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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광주천 - 봄을 맞다

 


<광주천 풍경>

 예부터 명산 명수가 만나는 곳에 큰 고을이 생겼다. 광주는 무등산과 영산강이 이에 해당하고 이 둘을 이어주는 것이 광주천이다. 광주에 사람을 살게 한  핏줄 같은 곳이 광주천인 셈이다. 서울의 청계천이 그러하듯 광주의 역사가 광주천의 물줄기와 함께 흘렀다는 말이 딱 맞다. 가난한 사람들이 천을 따라 닥지닥지 판자를 붙여 살던 곳에 번개 장이 서다가  양동시장, 대인시장이 되고, 이 천을 오가며 일군 땅이 금남로와 충장로가 되었다.

오일장이 열리던 광주천
<오일장이 열리던 광주천 옛모습>

광주천 현재 모습
<광주천 현재 모습>

살아난 광주천. 소통의 방식은 다르지만 다시 사람과 함께 하는 광주천. 봄오는 광주천을 가 본다. 현재 발로 걸어 느낄 수 있는 광주천은 증심사입구역에서 부터다. 학동과 양림동에서 도심을 가르고 광천동,유덕동,상무지구를 거쳐 극락강과 합류한다.
일부러 찾아가 걸은 구간은 남광주시장에서 양동시장 아래까지. 잘 다듬어진 천변 산책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물가에 앉아 쉬는 연인들까지 온갖 사람들이 다 있다. 가끔은 돌돌돌 소리를 내며 흐르기도 하고 작은 보가 설치된 곳에는 비단결처럼 조용한 물길위로 햇살이 반짝이기도 한다. 광주천의 옛 이름이 금계라고 했다는데, 그 이름이 딱 어울리는 풍경이다. 비단처럼 곱게 흐르는 물길.
광주천 풍경
<광주천 풍경>

 고싸움 놀이를 형상화한 양림교는 특히 이쁘다. 아래서 보면 막 날아오르려는 나비의 날개짓 같기도 하다.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 옛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는 양림동과 현대적인 건축물이 즐비한 충장로 사이를 무심히 흐르는 광주천. 덩달아 그저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뭇 사람들의 시선이 어떨까? 바보같아 보이겠지? 살랑 바람에 갓핀 갯버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유독 많았단다. 바로 옆의 양림동과 방림동이 천변 양쪽에 있었던 버드나무숲 때문에 생긴 이름일 정도다. 

양림교 주변 풍경
<양림교 주변 풍경>
양림교 풍경
<양림교 풍경>

양림교 풍경
<양림교 풍경>

양림교에서 좀더 내려가면 서석교다. 다리 밑에서 쉬고 계시던 할머님께서 옛날에는 여기가 빨래터였다고 말씀해주신다. 
“옛날에는 여기서 빨래를 했지.저 위에서 10원을 주고 빨래를 삶아서 여기 내려와 헹궜거든. 강변에 빨래 널어놓고 나서는 세수도 하고 목욕도 하고… 저녁나절에는 고기가 펄쩍펄쩍 뛰어 올랐어.” 



빨래터였던 광주천 옛모습
<빨래터였던 광주천 옛모습>
광주천 풍경
<광주천 풍경>

 서석교 주변은 본래 반달형의 넓은 백사장이었다. 가는 모래가 있던 백사장이라기 보다는 굵은 자갈이 깔린 강변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광주의 5일장이 열렸다. 즉 광주 장터가 바로 여기였다는 거다. 그러나 단순히 장터로만 기억할 게 아니라 여기서 광주지역 삼일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삼일운동은 장터에서 시작 되었다. 당시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일수 있었던 장소가 장터였기 때문이다. 
광주천 자전거 길
<광주천 자전거 길>

서석교와 부동교를 지나면 광주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주교 구간이 나온다. 왼쪽에는 광주공원 아래 <빛고을시민문화관>이 있고 그 앞으로 아치형의 조형물이 높이 솟아 있는 곳이다. 강에는 양쪽을 건너 다닐 수 있는 돌다리가 놓여있고, 다리 아래는 둥글게 수변무대가 꾸며져 있다. 강가에 앉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광주교 위 아치
<광주교 위 아치>

광주교아래 수변 무대
<광주교아래 수변 무대>

광주교 수변무대
<광주교 수변무대>

광주천변 풍경
<광주천변 풍경>

수변무대 뒤 제방위에는 석서정이라 불리는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석서정이란 본래 고려 우왕 때 양림동 쪽 광주천 한가운데 석축을 쌓고 지었다는 정자다. 제자리 아닌 곳에 최근 복원한 것이지만, 이 정자에 걸린 ‘석서정기’를 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된다. 목은 이색이 지은 글인데, 이 글의 첫머리가 ‘빛의 고을(光之州理)은 지세가 세 방면이 다 큰 산인데 북쪽만 평탄하다’로 시작된다. ‘광주’ 즉 ‘빛고을’이란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광주를 있게 한 근원이 여기에 있는 게다. 또한 광주천의 조경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여기기도 하다.
광주천 석서정 풍경
<광주천 석서정 풍경>

석서정 아래 돌다리
<석서정 아래 돌다리>

좀더 거슬러 내려가서 광주대교와 천교를 지나면 양동시장앞에 걸린 양유교다. 예전에 판자촌이 있었던 지역이기도 하고, 남도의 물건들이 가장 많이 모여들던 곳이기도 하다. 광주천은 여기서부터 넓어진다. 양유교 바로 아래는 발산교가 걸려 있는데, 이에 얽힌 사연 한토막을 들으며 광주천 걷기를 마친다.

광주천 천변 풍경
<광주천 천변 풍경>
광주천 풍경
<광주천 풍경>

 발산교 자리에는 뽕뽕다리가 놓여 있었다. 공사장에서 쓰던 구멍 뽕뽕난 철판 다리 말이다.
지금의 양동시장 뒤 광천동 쪽에 전남방직과 일신방직에 다니던 많은 여공들이 집을 많이 얻었다. 그래서 (방직)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준 것이 뽕뽕다리였다. 하지만 여공들은 다리 밑의 불량한(?) 시선 때문에 스커트를 못 입었다. 구멍에 걸리는 탓에 뾰족구두도 못 신었다. 는 웃고 넘길 일화다.

 


출처 : 유투어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