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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기찻길의 변신 <푸른길 공원>

 


<기찻길의 추억>

 이십여전 전만해도 새벽기차를 타고 출근을 하고 등교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광주를 중심으로는 장수나 나주, 화순에서 아침 기차를 타고 왔다가 저녁기차를 타고 귀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다. 필자도 고등학교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새벽같이 차를 타고 광주로 들어설때면 광주 사람들은 아침준비가 한창이었다. 창밖으로 기찻길과 가까운 집안 모습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마당에서 세수를 하는 학생, 집 앞 골목 청소를 하는 아저씨 등등이 차창으로 지나간다. 광주역 직전의 건널목을 지날때면 가슴이 콩닥거리기도 했다. 세라복이라 불렀던 청색 교복을 입고 치마앞에는 가지런하게 두손으로 가방을 잡고 서 있는 여학생 때문이었다. 기차가 좁은 골목을 지날때면 세수한 물을 기차로 확 끼얹는 남학생들의 장난도 숱하게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차는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기찻길의 추억
<기찻길의 추억>

 광주도심에서 화순과 순천을 오가던 기차가 1922년부터 2000년까지 78년 동안 다녔다. 근대화가 한창일 때 이 열차는 고마운 존재였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이후 어느정도 사람의 터전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진다. 잇따른 사고와 소음으로 기찻길 옆 동네들이 슬럼화하기 시작한 탓이다. 주민들은 철도 이설을 끈질기게 요구했고, 이 요구가 실현되는 데는 26년이 걸렸다. 새로 외곽 노선이 만들어지자 광주 도심에는 길이 10.8㎞, 너비 8~26m, 면적 16만5000㎡인 띠 모양의 기찻길 터만 남았다. 

폐선로 살려 만든 푸른길공원
<폐선로를 살려 공원으로 만든 푸른길 공원>

이 기찻길 터 활용을 두고도 광주시는 경전철을 만들고자 했고, 시민단체는 도심공원을 바랐다. 논란 끝에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시민 3분의 2가 공원을 지지했다. 마침내 2002년 5월 광주역~동성중 7.9㎞의 폐 기찻길이 ‘푸른길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기찻길이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은 여기가 전국 최초다. 최초라는 것보다 이 길이 더 의미 깊은 것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조성되었다는 거다.

기찻길 공원화 사업
<주민들의 염원으로 시작된 기찻길 공원화 사업>

광주 주민들은 ‘푸른길 가꾸기’ 운동본부를 만들고 전국적으로 설계를 공모하는 한편 100만그루 나무 심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결과 개인·단체·기업들이 앞다퉈 기금 3억7천만원을 조성했다. 도심지인 옛 남광주역에는 열차 두 량을 기증받아 추억의 명소를 만들었다. 
이런 노력으로 푸른길은 불과 4~5년 사이에 도심 쉼터로 변모했다. 지금에 와서는 이 일대의 알콩달콩한 일화들을 전하는 소출력 에프엠(FM)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고, 주말이면 형사반장·대학교수 등으로 짜인 ‘푸른길 예술단’이 신명나는 무대를 펼치기도 한다.
이런 성공으로 푸른길 공원은 ‘환경도시대상’ ‘공간문화대상’ ‘녹색대상’ ‘환경영웅상’ 등 국내외의 환경상을 휩쓸었다.

푸른길 공원 시작점
<시민들의 손으로 일궈낸 푸른길 공원 시작점>

  광주역을 나오는 방향에서 왼쪽 담장을 돌아나가면 광주역 철로 마감점이 나오고 길건너에 푸른길공원 시작점이 있다. 콘크리트로 된 공원 입구를 들어서면 예전 그대로의 가로수길이 이어지고 허름한 집들이 점점 좋은 건물들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길이 크지 않고 아담하며 사람들의 생활들이 묻어있다.

푸른길공원을 걷는 사람들
<푸른길공원을 걷는 사람들>

푸픈길 공원 풍경
<푸픈길 공원 풍경>

끊어진 철길이 옛 모습 그대로 한 구간씩 남아 있기도 하고, 철길은 없고 건널목만 남겨놓은 곳도 있다. 기찻길옆 동네의 풍경은 지금도 여전하다. 동네 한켠에는 국밥집이 여태도 성이고 꽉 막힌 창문안에서 통키타 소리가 흘러나오는 풍경도 변함없다. 두 철선 사이 철목을 비집고 나온 잡초도 꽃을 피우고, 길옆에는 조팝나무 꽃이 유독 많이 피었다. 이길을 걷다보면 그 수수함에 조팝나무를  수선국으로 부르는 이야기가 절로 생각난다.

푸른길공원의 조팝나무
<푸른길공원의 조팝나무 >

푸른길공원의 조팝나무
<푸른길 공원을 걷는 사람들>

 “옛날에 수선이라는 이름의 효녀가 있었는데, 전쟁에 나갔다가 포로가 된 아버지를 구하러 적의 나라로 들어갔으나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수선은 아버지의 무덤에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캐어와 아버지를 모시듯 정성을 들여 가꾸었는데, 이 나무에서 꽃이 피자 사람들이 효녀 수선의 정성으로 핀 꽃이라 여겨 수선국이라 부르게 되었다.” 는 얘기다.

푸른길 공원 풍경
<푸른길 공원 풍경>

공원 옆의 조선대학교 전경
<푸른길 공원 옆의 조선대학교 전경>

푸른길 공원 길옆 카페
<푸른길 공원 길옆 카페>

푸른길 공원 길옆 카페
<푸른길공원 길옆의 식당들>

 이 길을 걷다보면 조선대학교가 나온다. 그 앞에는 길가에 괜찮은 카페도 볼수있고 대학교 앞이다보니 젊은 사람들의 활기를 느낄수 있다. 조선대를 지나면 곧바로 남광주역이다.
여기에는 이 철길을 다니던 기차 두량이 서 있다. 기차 한량에는 광주->파리 라는 이정표가 붙어 있고 다른 한량에는 광주->암스텔담 이라고 적혀 있다. 가벼운 웃음이 절로 난다. 남광주역 바로 아래는 남광주 시장이다. 시장통은 여전히 열차길의 또다른 즐거움 임에 틀림없다.

푸른길 공원 풍경
<푸른길 공원 풍경>

남광주역의 실제 기차 전시장
<남광주역의 실제 기차 전시장>

남광주역 이정표
<남광주역 이정표>

남광주시장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실제철길을 그대로 걷는 길이 많이 나온다. 양림동 아파트 앞에는 광주가 낳은 최고의 음악가 정율성의 동상이 있다.
백운교차로에서는 고가도로 밑으로 길이 지나는데 그 밑에는 분수대도 있고 주월동 쪽에는 벽에 초등학생들의 그림을 타일에 박아 놓기도 했다. 

푸른길공원 고가
<광주천을 넘는 푸른길공원 고가>

폐선로를 이용한 쉼터
<폐선로를 이용한 쉼터>

한참을 걷다보면 푸른공원의 역사를 말해주는 비석들이 넓은 광장 옆에 서 있다. 푸른길의 종착지가 되는 곳이다. 이렇게 광주 북구에서 시작해 동구,서구,남구까지 이어지는 푸른길은 광주의 역사를 돌아보는 뜻깊은 길이기도 하다.
 푸른길공원 풍경
<푸른길공원 풍경>

 

 

 

출처 : 유투어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