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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봉 고경명

"유서석록"(遊瑞石錄) 제봉 고경명 무등산 기행문 ▲ 광주문화재단에서 지난 6월 13~14일 증심사, 장불재, 입석대 등지에서 열린 무등산 유람기 제봉 고경명의 '유서석록' 재연행사, 웅대한 입석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유서석록"(遊瑞石錄) 제봉 고경명 무등산 기행문 1574년 음력 4월 20일.. 41세의 제봉 고경명은 무등산에올랐다. 언제나 움직이지 않고 의연한 것은 산이며, 모였다가도 흩어지기 쉬운 것은 인간이다. 참으로 산은 우리 인간에게 말 없이 교훈을 준다. '유서석록'은 제봉 고경명(1533~1592)이 나이 41세 되던 해인 1574년(선조7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당시 74세인 광주목사 갈천 임훈(1500~1584)의 일행과 함께 5일간에 걸쳐 무등산에 오른 감상을 4,800자의 순한문으로 기술한 기행문으로, 430년 전 16세.. 더보기
호남인물열전_ '의병장' 고경명 ▲의병장_ '고경명' 선생 진미: 고경명, 고종후, 고인후와 유팽노, 안영!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7천 의병을 일으킨 충절들의 사당 산해: 캬~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대촌들녁이다. 고경명(1533~1592)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의병장이다. 자는 이순, 호는 제봉, 시호는 충렬 이다. 중종 28년 광주 압보촌에서 출생 ~ 선조25년(임진왜란 발생) 금산 전투에서 순절 26세 때인 명종 13년(1558)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호조자랑 기용 후 성균관 전적이 되었으며, 이후 사헌부 지평/홍문관 교리/순창 군수/승문원 판교 등을 거쳐 59세로 동래 부사직에서 물러나기까지 내외의 많은 관직을 역입하였다. 그 사이 성산의 식영정 등을 무대로 많은 문인들과 교유하여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김인후/기대승 정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