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누려라 광주/정보

[5.18 전야제] 오월광주, 다시 평화와 통일로

 제33주년 광주 5.18 민주항쟁 전야제 

5.18 민주화운동이 33돌을 하루 앞두었던 17일 저녁.

광주에서는 민주, 인권, 평화 등 5월의 정신을 기리는 5.18 전야제가 시행되었다.

5.18 민주항쟁 33주년 기념행사위원회는 저녁 7시부터 광주 동구 금남로 특설무대에서 '오월광주, 다시 평화와 통일로'

라는 주제로 무대행사를 시작하였다.


출발하면서 봤던 태극기.

흡사 가을이라 느낄 정도의 선선한 바람길을 따라 펄럭이는 태극기가 왠지 모르게 애잔함을 안겨주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금남로 거리에 도착하여 보니 저멀리 오월의 나무가 나를 반겨주었고,

5,000여명의 인파가 한마음 한뜻으로 행사를 즐기고 참여하고 있었다.

일부 길거리에는 체험공간이나 좌판이 있어 아기자기한 소품을 직접 구매하거나 만들어볼 수 있었고 서명운동도 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최저임금인상에 대해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 역시 직장을 다니면서 최저임금을 받아보기도 했고, 대부분의 아르바이트생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다는 말도 들었던

기억이 있어 소중한 한표를 찍어주고 왔다.


1981년 광주에 살던 소설가 황석영씨와 민중극단 '광대'에서 활동했던 문화활동가들이 5.18광주민주항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작한 노래극 '넋풀이굿'에 실린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이다.

황작가가 백기환선생님의 '묏비나리'라는 시를 개작한 가사에 작곡가 김종률씨가 곡을붙여 탄생했다.

이 곡은 1970년대 후반 전남대에 다니며 광주 서구 광천동 들불야학에서 함께 강학을 한 윤상원씨와 박기순씨의 1982년 2월

영혼결혼식에서 불려진 뒤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그런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제창이 불발되어 반쪽행사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또한 정부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퇴출, 일부 종합편성채널과 수구 단체의 '5.18역사 왜곡'에 항의하는 목소리도 거셌다고

전해졌다. 같은 날인 17일 오후5시 광주 북구 국립5.18 민주묘지 민주의 문 앞에선 시민, 노동자, 대학생 등 500여명이 참석하여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제창을 퇴출시킨것에 대해 항의하며 이틀째 농성하던 광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함께 5.18역사왜곡 등을

규탄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정곡으로 촉구하길 바란다며 서명운동을 하고 있어 미약한 힘이지만 서명을 하고 왔다.

무대까지 가는 길에 마주하게 된 조선대학교 풍물놀이연합.

아무래도 행사를 위해 연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비록 연습을 하는 모습이였지만 풍악소리는 신명나고 즐거웠다.


풍물놀이연합을 벗어나 걷다보면 불매운동을 하는 곳을 볼 수 있었다.

전범기업 미쓰비시 불매운동. 과연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무엇일까?

일본제품의 대표적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는 징용으로 조선인 만여명을 끌고가 임금 한 푼 지급하지 않았고, 임금체납 액수가

가장많은 일제 식민지 최대 수혜기업이다. 니콘카메라, 미쓰비시 자동차빔 프로젝터, 기린맥주 등이 이에 속한다.

광주 시민들의 넋을 기리며 한없이 목놓아 우는 듯이 구슬프게 들었던 노랫가락.

너무나 애절했고 여러 현악기들의 소리가 억울한 영혼들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2013 오월광주, 다시 평화와 통일로...

이번 33주년 5.18을 맞이하기 하루 전, 전야제밤을 단 한줄로 요약해 놓은 문구이다.

애절한 노랫가락이 끝나고 무당 박조금 할머니의 한풀이가 시작되었다.

광주MBC라디오에서 진행하는 '말바우아짐'에서 맛깔스러운 전라도 사투리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지정남씨가

무당 박조금 할머니의 역할로 5.18때 행방불명 된 아들을 찾으며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타는 그리움을 전달했다.

광주 놀이패 '신명'의 단원으로 마당극 배우인 그는 광주MBC '新 얼씨구학당'의 진행자였다고도 한다.

맛깔나는 전라도 사투리 때문이였을까?

너무나도 재밌고 슬픈 마당극을 보게 되었으며 지정남씨의 연기력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이어서 우리시대의 최고의 춤꾼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이애주선생님의 씻김굿이 시작되었다.

무대를 휘돌아 쓰러지며 5.18의 굴곡진 역사를 표현하고, 죽은자를 씻겨 상생과 통일로 나아가는 진혼춤을 추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 무대는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의 집단발포로 숱한 희생자가 발생했던 발생했던 장소에 마련되었다.

