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겨라 광주/문화와 예술

선과 색이 빚은 한편의 시 - 광주 비엔날레 김설아작가

 

시는 귀에 들려오는() 그림이고, 그림은 눈에 보이는() 시이다.“

시인들이 시상을 말과 글로 표현해 낸다면, 화가들은 선과 색으로 내면의 상을 그려냅니다.

소설이 인물과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면, 시는 고도의 함축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붓으로 한편의 시를 지어낸 화가, 김설아 작가의 작품을 만나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작가가 되어간다는 건, 그 사람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존의 방법보다는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주로 경험했던 것들, 큰 의미가 되어 제게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그리게 되었어요.“

 

사진 <김설아_들리다_2015>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이미지와 함께 무언가 피부에 와닿는 느낌을 동시에 받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보들보들하고 물컹하게, 또 다른 이에게는 까슬까슬 따가운 촉감으로 매번 다르게 말이지요. 처음 마주한 이 미지의 형상은 우리의 머릿속에 기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릴 때부터 저를 비롯한 모든 가족들이 시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시가 익숙한 언어이죠. 제 작품도 마찬가지에요. 뭔가 구체적인 이야기를 제시하기 보다는 어떤 제안을 통해 다른사람의 기억을 불러들이는게 좋아요.”

 

작품은 조용합니다. 대상도 불명확하고, 형태도 생소하지요. 우리는 이 낯선 친근감앞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찾으려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림에는 답안지가 없어요. 단지 참고 할 수 있는 건 그림이 주는 촉감과 제목 뿐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단서들로 의미를 찾아가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자신만의 정의에 도달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의 기억이나 경험을 작품으로 제안했을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또 다른 기억을 끌어들이게 하고 싶었어요. 회화적으로는 촉감을 제시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애벌레나 실뭉치가 주는 촉감으로 저의 기억과 경험을 제안하는 거에요. 그러면 그 촉감을 통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그림에는 피부를 오소소 돋게하는 어떤 요소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털로 뒤덮힌 애벌레의 이미지, 흘러내리거나 쌓여있는 듯한 겹겹의 무엇들에서요. 알 수는 없지만 그곳에는 작가의 경험과 기억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 촉감을 통해 받는 느낌이 슬픔이라면 아마도 그건 자신의 어떤 경험이 작용한 까닭이겠지요? 작가는 자신의 과거를 작업하여 제안하고, 우리는 감상을 통해 과거를 불러일으키며 작품이 의도한 방향으로 안내되어집니다.

 

사진 <김설아_침묵의 목소리_2015>

 

작품을 더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보면, 촉감으로 다가오던 그 선들이 아크릴 물감으로 하나하나 그어 간 것임을 알게 됩니다. 정밀한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표현되기 어려운 것이지요. 우리가 느꼈던 촉감은, 작가의 강인한 인내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제 작품에는 추상적인 요소도 포함되어있지요. 모호한 것을 볼 때 사람들은 흔히들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생각자체를 언어로 귀결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정답을 찾으려고들 하지요. 하지만 굳이 언어로 귀결하지 않아도 좋아요. 올바른 방법이라는 건 없지만 계속해서 상상하고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과정, 추적하는 자체도 감상의 훌륭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가끔 예술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치부해 어렵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스스로 느껴놓고도 당당하게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혹시 잘못 해석한 게 아닐까 걱정하지요. 어떤 명확한 대상이나 단어로 인식되지 못하면 우물쭈물 입을 닫아 버립니다. 그런 일반인들에게 작가는 다정하게도 그런 염려에서 벗어나길 권해주었습니다.

 

인도 유학시절 예술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저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대답해요. 선과 색의 형태를 보고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을 제안하는 자체가 예술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한 대상을 그렸다고 해서 그 대상이 지시하는 것만 보여진다면 그것이 과연 예술일까요?”

 

많은 작품들 중에서 특별히 우리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고 조금 더 관심이 가는 작품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마치 음악처럼 침투하듯이 자연스럽게 말이죠. 작가는 인도 문화에 적응하며 겪었던 경험을 소개하며 예술을 공부하듯 접근하기보다는, 시간과 환경에 따라 자연히 이해되는 것으로 생각해달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작품과 소통할 수 있게 제목이라는 창구를 사려깊게 열어두었습니다.

 

어떤 작품의 의미가 시각적으로 명쾌하게 떨어지지 않을 때 얼마나 관객과 소통 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합니다.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다리 같은 거에요. 원래는 다 무제라고 지었지만, 어디까지 제안할 것인가 굉장히 고민한 후에 제목을 짓게 되었답니다.”

 

사진 <김설아_숨에서 숨으로_2015>

 

작가는 어린시절을 전남 여수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 시절 이주나 소멸을 겪은 자신의 삶에서 각인된 기억들을 하나 둘 작품으로 옮겨내는 작업을 하고 있지요. 앞으로 진행될 작업 속에도 어떤 시기의 기억과 경험이 담겨진다면, 이제는 아마 인도에서의 유학생활이나 현재 머물고 있는 광주의 기억이 촉감적인 이미지로 재탄생 할 지도 모릅니다. 그 공간의 역사는 지금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지요.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1년 동안 비엔날레 관계자들과 큐레이터 분들이랑 매달 함께 광주를 걸으며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인문학적 의견들을 같이 나눴었어요. 해외예술가들이 광주에 체류하면서 느낀 점들도 들을 수 있었지요. 그들이 질문하는 것, 그들이 이해하는 예술, 모두와 계속 소통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죠. 정말 소중한 시간들 이었습니다.“

 

예술은 무엇을하는가?라는 이번 2016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에 걸맞게, 김설아 작가를 통해 예술의 존재를 새롭게 깨닫습니다. 끊임없이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의 힘을 키워내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말이죠. 논리와 정답이 지배한 이 규격화된 삶 속에서,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상상이 허락하는 곳까지 삶을 확장시켜 보세요. 생각이 뻗는 범위만큼 우리의 삶도 풍요로워 질 것입니다.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

-2016 광주 비엔날레 제1전시관

-20161114일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 김설아 개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