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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라 광주/문화와 예술

제37회 김덕령장군 '도드리' 창작국악단 추모 음악회


 

 



'충장忠將을 품은 무등無等'


제37회 충장 김덕령장군 추모음악회

(사)창작국악안단 도드리 2013정기음악회 빛고을 판타지 

2013. 11. 25 문화예술회관 소극장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찾아온 저녁, 광주 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객석을 모두 채우고 통로 계단까지 들어차 무대의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한 번 올리고 무대위로 연주자들이 부산스레 올라온다. 자리에 앉은 연주자들은 각자 악기를 조울하고 그 소리들은 묘하게 어우러져 공중에 흩어진다.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 희미하게 무대를 비치는 조명이 완전히 꺼지자, 어둠 속에서 영롱한 종소리가 세 번울려 퍼진다. 대형 스크린에 떠오르는 ‘제37회 김덕령장군 추모음악회’ 가 본격적인 추모 음악회가 시작을 알린다. 





올해로 서른 일곱 번째 맞는 '김덕령장군 추모음악회' 는 광주의 대표적인 연주단체인 (사) 창악국악단 도드리(이사장:김재섭)의 무대로 꾸며졌다. 1998년 창작국악실내악단 '도드리' 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어 전통음악 위에 서양음악의 요소를 더하여 대중들이 보다 쉽게 국악을 감상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국악 실내악이 전무한 빛고을 광주에서 크고 작은  국악연주단체와 국악실내악단의 큰 힘을 불어 넣으며 활동하고 있다.








 

 

 

 

 


 

 

 


          



무등산 자락 아래 16년을 한결같이 노래해 온 창작국악단 도드리가 그 옛날 같은 자리에서 대쪽같이 나라를 지켰던 충장 김덕령장군을 추모한다. 고요하고도 웅장하게 아침을 맞는 무등산을 노래한 국악관현악곡에 이은 가수의 흥겨운 노래에 음악회는 한 껏 무리익어갔다. 그 모습을 무대 한 귀퉁이에서 흐믓하게 바라보는 덕령이 있는데...



■ 이사장/예술감독 : 김재섭, 단장 : 김현무, 사무국장 : 이영희, 총무 : 문성희, 악보 : 김단비, 연출 : 김안순, 안무 : 박영선 ,작, 편곡 :  배창희 전우실, 무대/조명 : 김명대, 영상/디자인 : 박하은, 디자인 : 김별, 음향 : 이지사운드


■ 지휘/김현무, 피리 태평소/이영희, 해금/김단비, 플롯/문성희, 노래 가야금/김민지, 첼로/박희영, 가야금/임수영, 노래/이세연,타악/고정한, 건반/최계희, 기타/허유진, 아쟁/김하린, 타악/김한솔, 무영/박영선, 대금/유태선, 타악/송광우, 누이역/김안순, 김덕령역/소충섭, 합장/Cantare Ensenble 이태진, 이지훈, 김성환, 한수민, 박인희, 임서로, 김문종  









충장공 김덕령 장군(1567~1596)은 선조 원년인 1567년 광주광역시 북구 충요동(옛 석저촌)에서 김붕변의 둘째 아들로 출생한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인 김덕홍과 함께 의병에 참여 했다. 이듬해 11월부터 오천여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충용장의군호를 받고 담양지역에 출정하였고. 1594년 1월 선전관과 형조화랑에 임명되었다.


그 해 9월, 장문포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수륙연합전으로 왜군을 크게 물리쳐 공을 세웠으나, 1596년에 이몽학의 반란에 가담했다는 모략으로 투옥되어 억울하게 옥사하였다.


이 후, 현종이 즉위하고 1661년에 그의 억울함이 밝혀져 관직이 복구되었다. 100여년이 더 흐른 1788년, 정조는 그에게 충장공(忠壯公)의 시호를 내리고,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하였으며, 장군이 태어난 마을 석저촌을 충효리(현 충효동)로 임명하였다.




<충장사 전경과 김덕령장군 초상>















Photo by 이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