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간판쟁이 - 박태규 화가
빠르게 변해가는 광주 안에서 유독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 있다. 1934년에 설립되어 아직까지도 그때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광주극장의 이야기다. 여전히 손으로 그린 간판이 올라가는 국내 유일한 곳. 광주극장의 마지막 간판 쟁이, 박태규 화가를 그가 운영하는 ‘자운영 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자운영 아트센터’, 이름이 특이하다. 어떤 뜻인가.
콩과 식물의 꽃 이름이다. 자운영은 가을에 씨를 뿌려 겨울을 버티고 오월에 자주색 구름 빛을 띠며 논두렁,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이다. 농부가 땅을 뒤엎을 때 땅 힘을 좋게 하기 위해서 거름으로도 뿌려진다. 나의 고향 함평에 자운영이 많아 자운영을 좋아한다. 그래서 큰아이 이름은 박자운, 둘째는 박운영으로 지었다.(웃음)
영화간판도 그리고 아트센터도 운영하려면 많이 바쁠 것 같다.
2002년 광주극장 퇴사 후 지금은 한해에 두 개정도의 간판을 그린다. 아트센터는 퇴사 후 만들게 되었다. 본업은 화가라 미술을 매개로 어린이 환경교육, 환경운동, 인권운동 등을 하고 있다.
어떻게 간판을 그리게 되었나.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동안 사회미술운동에 몸담았다. 민족해방운동사 등 사회문제를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걸개그림을 그리는 미술학도로써 영화간판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건물만큼 큰 간판을 보며 내가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 후 93년도에 광주극장에 처음 들어가 고 홍영만 선생님에게 간판 그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사실 생계의 목적도 있었다. 그 당시에 미술로 돈 벌기는 쉽지 않았다.
전공이 미술이었어도, 배울 때 힘들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유화를 사용하는 서양화를 전공했던 나라 빨리 마르는 에나멜로 그림그리기가 어려웠다. 무턱대고 두껍게 발라서 선생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다. 선생님도 ‘저놈이 하다가 말겠지’ 생각하셨을 것이다.
간판을 그리는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크기가 커서 관리가 어려울 것 같다.
이전에는 건물만큼 컸지만, 지금은 아담한 사이즈로 바뀌었다. 간판은 한 달 전에 영화가 정해지면, 예고편, 포스터, 스틸과 같은 일차자료가 온다. 그 후 구성을 짠 후 스케치를 하고 일차채색, 마무리채색을 거쳐 영화가 개봉되기 전날 오후에 이전간판을 내리고 새로운 간판은 올린다. 내린 간판은 다시 작업실로 가서 다음 영화가 정해질 때까지 있다가 흰색 페인트를 친하고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린다.
매번 새로운 캔버스에 그리는 줄 알았다.
영화관의 역사가 쌓이는 것만큼 간판도 그만큼 두꺼워진다. 볼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역사가 다 들어있다.
마지막 간판 쟁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광주극장에 들어갈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본의 아니게 마지막으로 간판을 그린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영화 포스터가 일률적이지만 그 당시에는 직접 그려야 했기에 그리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달랐다. 어떤 사람은 회화적이고 어떤 사람은 색감이 뛰어났다. 그런 재미가 사라져 조금 아쉽다. 지금은 영화간판의 형식을 현 작업에 가져와 표현하고 있다. 인권문제와 관련해 가상의 간판을 그린다. 바람소리, 풍경소리 등이 그 예이다.
그동안 그렸던 간판 중 기억에 남는 간판이 있다면.
‘송환‘이 기억에 남는다. 분단 후 우리나라에 수감되어있는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전향을 유도하며 계속 옥에 가뒀다. 6.25 전후로 하여 20대에 체포된 그들은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다. 사회는 점점 변해 가는데도 그들은 감옥에서 그대로 있다. 그들을 송환하려는 움직임을 눈물겹게 다큐식으로 풀어낸 영화이다. 이 간판은 가장 뜻 깊어 지우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을 간판으로 그리는 것인가.
이 ‘송환’같은 경우는 예고편과 스틸사진을 보고 그렸다. 한편에는 많은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얼굴을 그리고 우리지역에 사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다른 한편에 그렸다.
