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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재미와 일상

광주의 타오르는 횃불 광주학생운동기념탑, 역사관

 

 

 

광주하면 떠오르는 다양한 모습들이 있으실텐데요.

광주하면 '광주학생독립운동'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인 일이랍니다.

11월은 11월 3일이 학생독립운동기념일, 11월 17일이 순국선열의 달이기도 하기에 이번 달을 마무리

하며 다시한번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학생독립운동의 요람' 이라는 글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광주학생동립운동은 1929년 광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후 만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친

학생들의 가두시위, 동맹 휴교 운동이랍니다.

 

이 운동은 민족 차별 교육에서 발단하여 독립만세 운동으로 발전 되었으며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던

항일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으로 가는 길

 

"야수와 같은 일제의 독아로 말미암아 집을 잃고 가산을 빼앗기고 부모형제는 이산되는 등 사선을

방황하기 무릇 10여년, 견디다 못한 동포 형제들은 기미(1919)년 3월 1일 땐 주먹을 부르쥐고 독립

운동 만세를 절규하며 피의 항생을 감행하였다.

 

그 뒤로 10년, 일제의 강압을 갈수록 더하여 동포들의 몸에는 열겹, 스무겹으로 쇠사슬이 매어지고

금수강산 아름다운 강토는 문자 그대로 감옥으로 화하니 민족의 운명은 바야흐로 동전의 동화 격이

되고 말았다.

 

바로 이때, 광주의 학생들이 자유의 봉화를 높이 들고 꺼지려는 민족혼에 기름을 붓고 불을 켜댓

으니 악몽에서 허덕이던 온 민족은 몸부림치며 다시한번 일어섰다.

그리하여 방방곡곡에서 외치는 자유의 부르짖음은 울리고 울려서 지축을 뒤흔들었다.
5천년동안 연면히 흘러내려오던 민족정기가 이리하여 다시금 소생하였나니..."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의 모습입니다.

 

전면 탑문에는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후면 탑문에는 "단기 사천이백육십이년 십일월 삼일 이날은 광주학생들이 일제의 탄압에 항쟁하여

일어선 민족의 날. 굴욕으로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의기로서 너도 나도 뛰쳐 나서자

이에 호응하여 전국에서 일어난 학생들이 무릇 오만 사천여명 혹은 쇠사슬에 묶이어 철장아래 갇히

었으며 또 혹인 피를 뿜고 쓰러졌으되 그날 그들이 높이 들었던 정의의 횃불은 그대로 역사 위에 길이

길이 타오르나니 어허 여기 흐른듯 고인 그들의 피와 눈물은 천지와 더불어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며

또한 여기 서린 채 깃들인 그들의 넋과 뜻은 겨레의 갈길을 밝히 비치리로다.
단기 사천 이백 팔십육년 십일월 삼일 여기에 온 국민의 열화같은 힘과 정성을 모아 이 탑을 세우다."

 

전면, 후면 탑문에 쓰인 글을 보면 그 때 그 모습이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답니다. 

 

 

 

 

광주학생운동기념탑 근처에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 역사관은 관련된 역사적 사료를 보관하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의의와 가치에 대한 연구를 하며 그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서면 관련된 기록들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보기 쉽게 나열해 놓았답니다.

다양한 문서들도 보존에 잘 되어있고 시대의 흐름 및 활동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쓰여 있어

천천히 살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항일학생운동으로 식민지 노예교육에 반대하고 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주장하며 곧 민족 해방을 위해 희생을 했던 광주학생독립운동 영광의 주역들의 모습도

있습니다.

 

 

 

 

방명록 작성 후 옆에 보면 광주학생독립운동 참여자의 증언이 담긴 책자와 기념탑 엽서가 있답니다.

총 8분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부터 개요까지 그 때 그날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답니다.

 

광주에 계신 분 뿐만 아니라 광주를 찾게 되신다면 꼭 한번 방문 하셨으면 합니다 ^^

 

 

 

광주학생운동기념탑 주소 : 광주광역시 북구 누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