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광주에서 길을 묻다.
오백여년전 어느 여름날. 무등산 북쪽 창계천 옆 그림 같은 정자에 김윤제라는 이름난 선비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물 기운을 머금은 시원한 바람 한줄기에 선비는 잠이 들고 말았다. 한참을 맛나게 자고 있는데 정자아래 자기가 즐겨 낚시하던 곳에 용 한 마리가 헤엄을 치고 있는게 아닌가. 깜짝놀라 몸을 일으키니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선비는 꿈속에서 보았던 곳으로 내려가 보았다. 거기에는 용모가 빼어난 어린아이가 멱을 감고 있는게 아닌가. 선비는 그 아이를 귀하게 여겨 제자로 거두고 외손녀와 연을 맺어주었다. 또한 선비의 정자를 찾아오는 많은 석학들에게 공부를 가리켜 과거급제까지 시켰는데, 그가 바로 송강 정철이다.
김윤제와 정철의 만남에 관한 전설이 남아있는 용소와 조대
단순한 전설 한 구절일 망정 이 이야기는 남도 정자문화에 대한 모든 걸 말해준다. 광주와 담양을 중심으로 밀집해 있는 정자들은 선비들의 은둔 장소로만 볼게 아니라는 거다. 이야기는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껴 귀향한 대학자가 정철이라는 인물을 길러내고, 인척이라는 끈으로 연결시켜 학문적 정치적 패밀리로 구성한다는 시대적 사실로 풀어 볼 수 있다. 흔히들 알고 있는 유희공간으로서의 정자는 실상 시대를 이끌어가는 담론의 장소였다. 당대의 석학들이 휴식하고 논쟁하고 토론하던 사교의 장소이자 아이들을 공부시켜 학파를 꾸려나갔던 학교 겸 정치 공간 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면앙정 송순을 시작으로 김인후, 임억령, 고경명, 정철, 임제, 양산보, 김성원, 기대승, 박순 등 호남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이곳 정자를 기반으로 맺어진 스승과 제자들이었다.
멀리서 본 취가정
무등산 북쪽 자락을 타고 넘으면 담양과 광주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난다. 광주호로 흘러드는 창계천이 그 개울이다. 여기가 남도 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곳. 풍암정을 시작으로 소쇄원,취가정,환벽당,식영정, 면앙정 등의 정자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 이중에서 현재의 행정구역상 광주땅에 속한 곳은 풍암정과 취가정,환벽당. 이들을 찾아가는 길은 아주 신난다. 남도의 풍경과 문화, 정신을 한번에 짚어볼 수 있어서다.
안동을 필두로 한 영남의 선비문화가 서원으로 설명된다면, 호남의 선비문화는 담양을 중심으로 하는 정자에서 꽃피웠다. 계산풍류라 일컬어지는 것이 바로 이 정자문화다.
무등산을 떠난 길이 막다르게 만나는 곳은 소쇄원 앞 삼거리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곧바로 가사문학관이다. 곧장 가면 광주호, 광주호 끝자락에서 자그마한 옛 다리 충효교를 건너 오른쪽 강변길로 들어가면 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다. 아침나절이면 숲길 너머로 하얀 빛 무리가 쏟아진다.
환벽당과 취가정 가는 길
환벽당과 취가정 가는 길
길이 강구비를 따라 휘어지는 곳, 강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시퍼런 소가 있다. 전설속 낚시터 조대와 용소다. 실제로 이곳에서 송강 정철이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조대 바로 위쪽에 환벽당이 있지만, 이를 지나쳐 좀더 걸어가면 마을 입구 언덕배기에 취가정이 있다. 일반 집 앞에 있어 흡사 마을 노인정 정도로 가벼워 보인다. 정자 앞으로 너른 들이 보이고 뒤로는 무등산자락이 길게 겹쳐져 시야에 들어온다. <술에 취해 부르는 노래> 라는 다소 경박한 의미의 취가정. 그러나 이곳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을 기려 지은 집이다. 집 옆에 임진왜란 후 억울하나 누명을 쓰고 죽은 김덕령 장군이 석주 권필의 꿈에 나타나 한맺힌 노래 취시가를 부르자 권필이 이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원혼을 달래고 이 정자를 지었다는 유래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최근에 복원된 탓에 옛 모습이라고는 주춧돌과 마당을 꾸민 기단정도 뿐, 별달리 눈여겨 볼 게 없지만 이곳의 의미와 독특한 정자의 위치 한가로운 느낌은 놓칠 수 없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는 혹자는 남도 정자중 에서 숨겨놓고 보는 곳이라 하였다.
취가정 풍경
아래서 본 취가정
취가정에서 내다본 모습
취가정에서 강쪽을 내려오거나 마을을 가로질러 나가면 환벽당을 만난다. 취가정과는 남북으로 200여미터 의 간격 정도다. 환벽당은 앞으로 창계천이 흐르고 뒤로는 산 위까지 키 큰 소나무들이 빼곡하다. 이름 그대로 환벽이다. 푸른 것이 사방을 둘렀다는 뜻. 송강 정철이 어릴적 공부하고 놀던 곳이 바로 여기다. 지금은 광주 옛길이 이곳을 지나간다.
환벽당 모습
환벽당의 가을풍경
송시열이 쓴 환벽당 현판
환벽당 마루
정철이 여기서 공부해 과거급제하였다면, 관직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가사문학을 일군 곳은 강 건너 식영정이다. 환벽당에서 담양 쪽으로 약간 내려간 언덕에 세워져 있는데, 가사문학관 앞에서 돌층계을 올라가면 아담한 정자가 눈에 들어오는데, 뒤편으로 성산별곡 시비가 서 있다. 정자의 바로 아래가 광주호이고 환벽당과 취가정의 위치가 한눈에 보인다. 아마도 옛날 송강이 살아있던 조선시대에는 환벽당과 취가정, 식영정에 각각 앉아있던 선비들이 수신호로 서로 오가면서 의리를 돈독히 했을 것이다.
식영정
식영정 아래의 부용대
호방했던 옛 선비들의 흔적과 삶의 지혜를 담아올 수 있는 정자. 한 번에 여러 곳을 보려한다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를 여러번 보아야 정자와 한마디 얘기라도 나눌 수 있다. 정자는 보는 곳이 아니라 느끼는 곳임을 되짚어보자.
식영정
출처 : 유투어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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