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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무등산]고샅길 이야기 No.5 죽림재-만수정-동강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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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No.5 죽림재-만수정-동강조대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가 벌써 5번째네요^^
지난번에 식영전, 수남학구당을 둘러보았는데요. 이번에는 조상의 숨결를 느낄 수 있는 코스를 소개해드릴까합니다.
조선시대 서원 죽림재, 선비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만수정 ,형제의 효심이 녹아있는 동강조대를 함께 둘러보도록해요^^




무등산 고샅길이 무슨길이지?라고 궁금하신 분은 아래 포스팅과 설명을 참고해주세요^^


빛창에 있는 포스팅 무등산 관련 포스팅 글 1박 2일 이수근과 함께한 광주 광역시 ^^* 
- > http://www.saygj.com/1074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No.1 풍암정사 - > http://saygj.com/1424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No.2 환벽당  - > http://saygj.com/1481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3 한국가사문학관 -> http://saygj.com/1496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4 식영정/수남학구당 -> http://saygj.com/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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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릭하시면 사진이 더욱 크게 보입니다.



[고샅길 구간] 좌측
풍암정사 - 민간신앙지 - 삼괴정 - 평무들 - 취가정 - 환벽당 - 지실마을 - 한국가사문학관 - 식영정 - 수남학구당 - 죽림재 - 만수정 - 동강조대 - 개선마을 - 벅수 - 개선사지석등 - 금곡마을 - 분청사기가마터 - 풍암정사

[무등산 옛길 3구간]우측
장원삼거리-장원정-4수원지-덕봉-충장사-풍암정-도요지-호수생태원-취가정-환벽당



무등산 고샅길이란?


'길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길을 품는다.'
늘 다녀서 그것이 나를 이끄는 길인지 조차도 알아채기 힘든 도시의 길이 있는가 하면, 발길 끊겨 수풀에 덮히고 기억조차 희미해진 옛길이 있습니다. 잊혀진 그 길도 지금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분명 한 4,5백년전쯤엔 댕기머리 학동부터 고명한 선비까지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품어내며 살아갔을 길입니다.

여기 무등의 북동쪽으로 흐르는 원효계곡, 그 물줄기가 제법 깊어져 짙푸르러지는 끝자락엔 사람들의 기억을 비웃기라도 하듯 노송을 벗삼아 4백년 풍상을 이겨낸 풍암정사가 우뚝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시작해 5백년 역사가 깃든 오십리 고샅길을 다시 걷습니다. 우리들에게 잊혀졌던 아주 오래된 길로 일부는 아스팔트로 덮히고 또 일부는 아직 가시덤불에 숨겨진 길일 겁니다.


광주호를 한바퀴 도는 여정과 겹칩니다. 1976년에 만들어진 댐으로 물에 잠길 것들은 호숫가 곳곳에 옮겨 놓았습니다. 무등 산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내를 이루고 들을 적시고 길을 만들고 또 사람을 키워냈을 그 길로 학동들은 골목골목을 넘어서 이웃마을 배움터를 오가고 마을사람들은 일상의 무거운 짐들을 지고 삶의 질긴 끈을 이어가고 당내의 내노라 하는 선비들은 서로 오가며 학문을 논하고 시가를 짓고 세상을 이야기했을 소통의 그 길입니다.



 



 

조상의 숨결이 느껴지는 여행, 무등산 고샅길



 

[죽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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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죽림재.
죽림재는 창녕 조씨 동족마을 안에 위치해있습니다. 그래서 관리도 창녕 조씨문중에서 관리한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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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재를 가까이에서 보기위해 흙담벽을 따라 들어가다보니 CCTV작동 중이라는 경고판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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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에 위치한 전라남도 기념물 제99호인 죽림재는 창녕 조씨 문중의 글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수련장으로 죽림 조수문이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초창 건물은 임진왜란 때 귀중한 책들과 함께 불에 타버렸고 인조 원년(1623)에 6대손인 삼청당 조부에 의해서 다시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48년에 중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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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옆에서 볼 때 '八'자 모양)입니다.
죽림사는 죽림선생과 선생의 아들인 운곡 조호, 삼청당 조부와 소은 정민하의 행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1708년에 문인과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철폐되었다가 2002년에 복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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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쪽으로 소나무 숲이 펼쳐저 있고, 앞으로는 마을과 쭉늘어진 가로수 길이 보입니다.
죽림재에서 바라보는 마을 모습을 바라보며 느끼는 바람의 상쾌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마을에서 죽림재를 바라봤던 것과 같은 푸르른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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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쪽에는 반월형 2단 연못이 있었습니다.
신기하고 예쁜 연못 모습에 한참이나 바라봤답니다. 자연과 어울려 있는 죽림재를 보니 이 곳에서 학업을 이루는데 정말 좋은

위치인 것 같습니다^^



[만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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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재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만수정을 찾아나섰습니다.
날이 더워 가는 길에 조금 지쳤을 때 옆에 보이는 낮잠자는 백구가 순간 부러웠답니다^^;
걷다걷다보니 멀리 살짝 만수정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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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정의 규모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많은 분들이 쉬어갈 수 있겠네요^^
잠시 만수정에 앉아 쉬고있으니 금방 상쾌한 공기와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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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충(1412~?)이 1544년(중종 39년)에 창건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습니다.
이 후 1857년(철종 8)에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었고, 1929년과 1949년에 중수하였으며 다시 1993년에 중수하여 지금의 만수정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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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관수정 외에도 여러 관수정이 있는데, 조선 전기의 문신 송흠(宋欽:1459∼1547)이 관수정을 지은 후에 "물결을 보면 물에 근본의 이치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의 맑음을 보면 마음이 탁 트이고 더러움을 씻을 수 있다. 그러한 뒤에야 물을 바로 보았다고 이를 것이다."라 하였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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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말에 따르면, 관수정은 맑은 물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를 알고나니 앞에 물이 흐르지않는게 다시 아쉬워집니다.





[동강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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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정에서 충전한 기운으로 동강조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좌우로 쭉 늘어난 푸르름과 언뜻 보이는 광주호의 모습에 저절로 신이났습니다^^
드디어 저 멀리 보이는 동강조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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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휑한 모습과 공사 중인 듯 주변에 약간 지저분한 모습에 살짝 실망했지만 이내 넓은 시원스런 광주호의 모습에 동강조대의 매력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동강조대 옆에 핀 이름모를 꽃이 너무나 예뻤답니다.(혹시 이 꽃이름 아시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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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조대는 동강 조국간과 그의 형인 매사 조국성이 양친을 위하여 낚시하던 곳에 그들의 효심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정자입니다. 광주호 건설로 1977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고합니다.
원래 있던 곳에서는 어떤 분위기를 가진 동강조대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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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조대에 있는 현판 중에 이승만 전대통령이 '遺風餘韻'이라 써준 글이 있습니다. 안 쪽에는 많은 편액이 걸려있네요.
군데군데 현대적인 손길이 눈에 보여서 옛 것의 느낌이 나지않았지만 동강조대에 담겨있는 효심을 기리기위함은 그대로이길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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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주변이 어지럽다고해도 동강조대에서 바라본 광주호는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무더운 여름날에 저절로 생각나는 곳이 아닐까합니다.

여러분도 무등산 고샅길따라 제가 느꼈던 상쾌함과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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