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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문화재탐방]광주 지산동 동오층석탑과 신룡동 오층석탑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안타까움



지난 월요일이 딸기농부 2006년 조대병원 간이식후 7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매월 정기진료의 날이었습니다.  진료받고 나오는 길에 우연하게 도로표지판 옆으로 "광주동오층석탑 400미터" 라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망설임없이 방향을 틀어 가보았답니다.  스마트폰으로 몇장 담으면서 왠지 송구하다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국가지정문화재로 보물 제110호로 지정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문화재를 앞에 두고 말이다. 


 사진만 담아두고 이틀여가 지난 수요일 우연히 광주 임곡동이 노지수박 농가를 탐방을 갔다가 임곡동 안쪽 도로변의 "신룡동 오층석탑" 표지판에 마음이 쏠렸다.  광주 동구 지산동에 위치한 "광주동오층석탑" 과 과연 무엇이 다른지 사뭇 궁금해지더군요.  이정표에서 방향대로 2.5km정도를 더 달려갔더니 마을 중간쯤의 전주에 "신룡동 오층석탑" 표시가 눈에 띤다.  어?~~ 그런데 이곳은 4~5년전에 이 마을 단감재배농가의 선진시 견학차 와본 기억이 있는 곳이더라구요~!!  세상에나...^^ 이럴수도 있군요.  그때는 블로거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을 때라 오층석탑에 대해서 관심없이 넘겼었던 것 같아요.


[신룡동 오층석탑과 예상 밖의 횡재 석불입상]



광주 동구 지산동 보물 제 110호 "광주동오층석탑" [光州東五層石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의 양식을 포함하고 있는 오층석탑! 그 오랜 세워을 잘도 견디었구나!   이 정도의 미끈한 탑이 세워진 곳이라면 분명 그 명성을 날리던 대규모의 사찰이 있을 법도 한데...어찌 그 세월속에 홀로남아  천년을 넘어 온갖 희노애락을 보듬으며 굳건하구나! 한참을 서성이며 만져도 보고, 얼굴 볼살을 부벼도 본다.  간절한 소망을 두손 모아 빌며 지칠때까지 오층석탑 주위를 돌던 중생들의 소망을 몇이나 들어 주었을까? 궁금도 하다.  내로라 하는 당대의 석공들의 혼신을 다한 솜씨가 더욱 돋보이는 오층석탑


 광주광역시내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2기의 탑 가운데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탑이 서있는 부근은 백주사(栢州寺)터로 알려져 있기도 하나 추정할 만한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탑의 구성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형태로 신라석탑의 기본형을 잃지 않고 있다.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는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구성하였으며,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특히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1층은 5단인데 비해 2층부터는 4단으로 간략화되어, 양식상 만들어진 시대가 통일신라 후기로 내려옴을 알 수 있다. 

1955년 해체, 수리할 때 4층 지붕돌 윗면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고 1961년에 다시 수리를 하여 일부 석재를 보완하였다. 광주 전남지방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5층석탑 가운데서도 우수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출처-문화재청]



광주시 신룡동오층석탑[광주시 유형문화재 제 12호]


이정표 아래 차를 멈춰 세우고 한적한 골목길을 따라 걷습니다.  벽돌 담장과 지붕을 나무유리창틀로 이어붙인 옛스러움이 반갑다.   담장 밖으로 고개를 살포시 내미는 자리공꽃과 푸른 빛깔의 단단한 자두가 바라만 보아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군요.








분명 800여 미터라고 표시가 되어 있는데  200여미터를 걷고는 길을 헤맨다. 덕분에 담벼락 밑 낮은 곳에서 어여쁘게 피어나는 꽃들과 잠시 눈마춤을 할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다.  채송화...빨강, 노랑, 분홍의 고운색으로 방긋이 웃고 있는  귀여운 녀석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옆으로 이제 막 피어나는 두 뼘도 채 안되는 봉숭아가 꽃을 피웠다.  이렇게 해찰하는 시간...나쁘지 않다.  조금 늦게 본들 무슨 대수일까..기온이 이리도 뜨거우니 밭에 간들 일도 못할 것이니 마음을 여유롭게 다독인다.  마을 경로당의 창문으로 어르신들의 음성이 나즈막히 들렸다.  가까스로 길을 여쭙고 나서야 올바른 길을 알았다. 


