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빛 물든 쓸쓸한 낙엽의 빛깔도 깊어가는 가을 가슴속에 풍경화 하나 그리 싶어
겨울이 가까워지는 길목 투명한 늦가을 하늘빛, 하천 길 따라 옛 선현들의 멋과 낭만이
그윽한 사색의 현장, 풍영정을 찾아 나선다.
돌담과 낙엽과의 어울림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운치가 새록새록 남아 있는 문화재 현장이었다.
광주 광산구 신창지구 풍영초등학교 정문에서 왼쪽으로 감아 도니 시골길 비슷한 도로 옆에 풍영정 표시판이 보인다. 영산강 상류의 기름진 들판을 뚫고 극락강 강변의 절벽 위, 선창산 자락에 안긴 풍영정은 늦가을에 정자로 오르는 돌계단의 운치가 제법 묵직하다. 어딘가 도사리고 있던 바람이 불더니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풍영정은 중종 20년(1525)에 과거급제 후 관직을 시작하여 1560년(명종 15) 조선시대 사대교린(事大交隣)에 관한 문서를 맡아 보던 승문원(承文院) 관청의 판교 일을 끝으로 귀향한 광산김씨 김언거(1503∼1584)가 지었다.
김언거(1503∼1584)의 본관은 광산, 자는 계진(季珍), 호는 칠계(漆溪)이다. 김정(金禎)의 셋째 아들로, 1525년(중종 20) 사마시(司馬試), 1531년 문과에 급제한 뒤 옥당(玉堂)에 뽑혀 교리(校理)·응교(應校)·봉사시정(奉史侍正) 등의 관직을 거쳐 경북 상주· 연안(延安) 군수를 지냈으며 승문원 판교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왔다.
극락강을 마주보고 있는 정자에 올라 앞을 조망해보니 옛날에는 지극히 아름다웠을 풍광의 자태였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가사문학의 산실로써 고고한 선비들의 기상이 하늘을 찌르고 그들이 토해낸 아름다운 시들이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자리매김 또한 지대하였음을 제영현판(題詠懸板)과 명필 한석봉이 쓴 제일호산(第一湖山)이라는
편액(扁額)의 흔적만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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