. 


♧ 전시회 이모조모




황재형의 그림을 보노라면 눈물이 난다. 나는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과장의 수사인 줄만 알았다. 

황재형의 그림을 보기까진 말이다. 그의 작업을 찾아보고 그의 삶을 알고 나니 민중미술이란 말로 그를 가두어 놓는다는것은 너무나 안일하고 편의주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탄광 화가, 광부 화가라는 말도 그를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는 이 땅위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과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을 그리는 화가일 뿐이다.

- 변길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일부이미지 및 글 제공 : 광주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은 운암동에 있고, 상록전시관과 금남로분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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