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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절로 가는 길

어디를 가던 기회만 닿는다면 이른 아침 조용한 사찰 찾기를 즐긴다. 맑은 공기를 가르는 처마끝의 풍경소리가 그리 좋을 수 없다. 풍경소리도 곳곳마다 다 틀리니 그 소리를 찾는 재미도 훌륭해서다. 특히나 풍경은 소리로만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도 듣는다. 처마끝에서 이어지는 산자락이나 하늘자락이 풍경속에 들어와 있어 이거야 말로 작은 우주나 다름없다. 희뿌연 안개라도 끼면 풍경소리는 더욱 신비롭다. 

 


<정겨운 산사의 풍경>

광주땅에 온 이상 그 소리를 포기할 수 없어 해도 뜨기 전 무등산 원효사로 향한다. 광주시내에서 원효사로 가는 길 부터가 너무 좋다. 마치 득도하기 위해 수행을 떠나는 스님들이 느끼는 가벼운 마음이 이런것일까? 
지산유원지 앞에가서 무등산자락을 접어드는 초입에 무등산 옛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붙어 있다. 이길을 따라 옛 사람들은 나처럼 아침 절을 보러 갔을 것이다. 가파르게 서너 구비를 돌고나니 아래로 광주도심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싸늘한 아침공기를 머금고 어렴풋한 안개에 싸여 있다. 가로등의 불빛이 채 꺼지지도 않았지만, 새로운 하루를 여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버스들의 부산함은 벌써 시작된 듯하다. 잣고개를 넘으니 갑자기 도시와 멀어진다. 깊은 산속에라도 온 듯 고즈넉하다.  차창으로 언뜻언뜻 비치는 산에는 산벛들이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다. 이 느낌이 너무 좋다 싶어 정신을 다스리고 보니 눈앞 도로에도 벛꽃천지다. 터널을 이루고 있는 벛나무들이 하얗게 꽃을 날리운다. 그 모습이 아까워 천천히 차를 지난다. 

원효사 가는 길-무등산자락
<원효사 가는 길-무등산자락>

원효사가는길-포충사 앞
<원효사가는길-포충사 앞>

원효사가는길-포충사앞
<원효사가는길-포충사앞>

 꽃잎이 더 아름답고 환상적인 것은 아마도 옅은 안개 때문이었으리라. 벛꽃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지만 말이다. 산아래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안개가 이리도 감성적일줄을 몰랐다. 표충사를 비켜 지날때는 벌써 밭 한켠에서 호미질을 하시는 어머님의 부지런함도 만난다. 충장사를 왼눈으로 스쳐보며 한줄기 빛이 드리우는 산길을 오른다.

무등산 원효사 일주문
<무등산 원효사 일주문>

산죽의 싱그러움이 눈앞을 매웠다 흩어지니 원효사 일주문이다. 이제사 여유를 부려본다.
일주문앞에서 산을 한바퀴 돌아본다. 절이 높이있는 탓에 정상 능선이 바로 올려다 보인다. 이름난 다른 산들처럼 삐죽쏫은 모양이 아니라 두루뭉술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백산 위에서 느꼈던 그 모양새다. 무등의 이름이 불교에서 말하는 무유등등(撫有等等). 만인이 평등하다는 의미다. 이름에 비추어 산을 오르는 것이 바로 해탈의 경지. 누구에게나 해탈의 길이 열려있음을 뜻하니 어찌 좋지 아니할까.
 일주문앞에 눈에 띄는 간판이 보인다. 절로가는 길. 개량 한옥이 너무 아름답다. 아래서는 집이 있나 싶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다가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눈앞의 능선을 보기좋도록 눈길잡이가 되어 준다. 이런 집에서 살면 좋겠다 싶어진다. 안을 들여다 보니 맛집이다. 아직 문을 열지않아 나중을 기약하고 눈요기만 한다. 좀더 오르면 원효사 입구라고 새겨진 표지석 옆으로 부도밭이 있다. 잘살펴보니 원효대사의 부도도 있다. 모두 조선시대 말에 조성된 것이라는데 원효의 부도라니 의아하다. 아마도 절의 연혁을 올곧게 하고 정통성을  내 세우고자 후대에 임의로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절이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고보면, 사실 여부를 떠나 의미는 있겠다 싶어진다. 

