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층석탑가는 길>
충장로에서 광주천을 건너면 광주공원이다. 이 곳 입구에 자리잡은 문화예술회관 옆길로 올라가면 울창한 숲속에 커다란 5층 석탑 한기가 눈에 띈다. 탑이라는 건 절에 있는건데, 이 벌판에 탑이 있다는 게 이상스럽다. 즉, 탑이 있다는 건 절이 있었다는 소리이니 궁금치 않을 수 없다. 즉석에서 스마트 폰으로 찾아보니 역시 여기에는 절이 있었다.
<광주공원에 있는 서오층석탑>
광주공원이 있는 이 자리를 성거산이라 불렀는데. 산의 모양이 거북을 닮아서란다. 그런데 풍수적으로 그냥 거북이 아니라 살아서 기어가려는 거북의 형상이란다. 그래서 이 거북이 광주를 떠나지 못하도록 등 위치에는 성거사라는 절을 세우고 거북의 목에 해당하는 자리에는 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뒤를 돌아보니 뒤쪽 언덕 휴게소 뒤쪽에 절이 보인다. 이야기 속의 성거사는 아니지만, 지금도 절이 있는 건 사실이다.
<성거사>
또 탑 앞의 작은 언덕을 올라가면 작은 꽃밭이 꾸며져 있고 맨 앞에는 작은 바위주변으로 돌무더기가 놓여있다. 거북의 머리라 알려진 자리다. 실제로 이 바위위에서는 광주천과 충장로 금남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이라면 넓은 들과 관아들이 눈아래 있었을 터이다. 얼핏 생각해도 기가 충만 된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어쨋던 이 석탑의 효험인지는 몰라도 주변의 산들과 강, 들이 다 허물어지고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성거산만은 옛날 그대로 남아있다. 산의 앞뒤가 잘리고 온갖 건물들이 산속으로 파고 들었지만 없어진건 아니니 말이다.
<서오층 석탑앞 거북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
<고려시대 석탑의 유형을 잘 간직한 서오층석탑>
이 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몸돌 전체를 아래위 이단으로 나누고 5개의 꾸밈돌로 구성한게 그렇고, 통일신라시대의 안정감있는 모양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적어 전체적으로 높게 보이도록 한 것 등이 고려시대의 특성을 나타낸다. 40년전 처음 해체할때는 이 탑 2층 몸돌에서 사리공과 사리장엄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처럼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탑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찰 건물들이 목조여서 쉽게 불에 타버린 반면에 석탑을 불에 타지 않아 오래도록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탑문화가 발전된 중국과 일본과 비교해봐도 우리나라는 석탑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다. 인도나 중국을 '전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고 한다면 우리나라는 '석탑의 나라'라고 할수 있다. 가장단단한 돌로 만들었건만, 중국의 모전탑이나 일본의 목탑보다 더 아름답다 보니 일본인들이 훔쳐가려고 안달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오층석탑>
광주공원의 이탑에서 동쪽으로 2km 거리에 또 하나의 유사한 석탑이 있다. 이 둘을 가리켜 동서 오층탑이라 부른다. 본래 동서탑은 하나의 사찰 안에 나란히 지어진다. 실상사의 동서탑이 그렇고, 화엄사의 탑도 그렇고,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도 그런 의미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이 둘이 동서탑이라니.. 이것은 광중의중심에서 오른쪽에 있는 탑, 서쪽에 있는 탑을 의미할 뿐 두 탑간의 연관성은 찾을 수 없다.
<동오층석탑이 있는 연화사>
동 5층탑은 조선대학교 옆에 있다. 탑이 서있는 부근은 백주사(栢州寺)터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연화사 라는 절이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이 탑은 광주주변에서 가장 아름답다. 신라석탑의 기본형을 잃지 않고 있는데,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는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구성하였으며,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특히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1층은 5단인데 비해 2층부터는 4단으로 간략화되어,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동오층석탑의 지붕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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