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필요없는 경기다. 이 경기는 누가 뭐래도 ‘박호진의, 박호진에 의한, 박호진을 위한’ 경기였다. K리그 10라운드 강원FC와의 원정경기. 지난 컵대회 0:5패배의 수모를 갚아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수비의 두 축인 김은선과 유종현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원은 모든 선수들이 만장일치로 가장 싫어하는 원정지이다. 강원의 전력이 강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강원은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피로 누적도 심하고 컨디션 조절도 힘들기 때문에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곳이다. 재정 사정이 넉넉한 다른 구단들은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이동해서 다시 강릉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고 하지만 광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재정사정이 형편없는 우리 선수들은 광주에서 강릉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자연히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기 힘들다. 따라서 자연히 승리를 바라는 것은 사치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도 시즌 초반에 비해서는 눈에 띄게 성장했기 때문에 0:5와 같은 대패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부상중인 박기동이 지난 울산전에 복귀했고, 발톱이 빠졌던 김동섭도 돌아왔다. 그 사이 주앙 파울로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며 골행진을 시작했다. 이 날 광주는 김동섭, 박기동, 주앙 파울로를 공격진에 깔고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필자가 보았을 때에는 다른 팀에 전혀 밀리지 않는 튼튼한 공격진이었다.
하지만 나쁜 예감은 항상 들어맞는다. 이날 경기 역시 우리 팀은 초반부터 강원에게 탈탈 털렸다. 앞의 세 명의 선수에 안성남을 포함한다면 나름대로 공격적인 경기운영을 할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김은선과 유종현이 빠진 자리가 확실히 커보였다. 물론 골은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여러 차례 눈에 띄었다. 우리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강원에게 좋은 찬스가 굉장히 많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좋은 찬스들을 죄다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찬스를 날려버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광주FC 정신적 지주 박호진이었다.
항상 강조하지만 박호진 선수는 우리팀의 정신적 지주이다. 좀 과장된 면이 있지만 기아타이거스에 이종범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있다면, 광주FC에는 박호진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있다. 경력면에서 이종범과 비교하는 것이 실례일 수 있지만, 대부분이 신인 선수로 구성된 우리팀에서 박호진 선수의 비중은 이종범의 그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박호진 선수는 광주FC의 주전 골키퍼로서 매 경기 혀를 내두를 정도의 환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이 날 역시 박호진은 우리팀을 혼자서 먹여살렸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저런 플레이가 나올 수 있는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1:1 찬스도 여러차례 있었고, 우리팀 수비수의 실책도 꽤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고수는 핑계를 대지 않고 직접 자기가 상황을 처리해버리는 법! 박호진 선수는 진정한 고수였다. 경기를 보는 내내 ‘호진느님’, ‘호진신’ 등등의 말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그런 선수가 우리팀에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경기 초반부터 확실히 밀렸던 우리팀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강원과 달리 우리팀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반 22분경, 상대팀 선수들이 자기 팀 진영에서 공을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팀의 이승기 선수는 강한 압박을 통해서 패스의 길목을 차단하고자 노력했고 결국 이승기 선수의 압박 덕분에 김동섭 선수에게 볼이 왔다. 김동섭 선수는 빠른 발을 이용한 드리블로 문전까지 쇄도했고 강원 선수들은 김동섭 선수 주위에 있던 박기동 선수와 주앙 파울로 선수를 동시에 마크하기 위해 우왕좌왕했다. 당시 김동섭 선수 주위의 강원 수비수는 총 여섯 명! 하지만 김동섭 선수들은 그 여섯명의 수비수를 깔끔하게 농락시켜버렸다. 그들의 예상과 달리 김동섭 선수는 혼자 치고 들어갔다. 그리고 상대 수비수들이 우왕좌왕하던 상황을 놓치지 않고 넘어지면서 직접 슈팅으로 연결했으며, 그 슈팅은 깔끔하게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원 입장에서는 이제 겨우 23살짜리 선수에게 완벽하게 당한 굴욕적인 실점이었다.
