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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라 광주/문화와 예술

[광주광역시]이주한 무등산사진전을 다녀와서...~~- 광주랑

[광주광역시]이주한 무등산사진전을 다녀와서...~~- 광주랑      


 無 等 山

                                          : Unbeatable Colors

네모퉁이를 반듯하게 깎고 갈아 층층이 쌓아올린 품이 마치 석수장이가 먹줄을 튕겨 다듬어서 포개놓은 듯한 모양이다.” 1574년 무등산 입석대를 처음 본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1533~1592) 선생은 무등산 산행기인 <유서석록(遊瑞石錄)>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이어 천지개벽의 창세기에 돌이 엉키어 우연히 이렇게도 괴상하게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신공귀장(神工鬼匠)이 조화를 부려 속임수를 다한 것일까. 누가 구워냈으며, 누가 지어부어 만들었는지, 또 누가 갈고 누가 잘라냈단 말인가라며 입석대의 형성과정을 궁금해 했다.

무등산 천왕봉이 있는 봉우리 좌우에 늘어선 주상절리
왼쪽이 서석대 오른쪽이 입석대

 10~18m5·6각 기둥 30여 개가 40m 늘어서

요즘 무등산을 오르는 이라면 천연기념물인 무등산의 주상절리대가 화산활동의 결과라는 것쯤은 안다. 그렇다면 돌기둥은 어떻게 생겼으며 왜 산꼭대기에 남았을까. 지난 26일 안건상 조선대 과학교육과 교수(암석학)와 함께 무등산에 서 벌어진 일을 더듬어봤다.

서석대 부근의 주상절리(왼쪽), 마치 공룡의 등뼈처럼 돌기둥만 남았다.
입석대(오른쪽), 주상절리가 풍화와 침식을 받아 돌기둥으로 분리돼 쓰러지는 단계를 보여준다.

 

광주와 화순의 경계인 장불재(해발 900m)에 올라 정상쪽을 바라보니 포근한 흙산의 분위기가 바뀐다. 무등산의 정상인 천왕봉(해발 1187m) 쪽으로 가다 보면 서석대와 입석대가 호위하듯 서 있다. 장불재에서 입석대를 바라보고 산길을 오르다보면 등산로 오른쪽에 누워있는 거대한 돌기둥 무더기를 먼저 만나게 된다. 단면이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이고 길이가 10m에 이르는 돌기둥이 마치 교각이 무너져내린 듯 널부러져 있었다.

  

침식을 견디고 우뚝 살아남은 이유는 두 가지

윤성효 부산대 과학교육학부 교수(화산학)는 백악기 말 아직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나가기 전에 옛 태평양판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들면서 한반도는 현재의 일본처럼 대륙이동의 직접영향권에 놓여있었다고 설명했다. 격렬한 화산활동이 부산-대구 일대와 함께 영동-광주에 이르는 길이 230, 평균 폭 30의 쐐기형 함몰지대에서 벌어졌다. 이 가운데 무등산은 직경 40의 광주함몰체의 중심으로서, 화산분출로 형성된 화구호인 칼데라의 상부와 외곽이 모두 침식돼 사라지고 칼데라 안에 쌓였던 화산암이 당시 화산분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등산이 침식을 견디고 우뚝 살아남은 이유는 무얼까. 안건상 교수는 무등산의 해발고도 400m 이상을 이루는 석영안산암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해양지각이 대륙 밑으로 파고들 때 생기는 석영안산암은 규암(차돌)처럼 이산화규소 성분이 많아 단단하다.

주상절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무등산 이름의 유래

무등산은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이 지역의 진산으로서 백성의 숭배와 사랑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만큼 이름도 많고 해석도 분분하다. 무등산을 이르는 명칭에는 무진악, 서석산,무덤산, 등이 있다.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무등산의 옛 이름은 무돌뫼였다고 본다. 삼국사기에 무진악(武珍岳), 고려사에 무등산(無等山), 동국여지승람에는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표기했지만 모두 무등산을 한자식으로 적은 것이란 설명이다. 신라 때 우리말을 한자로 묘사한 향찰식 표기법으로 무진무등은 모두 무돌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서석은 상서로운 돌이란 뜻으로 무등산 꼭대기의 돌기둥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무돌도 신령스런 돌을 일컫는다.<무등산>을 지은 박선홍씨도 무등산의 이름은 백제 이전까지는 무돌이나 무당산, 통일신라 때는 무진악 또는 무악으로 부르다가 고려 때부터 서석산이라는 별칭과 함께 무등산으로 불렀다고 밝히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무등산 입석대가 천연의 신전으로 전라도 지방 종교의 중심지였다고 보았다. 그는 무등산 전체가 당산으로 무당산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무등산의 수많은 사찰과 고승의 전설에 비추어 부처님은 견줄 이 없이 높다는 뜻의 무등등(無等等)’에서 왔다고 보는 이도 있다.공원소개

광주광역시 도심의 동쪽을 에워싸고 솟은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으로 1972522일 도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해발1,187m의 무등산 최고봉인 천왕봉 일대는 서석대·입석대·규봉 등 수직 절리상의 암석이 석책을 두른 듯 치솟아 장관을 이룬다. 또 마치 옥새같다 하여 이름붙여진 새인봉은 장불재에서 서쪽 능선상에 병풍같은 바위절벽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고장 산악인들의 암벽훈련장으로 유명하다.

무등산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너덜이라 할 수 있다.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경관을 연출한다.
옛 궁궐의 진상품이었던 무등산 수박은 광주의 또 다른 자랑이다. 개량 수박의 출하가 끝난 8월 중순 이후 추석 전후에 출하되고 있다.

위치

지 도 상 : 동경126°06′~ 127°01

북위 35°06′~ 35°10

행정구역 : 광주광역시, 전라남도(담양군, 화순군)

면적

총 면 적 : 30.23

행정구역별 - 광주:27.03

행정구역 : 광주광역시, 전라남도(담양군, 화순군)

용도지구별 - 자연보존지구 9.848

자연환경지구 19.797

취락지구 0.057(화암동, 배재마을

집단시설지구 0.528(원효사, 증심사)

용도지구별 -자연보존지구 9.848

시유지 7.78(25.8%)

사유지 17.27(57.1%)

사찰지 3.00(9.9%)

                            (첩부 무등산의 설명..)

 

 

 

 

 

 

 

이주한 무등산사진전을 다녀와서...~~

2013. 1, 30-2. 12

(현희의 하루...~)

몇 개월 만에 봄처럼 따뜻한 ()오후에 난 신세계백화점으로 쇼핑 겸,

전시회를 다녀왔다,

이번 무등산이 최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 뉴스에서만 듣고 다른 사람들처럼 등산을 가고 싶은 마음은 굴

뚝 같지만 (내 몸 형편으로서 불가능)...~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참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생에 반은 인내하면서 또 반은 참고 대리만족하면서 살아가야하는 내 인생살이다.

~~ 그 날 공연도 있었고 사진전도 찍고 쇼핑도 하고 모처럼 집 밖으로 외출....~~

돌아오는 길에는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날씨가 또 다시 추어저서 좀 고생을 하였지만 그래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으로 위한을 받고 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