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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고샅길 이야기 No.6 개선마을-벅수-개선사지석등-빛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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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샅길 이야기 No.6 개선마을-벅수-개선사지석등


무등산 고샅길 6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지난번 5번째 이야기에서는 조선시대 서원 죽림재와 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더러움을 씻는 만수정을 지나 넓고 탁트인 광주호를  느긋이 구경할 수 있는 동강조대에 다녀왔습니다. 고샅길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않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지난 시리즈보다 더 흥미진진한데요.
바로 그 이유는 보물을 찾아떠나는 길이기 때문이죠^^!
어떤 보물인지 이야기해드리기 전에!


 

무등산 고샅길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먼저 아래 포스팅과 설명을 참고해주세요.


빛창에 있는 포스팅 무등산 관련 포스팅 글 1박 2일 이수근과 함께한 광주 광역시 ^^* 
- > http://www.saygj.com/1074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No.1 풍암정사 - > http://saygj.com/1424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No.2 환벽당  - > http://saygj.com/1481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3 한국가사문학관 -> http://saygj.com/1496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4 식영정/수남학구당 -> http://saygj.com/1513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No.5 죽림재-만수정-동강조대 -> http://saygj.com/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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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하시면 사진이 더욱 크게 보입니다.


 

[고샅길 구간] 좌측
풍암정사 - 민간신앙지 - 삼괴정 - 평무들 - 취가정 - 환벽당 - 지실마을 - 한국가사문학관 - 식영정 - 수남학구당 - 죽림재 - 만수정 - 동강조대 - 개선마을 - 벅수 - 개선사지석등 - 금곡마을 - 분청사기가마터 - 풍암정사

[무등산 옛길 3구간]우측
장원삼거리-장원정-4수원지-덕봉-충장사-풍암정-도요지-호수생태원-취가정-환벽당


무등산 고샅길이란?


'길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길을 품는다.'
늘 다녀서 그것이 나를 이끄는 길인지 조차도 알아채기 힘든 도시의 길이 있는가 하면, 발길 끊겨 수풀에 덮히고 기억조차 희미해진 옛길이 있습니다. 잊혀진 그 길도 지금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분명 한 4,5백년전쯤엔 댕기머리 학동부터 고명한 선비까지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품어내며 살아갔을 길입니다.

여기 무등의 북동쪽으로 흐르는 원효계곡, 그 물줄기가 제법 깊어져 짙푸르러지는 끝자락엔 사람들의 기억을 비웃기라도 하듯 노송을 벗삼아 4백년 풍상을 이겨낸 풍암정사가 우뚝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시작해 5백년 역사가 깃든 오십리 고샅길을 다시 걷습니다.

우리들에게 잊혀졌던 아주 오래된 길로 일부는 아스팔트로 덮히고 또 일부는 아직 가시덤불에 숨겨진 길일 겁니다.


광주호를 한바퀴 도는 여정과 겹칩니다. 1976년에 만들어진 댐으로 물에 잠길 것들은 호숫가 곳곳에 옮겨 놓았습니다. 무등 산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내를 이루고 들을 적시고 길을 만들고 또 사람을 키워냈을 그 길로 학동들은 골목골목을 넘어서 이웃마을 배움터를 오가고 마을사람들은 일상의 무거운 짐들을 지고 삶의 질긴 끈을 이어가고 당내의 내노라 하는 선비들은 서로 오가며 학문을 논하고 시가를 짓고 세상을 이야기했을 소통의 그 길입니다.



 

■ 여행 코스 point_개선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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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을 찾아 이동하는 중에 지나게되었던 개선마을.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마을이지만 맑은 공기와 푸르름이 가득한 이 곳은 그냥 지나치기엔 조금 아쉬울 수 있습니다.
딱딱한 시멘트와 쉴세없이 오가는 차와 경적소리를 듣다가 이렇게 조용한 마을에 오니 적막하다는 느낌마저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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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잠깐 멈추시고 개선마을에서 약간의 여유를 느껴보시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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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마을에서 잠깐의 여유과 휴식 후에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 먼 곳에서 누군가 서있는게 보입니다.
마을 어귀에 당당히 서있는 저 분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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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니 왠 돌기둥이..하며 더 가까이 가보니 돌에 얼굴이 있네요.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띄우며 우둑하니 서있던 돌기둥의 정체는 바로 '벅수'였습니다.
'벅수'가 뭐야?라고 궁금해하시는분들이 계실 것 같네요.
마을 어귀에서 미소를 띄우며 서있는 것이 또 있답니다. 바로 '정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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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에는 지역에 따라 그 부르는 이름이 다른데, 장성, 벅수, 법수, 당산할아버지, 수살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고있습니다. 담양에서는 '벅수'라고 불리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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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는 마을의 경계표시와 함께 수호신의 역할을하며, 마을의 신앙대상으로 섬겨집니다.
제가 갔을 때도 벅수 아래에 촛대가 놓여있더라구요. 아직도 벅수의 의미를 잊지않고 찾아오시는 분이 있다니 벅수에게는 좋은 일이겠죠.
보통 장승은 남녀한쌍으로 서있는데.. 홀로 서있는 모습이 조금은 외로워보였습니다.




[개선사지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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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를 뒤로하고 점점 마을에서 멀어지다보면 또다시 푸르른 밭들 사이에서 뭔가가 삐죽하게보입니다.
저 넓은 곳에 혼자 외로이 서있는게 벅수말고 또 있다니.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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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제가 찾아헤매던 보물! '개선사지 석등'입니다.
왜 보물보물이라고 하냐면 정말 보물이거든요.
담양군 남면 학선리 마을 진입로에 있는 개선사지 석등은 보물 제111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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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사지 석등은 통일신라 석등 중 유일하게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하부가 땅 속에 묻혀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입니다.
높이 3.5m로 8각의 화사석은 각 면마다 직사각형의 창을 뚫었으며 각 창의 양편에 해서로 136자의 명문을 적어 놓았습니다.
1행에서 6행까지는 신라 경문왕과 그 왕비, 공주(뒤의 진성여왕)가 주관하여 석등을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7행부터 10행까지는 이 절의 승려가 주관하여 석등의 유지비를 충당하기 위한 토지의 구입과 그 토지의 위치에 관한 기록이 적혀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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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에 쓰인 용기 2년은 891년(통일신라 진성여왕3)에 해당되므로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합니다.
석등의 규모나 조각수법으로 보어 상당히 큰 사찰이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하는데요. 어느정도의 크기인지 저는 잘 상상이 안되네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있으면 좋았지않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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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은 절 안을 환하게 밝히는 기능뿐 아니라 부처님의 빛이 사방을 비춘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받침돌을 자세히보면 앞어놓은 연꽃모양을 찾아볼 수 있고,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모양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석등이라고 해서 막연히 주변을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에게는 너무나 큰 의미를 가진 개선사지 석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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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샅길을 따라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가까이에 문화재와 개선사지 석등과 같은 보물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제가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들이었겠지만, 좀 더 많은 분들이 아시고 저와같은 고샅길 여행을 오셨으면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 경험하기엔 너무 아깝더라구요.

여러분들도 이번 주말에 고샅길 여행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