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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광주의 3류(柳) 3목(木)

  우리들에게 친숙한 나무중 하나가 버드나무다. 흔히 알고 있는 소나무,참나무들과 달리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나무기도 하다. 또 요사이는 가장 좋은 사진속 모델이 되는 나무도 버드나무다. 주산지 속에 뿌리는 내리고 있는 나무도 버드나무요, 광주 호수 생태공원의 몰속을 채우고 있는 것도 버드나무다. 전국에서 가장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나무가 아마도 버드나무 아닐지.,,

 


<충효동 왕버드나무>

충효동 왕버드나무
<충효동 왕버드나무>

  광주에는 광주의 역사와 함께한 신령목 세그루가 왕버들이다. 충효동 왕버들과 수완동 왕버들, 원산동 왜고정수가 그것들. 이중  충효동 왕버들이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다. 광주 호수 생태공원과 주차장 사이에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소가 되어 주는 곳이다. 유치원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그늘 넓은 나무를 찾으면 바로 충효동 왕버들 일 게다.  바로 옆이 김덕령장군이 태어난 마을이고 보면, 이 나무가 예사롭게 볼일은 아닌 듯 하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정자가 많아 주변 조경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왕버들도 그 때 심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은 왕버들 세그루만 나란히 남았지만, 본래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마을을 상징하던 소나무 한그루, 매화나무 한그루, 왕버들 다섯그루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왕버드나무
<저수지옆에 있는 수완동 왕버드나무>

수완동왕버드나무
<수완동왕버드나무는 마을의 당산목으로 추앙 받고 있다>

수완동왕버드나무
<수완동왕버드나무-다른 한그루>

 다음으로 찾기 쉬운 나무로는 광산구에 있는 수완동 왕버들이다. 마을앞 저수지 둑에 두 그루가 150여미터의 간격으로 서 있다. 이보다 작은 나무들이 예닐곱 그루 저수지를 향해 서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저수지를 빙 둘러 왕버들이 있었던 것 같다. 마을 어르신들의 얘기도 이와 같다. 왕버들이 있는 이 마을은 통머리라 불리는데 전주이씨의 세거지다. 정자 바로 옆에 있는 버드나무는 이 동네의 당산나무란다. 참 드문 일이다. 버드나무를 당산나무로 모신 예는 정말 흔치 않아서다. 그만큼 이 나무가 마을역사와 함께 했고,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었다는 얘기도 된다. 실제로도 이 나무가 마을을 살린적이 있다. 십여년전 이 앞으로 큰길이 날 때 마을을 가로지르게 설계되었던 도로가 이 버드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길 의 방향을 바꾸었고 마을도 무사했다는 것이다.  이 버드나무 아래서 당산제도 지냈고, 농악놀이도 했었다는 게 사실인 성 싶다. 아무튼 저수지와 어우러진 버드나무가 대단히 수려하다. 

쇄고정수 전경
<쇄고정수 전경>

마지막 버드나무는 남구 원산동에 있다. 광산이씨 종가가 있는 원산동 한옥마을 입구에 있는데 사뭇 위용이 대단하다. 600여년이 된 나무는 높이만도 15미터를 넘는다. 이 나무는 조선 세종때의 대 학자였던 필문 이선제 선생이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이에 얽힌 전설이 유명하다.  이선제 선생은 이 왕버들을 심으면서 “이 나무가 죽으면 가문도 쇠락할 터이니 각별히 관리를 잘하라”는 말을 후손들에게 남겼다. 이 말씀을 새겨들은 후손들은 과거에 급제하면 이 나무에 급제자의 이름과 북을 걸어 놓고 축하연을 열어 왔다. 북을 걸어두었다고 해서 괘고라 불리우는데, 실제로는 괘고정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어 나무 옆의 언덕에 정자가 있었고 그 정자게 북을 걸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괘고정수는 괘고정 옆에 있는 나무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1589년(선조 22년) 이 선생의 5대손 이발(李潑·1544~1589)이 기축옥사 때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에 연루돼, 당사자는 물론 그의 어머니와 나머지 가족들까지 죽임을 당하자 이 나무도 말라죽기 시작했다.  뒷날 이발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자, 이 나무도 죽은 지 300여 년이 흐른 뒤에 다시 새 잎을 피우며 살아나 가문의 중흥을 예고하였다는 전설이다. 그래서인지 나무도 싱싱하고, 광산이씨도 번창하고 있다는 것이 전설이 사실적인 예언처럼 여겨진다. 

원산동 쇄고정수
<원산동 쇄고정수>

여담으로 이 나무의 주인인 광산이씨와 기축옥사때 심판관이었던 정철 가문과의 얘기 하나를 해본다. 이 나무 아래서는 빼놓지 않고 나누는 얘기다. 기축옥사 이후 광산이씨 가문은 정철의 본관인 연일정씨와는 혼인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말도 나누지 않았다 한다. 그리고광산이씨 네는 아낙들도  “깍두기를 썰 때는 송강송강 썰고, 생채를 썰 때는 철철철 썰었다.”고 한다.
 광주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이 왕버들 세그루는 누가 찾아주어서가 아니라 광주 땅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귀하고 소중한 일이다. 

높이가 15m 쇄고정수
<높이가 15m나 되는 쇄고정수>

 

 

출처 : 유투어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