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공원앞>
광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금남로와 충장로 건너편에 광주공원이 있다. 광주천을 건너면 자그마한 산자락이 나서는데 그곳이다. 어느 도시에나 풍수지리적으로 도시를 지켜준다는 산들이 존재하는 데, 광주를 대표하는 영적인 산이 여기다.
<광주공원초입의 광주문예회관>
광주공원이 지금의 공원 형태로 자리 잡기 전 그 옛날에는 산 모양이 거북모양을 닮았다 해서 성거산, 구강으로 불렀다. 때문에 광주공원도 한 때는 구동공원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거북산이 광주의 정기를 안고 있어 광주가 번성한다는 믿음이 있었으리라. 특히 이 거북산은 그냥 엎드려 있는 거북이 아니라 활발하게 걸어나가려는 거북모습이어서, 거북이가 광주를 떠나지 못하도록 등에는 절을 세우고, 목에는 5층탑을 얹어 놓았다. 지금도 이름으로나마 남아있는 성거사와 서오층 석탑이 그 흔적들이다.
<서오층석탑>
<성거사>
<광주공원풍경>
그러나, 광주공원은 이렇게 전해내려 오는 지형적인 입지와 달리 뼈아픈 역사적인 사실도 담고 있다. 광주공원 자체가 일본인들이 지역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만든것이라 것 부터가 그러하다. 1913년 일본군이 들어와 성거산 일대를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일본 신사’를 세우고 벚나무 등 외래종의 나무들을 심어 사직공원과 함께 광주공원을 벚꽃 명승지로 선전했다. 식민지 치하 30 여 년 세월 동안 광주공원은 일본문화가 판을 친다. 해방을 맞아 일본 신사는 파괴되고 그 자리에 지금의 현충탑을 세웠다. 시민회관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당시 일본 신사를 짓기 위해 성거산을 깎아 내리면서 돌계단을 쌓은 것이다. 돌계단을 오르면 시민회관 앞 광장을 마주하고 <4•19의거 희생영령추모비>가 보인다. 추모비와 나란히, 시인 조지훈이 그 날의 정신을 읊고 있다.
<시인동산>
< (…) 불의를 무찌르고 자유의 나무의 피거름 되어/우리는 여기 누워 있다/ 잊지 말자 사람들아/뜨거운 손을 잡고 맹세하던/아~ 그날 사월 십구일을>
<5.18 기념탑>
이뿐이랴. 이곳은 5.18 민주항쟁 당시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항쟁계획을 세우던 곳이다. 5•18민중항쟁이 치열하던 5월 21일 전남 도청 앞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나자, 오후 4시경 자위수단으로 인근 시군 지역에서 총과 탄약을 가져와 시민군을 편성하고 사격술 훈련을 실시했던 곳이 여기다.
시민들이 처음부터 일정한 지휘체계에 따라 움직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도 자연스레 지도부가 결성되어 24일 도청으로 통합될 때까지 광주시내 순찰과 차량등록 등 일시적이나 치안관련 업무를 보았다.
<광주공원풍경>
<박용철과 영랑시비>
가끔씩 도심을 거쳐 이곳으로 오는 젊은 이들이 있을뿐 노인들의 쉼터가 되어 있는 광주공원은 겉으로는 평화로울 뿐 그 내력에는 광주의 한이 담겨져 있는 곳이라 하겠다.
공원안에 있는 시비중에 박용철 시인의 떠나가는 배가 있다. <나두야 간다> 로 시작하는 이 시가 새삼 눈에 밟힌다.
<광주공원풍경>
'누려라 광주 >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서 오층탑과 도시의 향기 (0) | 2012.06.22 |
---|---|
무등산에도 차밭이 있다. (1) | 2012.06.22 |
깨달음이 필요없는 무각사!그 귀한 존재감 (0) | 2012.06.22 |
잣고개와 무진고성 (0) | 2012.06.22 |
최치원의 향기! 지산제에서.. (0) | 2012.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