그는 전야제의 절정인 저녁 7시50분 부터 20분 남짓 공연을 했다.

씻김굿이 끝나고...

전쟁이 무서움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미래의 꿈나무의 낭독도 함께 했다.

낭독글을 들으며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말은...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왔던 문구였을지도 모른다.

나도 학교다닐 때 한번쯤 고민하고 생각했던 부분이였으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A trio의 소녀의 노래.

애절한 목소리가 매력적이였다. 처음엔 발라드처럼 시작했는데 중간에는 박자가 빨라지면서 흥겨워졌던 것 같다.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애절했다.

이어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는 일본인들이 광주를 방문하여 정신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무대위로 올라섰다.

5.18 민주항쟁 33주년기념 행사위원회의 초청으로 이날 광주를 찾은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 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관계자들은 전야제 인삿말과 연대 시(詩)를 통해 5.18광주의 정신에 많은 힘을 얻는다고 밝혔다.

마이크를 쥐고 있는 다카하시 마코토(高橋 信)씨는 전야제에서 발표한 인삿말에서 "5.18 민주항쟁은 우리를 격려해주고 많은 용기와

힘을 준다."고 말했으며, 또한 "강제동원 피해를 당한 근로정신대를 위해 1999년부터 소송을 했고 금요행동과 미쓰비시와의 협상 등을

해왔지만 역대 자민당 정부와 전범대기업, 사법부의 높은벽에 막혀왔다. 그러나 역사의 역풍에 저항하여 과감하게 계속 걸어가겠다."고

뜻을 밝혔다. 하루빨리 할머니들의 한이 풀어지길 바란다며 힘을 실어주는 일본인들도 있다는 점이 너무 든든했다.

뒤이어 쌍용차해고노동자, 용산철거민, 제주 강정마을 대표들을 전야제에 초청하여 평화세상을 위한 광주시민의 연대를 전달했다.

모든 연설행사가 끝나고 다시 광주의 놀이패 '신명'이 무대위에 올라왔다.

그런데 6~7명이 얼굴에 탈을 쓰고 박조금할머니와 함께 나타났다. 이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언젠가 봄날에'이라는 이 마당극의 일부분으로 1980년 5월18일 당시 계엄군에게 죽임을 당한 행방불명자 3명의 아픔과 살아남은자들의

슬픔은 그린 작품이다. 도종환 시인의 '언젠가 봄날에'에서 제목과 분위기를 따왔다고 한다.

마당극의 묘미를 살려 흥미를 돋우고 파안대소를 자아내는 소리와 몸짓, 대사와 탈춤이 작품 전반에 두루 깔려있다.

아무래도 탈을 쓴 사람들 중에는 박조금할머니께서 애타게 찾는 아들 호석이도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공연을 장식한 박성환밴드.

길 위에서 노래하다 / 손 / 돈 / 개울 / Why 그리고 앵콜곡 임을위한 행진곡...

이렇게 6곡을 불렀고, 특히 개울이란 노래는 관객들에게도 두 소절의 가사를 알려주어 함께 불렀으며

Why라는 곡에서는 박성환밴드가 'Why'라고 말하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며 함께 열창했다.

마지막 앵콜곡으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000여명의 광주시민들이 모두 다 함께 열창했다.

래미학교의 학생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플래시몹 공연도 했다.

요즘 인기있는 싸이의 젠틀맨 안무인 시건방댄스도 함께 믹스하여 'I ♡ 오월 광주의 그날을 기억하겠습니다' 라는 문구를

보여주며 안무를 선보였는데 덕분에 전야제의 분위기는 최고조로 모두 즐거워하였다.

모든 무대행사가 끝나고 조선대학교 풍물놀이 연합회에서 신명나는 풍물놀이를 하며

광주시민들과 함께 춤도 추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록 가슴아픈 사건으로 인해 여러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하던 것이 33년 전 이지만,

그 당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모든 영혼과 한이 우리 5,000여명의 광주시민들의 소망으로

넋을 기리고 한을 풀어주려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으니 이제는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않고 저 높은 하늘에서

다시는 그런 슬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켜봐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비록 지금은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지만, 언젠가 통일이 되면 그리워하던 가족들과의 만남도 이루어질꺼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하면 낭독문을 읽던 여학생의 소원처럼 전쟁의 무서움이 없는 곳에서 북한으로 수학여행도 가고 북한친구를 사귈 수 있지 않알까...?


Photo&Edit by. 강민

[ 강민승 / 제4기 블로그기자단 / http://min_s0520.blog.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