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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광주양림동 선교사 두 번째 이야기-광주랑

배유지 연보 (Eugen Bell)

○ 1868년 4월 11일 미국 켄터키 주 Scott Station 에서 출생

○ 1894년 4월 18일 루이빌 노회에서 목사 임직 받다. 6월 26일 루이빌 신학교 학장의 딸과 결혼

○ 1895년 2월 12일 San Francisco를 출항하여 한국으로 향하다 4월 9일 서울에도착하여 Dixie에 여장을 풀다

    9월 강경에서 어학연수와 선교훈련을 시작. 설사병으로 서울로 오다 10월 을미사변 이후 고종의 불침번을 서다

○ 1896년 2월 11일 레이놀즈와 함께 목포의 부지매입을 위하여 제물포를 떠나다 목포에서 2 에이커를 구입하다.

    5월 27일 첫 아이 헨리(Henry Venable)가 태어나다

    9월 해리슨(W. B. Harrison)과 함께 좌수영에 대한 선교부 탐색여행을 하다

    11월 남장로교 한국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과 광주를 거쳐 나주를 방문하다

    12월 나주를 전라남도의 선교부 부지로 확정하다

○ 1897년 3월 8일 어학선생 변창연과 함께 나주를 향하여 출발 3월 15일경 도착

    5월 19일 나주 시내에 있는 한옥 한 채를 구입하다 9월 나주에서 주민들의 반대를 마나 나주선교를 접다.

○ 1898년 3월 2일 서울을 떠나 목포로 향하다. 부지매입 절차를 매듭짓다

○ 1899년 1월 6일 둘째 아이(큰딸) 샬로트(Charlotte Witherspoon Bell)가 태어나다

○ 1900년 1월 테이트(L. B. Tate) 목사와 함께 광주를 방문하여 관찰사를 만나다.

○ 1901년 4월 12일 부인이 심장 발작으로 죽다

○ 1902년 12월 안식년을 마치고 목포로 다시 부임하다

○ 1903년 3월 200석 규모의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다  6월 헌당예배를 드리고 Lottie Wieherspoon Memorial Church라고 명명 11월 광주 인근의 여러지역으로 선교가 확장되다. 하나리교회, 영신교회, 도딤교회 등에 지원군 전도사가 상주하다.

○ 1904년 2월 전선교사성경협의회(All Mission Bible Conference)에서 광주를 선교부 후보지로 결정하다.

    3월 광주로 답사여행을 떠나다(오기원, 변요환, 선교사와 함께 4월 미국으로 가서 두 번째 부인을 맞이하다(Miss Witaker Bull)

    8월 부인과 한국으로 다시 와서 선교와 광주의 사택건축에 전념하다. 12월 15일 광주의 사택건축을 마치다. 12월 21일 광주로 이사하다. 12월 25일 사택에서 크리스마스 축하예배를 드리다 (광주사람들과 함께)

○ 1905년 광주 지역교회와 순회구역의 교회를 돌보다. 11월 영구 사택을 건축하고 이사하다. 11월 20일 임시사택을 평일에는 선교 진료소로 주말에는 예배처소로 사용하다. 1906년 2월 성경학교를 실시하다. (60여명 참석) 6월경 지역교회는 북문안에 교회터를 마련, 예배당을 짓고 옮기다. 9월 순회구역이 29개 처소

○ 1914년 8월 전라노회장에 피선  9월 제3회 총회장에 피선

○ 1922년 6월 10일 큰 딸 샬롯트가 린튼(William B. Linton: 인돈)과 결혼하다.

○ 1925년 9월 28일 광주의 사택에서 소천, 양림동 선교동산에 묻히다.

※ 자료출처 호남신학대학교 전 총장 차종순 저서에서 발췌   최종환 씀(광주시 블로그기자)

다음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