원효사가는길-일주문지나서
<원효사가는길-일주문지나서>

원효사 부도탑
<원효사 부도탑>

부도탑을 아래에 두고 윗길에 접어들면 범종각과 회암루가 나란히 보인다. 회암루 아래 좁은 계단을 올라 절 마당에 닿는다. 산의 명성이나 절의 명성 만큼 절은 크지 않다. 오래된 느낌보다는 새롭게 조성된 절처럼 너무 맑아서 다소 의아하다. 대중전 왼쪽에 개조당이 있어 그나마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을 따름이다. 

원효사 회암루
<원효사 회암루>

회암루아래 대웅전 가는 길
<회암루아래 대웅전 가는 길>

원효사는 신라때 원효대사가 암자를 짓고 수행하던 곳이라지만 현재의 원효사 풍경을 확정지은 것은 1980년대 주지였던 신법타 스님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먼저 떠오른 것은 시인 고은이다. 고은 시인은 젊은 시절 탁발승의 행적을 했었다지. 군산 동국사에서 수계를 하고 일초라는 법명으로 출가를 한 후 이곳 원효사에서 기행에 가까운 수도승 노릇을 했다는 자서전 속 얘기가 일순 떠오른다.

원효사 전경
<원효사 전경>

 대웅전 앞에서 회암루쪽을 바라본다. 아! 감동이다. 회암루 용마루와 윤필봉이 나란히 보인다. 오른쪽의 조금더 높은 봉우리는 의상봉일테다. 아직 채 걷히지 않은 새벽안개와 어울려 심도얕은 망원렌즈속 풍경같다. 내 지식이 맞다면 저 봉우리 아래 윤필거사가 굴속에서 수도하고 도를 깨쳤다는 윤필암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안양사로 불리운다지만, 두 불교 선사들의 고행이 여기서 이루어졌다니 무등이라는 산 이름이 더욱 깊이 와 닿는다.

대웅전앞에서 본 회암루
<대웅전앞에서 본 회암루>

회암루 옆에 핀 목련
<회암루 옆에 핀 목련>

천천히 걸어 회암루에 올라본다. 눈아래 계곡으로 구름 한점이 바다위 작은 배처럼 흘러간다.
여기 회암루에서 바라보는 무등산 달오름이 무등산 8 경중 으뜸이란다. 바로 옆에 있는 범종각의 저녁 종소리가 2경이라 하고..
원효사 범종각
<원효사 범종각>

원효사 범종각
<원효사 범종각>

경내를 한바퀴 더 돌아보고 절을 나선다. 그리고 다시 절로가는 길 앞에 선다. 아름다운 집에 반한 이상 그 속내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내부도 아주 정갈하다. 

절로가는길 식당
<절로가는길 식당>

절로가는길 식당 내부
<절로가는길 식당 내부>

절로가는길 식당 내부
<절로가는길 식당 내부>

크지는 않지만, 작은 방도 하나 있고, 창쪽으로 식탁들이 여럿 놓여있다. 중간에 커다란 굴뚝이 있는데, 하얀 벽 가득히 낙서가 쓰여있다. 찬찬히 살펴보니 알만한 사람들도 여럿있고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집 모양만큼 음식도 정갈하고 맛있다. 

절로가는길 식당 된장 보리밥
<절로가는길 식당 된장 보리밥>

절로가는길 식당 된장 보리밥
<절로가는길 식당 된장 보리밥>

절로가는길 식당 된장 보리밥



<절로가는길 식당 된장 보리밥>

된장 보리밥. 쌈장처럼 다직하게 끓여나오는 된장이 너무 전라도답지 않게 반찬수가 적지만, 오히려 절에서 공양하듯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든다. 절로가는 길 때문에 이번 아침 절 구경이 더욱 마음 풍부해졌다. 으뜸원. 새벽효. 이름 그대로 아침이 좋은 원효사 가는 길이다.

 

 

 

출처 : 유투어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