 차를 가지고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신다. ㅎㅎ 그런데  신촌마을...이곳이 행주기씨의 집성촌 이라는 커다란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500여년전부터 지금의  신룡동 신촌마을에 터를 잡아 아직도 타성이 살지 않는 전국에 몇 안되는 집성촌이라 한다.  옆집, 앞집, 뒷집이 모두 친족간인 곳! 왠지 그런 곳에서 살아도 좋을 듯 싶다.  



차를 타고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단감농장의 작업장 창고 외벽의 커다란 벽화... 벽화 속 꼭대기 백우산 자락에 "신룡동 오층석탑"이 보인다. 벽확속에 행주기씨의 문중재각이 중앙에 그려진 것으로 보아 이 분도 행주기씨 성을 가지셨나 보다. 



단감 농장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소를 키우는 축사로 보이는 건물이 여러채 보인다.   아니 이런곳에! 그 신룡동 오층석탑이 있다는 건가.... 축사 가까이 갈 쯤 한개의 전주벽에  "방역상 출입금지" 라는 빨간 경고문이 보인다.  허허~~ 하지만 어쩌랴  오층석탑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 여간 마음 내키지 않았다.  전진~! 축사 가까이 차를 주차하고 카메라를 챙겼다.  

보인다~!!! 보여~ 저기 탑신의 끝자락이 시야에 포착이 된다.  어라? 그런데... 오층석탑 바로 옆에 불상으로 보이는 것이 있어요!




 얼굴이 무슨 사연인진 몰라도 마치 연마기로 갈아 뭉갠것처럼 하얗게 지워져 버렸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까닭이 참 궁금해진다.  가만히 서 있는 석불입상이 무슨 헤꼬지라도 했단 말인가? 아님 백일, 천일 기도를 지성으로 올렸는데 아무런 자비도 베풀지 않았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을 문다.  그래도 그렇지....보는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이 밀려 들게 한다.  


 법의의 주름 곡선까지도 세세하게 조각해 놓은 손길이 참 고맙다.  왼손은 촉지인 [왼손을 자신의 배꼽에 대고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는 모양], 오른손은 시무외인[부처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베푸는 인상으로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해 물건 주는 모습]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토록 자비로운 석불입상을 저리도 모질게 훼손을 했는지 아쉽다.





 신룡동 오층석탑[新龍洞 五層石塔] 주위가 개인 소유의 한우축사여서 그런지 탑 주위의 넓은 땅에 사료작물을 심고 벤 흔적이 역력하다.  행정관서의 시급한 문화재 보호대책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가축의 방역상 외부인을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누구나가 편안하게 자랑스런 문화재를 관람하고 자료를 담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함이 옳다. 문화재 지정에만 국한되지 않고 오래도록 보존이 되고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이 가능하게 보완대책이 시급하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오층석탑 옆에 석조여래입상의  존재는 백우산의 산새와 더불어 아주 오래전에 제법 큰 규모의 절터 였을 것으로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외딴 민가 옆에 우뚝 솟아있는 석탑으로, 현재는 절이 있었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으나, 그 옆에 석불입상이 1구 있어 상당한 규모의 절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탑은 2층 기단(基壇)위로 5층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의 몸돌은 2층에서 갑자기 높이가 낮아져 5층까지 알맞게 줄어들었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은 4단씩이다가, 4∼5층은 3단으로 줄었다. 


 꼭대기에는 돌의 재질이 다른 장식들이 놓여 있는데, 나중에 보충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형식에 치우친 모습이어서,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층 기단이 손상되고, 일부가 없어져 심하게 갈라진 위층 기단은 거의 무너질 정도였으나, 1981년 해체, 복원하였다. 탑 해체시 발견되었던 유물들은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조만간 시간을 내어서 국립광주박물관에 보존된  1981년 복원 당시 발굴된 금동사리함과 그 외 유물들을 만나 보고 싶어진다.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되는 신룡동 오층석탑.... 훼손된 석조여래입상의 모습과 더불어 찾아가기 힘든 곳에  일반 한우축산 농가의 중앙에 있어 안따까움이 밀려오는 광주 문화재 답사여행!  광주 동구 지산동의 보물 제 110호로 지정된 "광주동오층석탑" 과 매우 흡사하다.  기단의 모습과 1층 탑신부 이후 높이가 급격히 작아지는 형상이 너무도 닮아있다.  혹시 동시대의 같은 석공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