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詩人은 특히 8.15해방 이후 광주를 문향(文鄕) 나아가 예향으로 만드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음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바이다. 허백련· 오지호 화백과 김현승 시인은 이 땅 한반도에 있어서 의 남도정신의 계승 개척자요 훗날 한국의 역사에 찬연하게 빛날 <광주정신>을 무등산에 깊숙이 안겨준 정신적 지주였다.
어린 시절을 광주의 양림동에서 보냈던 김현승 시인은 평양 숭실대학을 졸업란 목사의 아들이었는데 6.25전쟁 이후 한때 조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사실 그의 대표시들 중 이무렵 쓰여진 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구러나 나는 그가 숨을 거두기전에 마지막으로 광주를 찾아 노래한 시를 잊을 수 없다.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광주와 무등산을 노래한 시들은 많으나 김현승 시인의 광주에 바치는 노래- 〔산줄기에 올라〕만큼 오늘도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시는 그렇게 흔치 않은 듯 싶다. 김현승 시인은 광주의 밑바닥에 용암처럼 흐르는 그 정신과 역사를 사랑하고 있었고, 지난날은 물론 광주의 미래까지를 예감하고 있었던 예언자와도 같았다. 김현승 시인! 그는 가을의 시인, 고독의 시인아라고만 한정지울수 없을 만큼 광주의 역사와 삶과 희망을 하느님께 기도하며 살다가 간 시인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광주를 떠나던 날 충장로에서 넥타이를 새로 갈아 맨 뒤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으면서 눈물을 보였다. "흠도 티도 금가지 않는 것은 오직 이뿐" (눈물)이라던 그가 무슨 예감이 들어서 그렇게 애 었는지 무등산을 바라보며 손수건을 흔들었다. (오늘 나의 강연은 시인 김현승과 제자들이 시심을 불태운 양림동을 시작으로 하여 전개될 것이다. 양림다리 건너 아직도 숨쉬고 있을 불꽃같은 그의 문학의 혼들!)
산줄기에 올라 바라보면 / 언제나 꽃처럼 피어있는 나의 도시ㅡ // 지난 날 자유를 위하여/ 공중에 꽃힌 칼날처럼 강하게 싸우던, / 그곳에선 무덤들의 푸른 잔디도 / 형제의 이름으로 가스웠던..... // 그리고 지금은 기름진 평야를 잠식하며 / 연기(煙氣)를 따라 확장하며 가는 그 넓은 주변들..... // 지금은 언덕과 수풀 위에 새로운 지붕들이 솟아올라, / 학문과 시(詩)와 밤중의 실험관들이 / 무형의 드높은 탑을 쌓아 올리는 그 상아(象牙)의 음향들..... // 산줄기에 올라 바라보면 / 언제나 꽃처럼 피어있는 나의 고향 ㅡ / 길들은 치마끈인 양 풀어져, / 낯익은 주점(酒店)과 책사(冊肆)와 이발소와 / 잔잔한 시냇물과 푸른 가로수들을 / 가까운 이웃을 손잡게 하여주는 ..... // 그리고 아침과 저녁에 / 공동(共同)으로 듣는 기적소리는 / 멀고 먼 나의 꿈과 타고난 슬픔을 끌고가는..... // 아아, 시름에 잠길 땐 이 산줄기에 올라 노래를 브르고, / 늙으면 돌아와 기억의 안경으로 멀리 바라볼 사랑하는 나의 도시 ㅡ 시인(詩人)들이 자라던 나의 고향(故鄕)이여! ㅡ 김현승 시 〔산줄기에 올라 ㅡ 광주에 바치는 노래〕
참고: 광주근대역사문화 해설집 중 김준태 시인의 기고문에서 발췌 최종환 옮겨 씀 (광주시 블로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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