광주극장이 사람이 많이 찾는 극장은 아니다. 어쩌면 쇠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광주극장은 광주의 소중한 보물이다. 적더라도 찾는 관객이 있기에 그들을 위해 상영을 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현실에 맞추면 십년 전에는 문을 닫아야할 실정이지만, 운영자가 주변사람들의 안타까움을 희망으로 바꾸었다. 광주극장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관객이 적더라도 영화를 상영하는 마음이 광주극장을 지키리라 생각된다. 광주극장은 나의 첫 시작이자 목숨이다. 나의 그림이 꾸준히 걸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계속 간판이 걸리길 소망한다.
간판을 모아놓고 볼 수 있는 박물관 같은 곳이 생기면 좋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이 꿈꾸는 작품 보관법이 있는가.
박물관을 만들어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어느 양복점이나 옷가게 사이사이 자투리 공간에 간판을 두고 영화의 거리를 만들면 좋겠다. 실재로 지금 금남로 5가역에 타일벽화로 간판그림이 전시되어있다. 광주일고와 가까운 곳이라 학생독립운동에 관련된 간판을 그렸다. 사람들과 따로 떨어지지 않고 어울려 사라져가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내가 꿈꾸는 간판의 모습이다.
간판 그리는 것 외에는 무엇을 하나.
환경 생태 쪽에 관심이 많다. 사대강이나 기후문제 등을 미술로 표현하고 싶다. 사람의 인권이 중요하기에 그것을 보장할 수 있는 생명환경은 중요하다. 당장 내 앞의 인권문제와 관련된 지구의 아픔은 이상, 이념의 색깔이 달라도 함께 다 책임져야할 일이다. ‘난 환경오염을 작게 했으니 책임이 없다.’ 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늘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자연이 다친다. 그런 것을 서로 생각해 보자는 게 내가 작품 활동을 통해 이야기 하고 하는 것이다.
이전 비엔날레 만인보의 일환이었던 양동시장에서 선생님 그림을 본적이 있다. 꽃에 담긴 상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간판 형식으로 담았다. 시장상인들의 모습을 진달래꽃 모양위에 투영하여 밝고 활기찬 웃음을 그렸다. 시장은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정이 느껴지는 곳이고, 그것이 시장의 기쁨이다. 어머니가 함평시장에서 생업을 하셨기에 시장에 대한 애착이 있다. 또한 진달래꽃은 이른 봄에 먼저 그 향기로 다른 이에게 웃음을 전하기에 그 속에 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만나는 많은 사람들도 진달래꽃에 담고 싶다. 지금 양동시장에 있는 작품은 햇빛에 노출이 되어 많이 바래 안타깝다. 기회가 되면 교체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꿈이 있다면.
영화간판을 그리는 이유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내 작업을 통해 작은 우리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린 시절 강가에서 함께 놀며 간직하는 공동의 추억이 지금의 어린이들에게는 없어 안타깝다. 자연의 추억 속에서 함께 놀았던 이야기들이 우리는 스스럼없이 나오지만 우리 아이들에겐 그런 것이 나올 것인가.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에서 놀 수 있게 하는 게 나의 꿈이다.
박태규
본업은 화가이며 현재 자운영미술학교운영 중이다.환경을생각하는미술인모임, 광주환경운동연합 ‘물한방울흙한줌’, ‘광주천지킴이모래톱’ 활동하고 노동실업광주센터 ‘동그라미미술학교’, 북구문화의집 ‘마을프로젝트’ 등 미술을 매개로 실천하는 생태 문화예술교육사업 진행하며 손으로 영화간판을 그리는 마지막 간판쟁이이다.
박태규 화가 블로그 - http://blog.daum.net/tk1246
이 인터뷰는 광주 문화 재단 웹진 '문화나무'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빛이드는 창 블로그 기자단 자격으로 제가 직접 취재한 내용이에요.
웹진 '문화나무'는 광주의 다양한 문화 행사 소식 뿐만아니라,
그것에대해 좀더 깊고 자세하게, 그리고 친숙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광주 문화에대해 얼리어답터가 되고싶다면, '문화나무' 에 귀를 쫑긋 세워보세요^^
http://www.gjcf.or.kr/news_letter/1111/sub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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