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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라 광주/문화와 예술

전철경보음 '쑥대머리'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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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하며 흔적을 남긴 이들이 흔하지 않지만 그런 명사들 중에서도 자신의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고 민족의 아픔에 참여한 이들은 오천년의 역사를 거슬러 보아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소리꾼 임방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의 일대기가 영화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죽기까지 민초들의 한을 보듬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자신의 모든 것으로 여겼던 소리를 통하여 그들과 위로를 나누었던 예술인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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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조금만 거슬러가도 소리꾼들의 사회적 처우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임국창은 소리의 삶을 자신의 전부로 받아들이고 소리의 완성을 위하여 게으르지 않았으며 또한 소리꾼으로서 명망을 얻었음에도 세상 영화를 탐하지 않음은 물론 화려한 무대가 아니어도 어디에서든 그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마다하지 않고 그의 열정을 쏟아냄으로서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위로하는 것으로 보람과 긍지를 느낀 예술가이다.


임국창의 순수한 예술적 삶은 물질중심의 이 시대에 귀감이 됨은 마땅하다. 또한 문화 도시를 추구하는 광주 역시 외적 미관도 고려해야 하지만 건강한 예술적 정신을 시민문화로 함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예술도시의 품격도 시민들의 인격을 통해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볼 때 광산구 송정역과 지하철이 만나는 역사에 국창 임방울 선생님의 전시관이 새로 마련된 것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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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선생님의 일대기와 관련된 자료, 선생이 늘 사용하던 장구며 손에 들던 부채 등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선생의 소리를 직접 경험 할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있고 후학들의 면면도 볼 수 있어서 앞으로 시민들의 생각 속에 선생의 얼이 간직되리란 기대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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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철도 고객과에 한 가지 건의를 하였는데 전철이 들어올 때의 경보음을 선생이 생전에 애창했던 -쑥대머리-로 전환 해 줄 것을 건의하였다.
담당자의 생각도 긍정적이어서 기술적인 부분이 가능하다면 아마도 전철 경보음에서 선생의 소리를 일상으로 듣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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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머리"란?
춘향이 옥에 갖혀 서울로 올라간 이몽룡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쑥대머리'는 마치 쑥(대)밭의 쑥처럼 엉클어지고 초췌한 춘향의 모습(머리)을 말합니다.

(중머리) 쑥대머리 구신형용(鬼神形容) 적막옥방(寂寞獄房)으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 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漢陽郎君) 보고지고. 오리정(五里亭) 정별후(情別後)로 일장서(一張書)를 내가 못봤으니 부모봉양(父母奉養) 글공부에 저를이 없어서 이러난가.  연이신혼(宴爾新婚) 금슬우지(琴瑟友之) 나를 잊고 이러는가. 계궁항아(桂宮恒娥) 추월(秋月) 같이 번뜻 솟아서 비치고져.  막왕막래(莫往莫來) 맥혔으니 앵모서를 내가 어이보며, 전전반칙(輾轉反側)으 잠 못 이루니 호접몽(胡蝶夢)을 어이 꿀 수 있나.  손가락으 피를 내여 사정(事情)으로 편지헐까. 간장의 석은 눈물로 임의 화상(畵像)을 그려볼까.  녹수부용(綠水芙蓉)으 연(蓮) 캐는 채련녀(採蓮女)와 제롱망채엽(提籠忘採葉)으 뽕따는 연인네도 낭군 생각은 일반이라.  옥문 밖을 못나가니 뽕을 따고 연 캐겄나. 내가 만일에 임을 못 보고 옥중 원귀(寃鬼)가 되거드면, 무덤 근처 있난 독은 망부석(望夫石)이 될 것이요,  무덤 앞에 섰난 남근 상사목(相思木)이 될 것이오.  생전사후(生前死後)으 이 원통을 알어 줄 이가 뉘 있드란 말이냐. 아무도 모르게 울음을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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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대머리' 그 득음의 경지를 엿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