김동섭 선수의 슈팅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승기 선수의 압박도 상당히 빛났던 경기였다. 골 장면 장면에서 김동섭 선수가 공을 잡게 된 것은 분명 이승기 선수의 적극적인 압박 덕분이었다. 그의 압박 덕분에 강원 선수들은 정상적인 패스를 할 수 없었고, 그 상황이 김동섭 선수에게 골 찬스를 가져다 준 것이다. 하지만 이 외에도 이승기 선수는 상대 공격의 흐름을 확실하게 끊어주는 플레이를 여러 차례 보였다. 이 날 따라 이승기 선수는 슬라이딩 태클을 굉장히 많이 시도했다. 그리고 그 슬라이딩 태클은 반칙을 범하지 않으며 상당수가 강원에게 큰 타격을 줬다. 몸을 날리며 슬라이딩 태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공만 건드리는 그의 플레이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먼 거리였지만 서포터석에서 경기를 관전했던 필자가 보아도 ‘참 영리하게 태클을 한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골을 넣고 나니 초반에 우왕좌왕했던 우리 선수들에게 어느 정도 여유가 느껴졌다. 이제 오히려 강원 선수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들은 한 골을 만회하고자 굉장히 열심히 움직였고, 그 가운데 우리 수비진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결국 일이 터졌다. 전반 막판 우리팀의 주전 수비수 정우인 선수가 부상을 당했고, 42분경에는 정우인 선수 대신에 임하람 선수가 투입되었다. 구급카트에 실려가는 정우인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안쓰러웠고, 동시에 안 좋은 예감까지 들었다. 선수층이 얇은 우리팀에게 주전 수비수의 부상은 굉장히 큰 악재다. 어느 정도의 부상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정우인 선수가 하루빨리 털고 일어나길 바란다.
후반에도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는 이어졌다. 이날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박기동 선수의 움직임이 굉장히 돋보였다. 후반 막판 결정적인 찬스에서 상대팀 골키퍼 유현 선수의 키를 넘기고자 했던 슈팅이 가장 압권이었다. 그 외에도 박기동 선수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 사실 필자는 박기동 선수가 그렇게 빠른 선수인줄 몰랐다. 부상 때문에 몇 경기를 쉬어서 공격포인트가 주춤했기 때문인지 박기동 선수는 굉장히 열심히 뛰었다. 골을 넣은 이후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한 팀 플레이 때문에 맞불을 놓지는 못했지만 박기동 선수의 모습은 분명히 눈에 띄었다. 중간중간 속공을 하려고 전력질주를 하며 상대팀 골문앞으로 달려가는 박기동 선수의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는데 그 때마다 공격진들이 도와주지 않아서 약간은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주위 선수들이 속공에 가담했다면 더 많은 골이 나왔을텐데...... 하지만 반대로 수비진이 약해져서 골을 허용할 위험도 그만큼 높아지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날 박기동 선수의 적극적인 플레이는 최고였다. 이런 경기력을 유지한다면 가까운 시일내에 박기동 선수의 골도 다시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강원의 파상공세는 경기 막판으로 갈수록 계속되었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 역시 그들의 창들을 막을 방패로서 열심히 활약했다. 하지만 방패보다는 창이 더 강하다는 느낌이었다. 단지 그 방패의 중심에 박호진 선수가 있어서 그 창이 오는 족족 부러졌다. 강원 입장에서는 참 약올랐을 것이고, 우리 입장에서는 참 든든했던 순간이었다. 결국 그렇게 경기는 1:0으로 종료되었다. 3월 16일 0:5의 패배에서 두 달만에 1:0의 승리를 거두다니,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두 시간짜리 경기를 보기 위해서 10시간 이상되는 거리를 차로 이동했지만 결코 아깝지 않았다. 이 짜릿한 기분은 분명히 TV로는 느끼기 힘들 것이다. 정말로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는’ 기분이다.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이 날의 최고 수훈 선수는 박호진 선수다. 공식적인 MOM에는 결승골을 넣은 김동섭 선수가 선정되었고, 김동섭 선수의 골이 경기를 끝냈지만 개인적으로는 박호진 선수의 활약이 훨씬 돋보였던 경기라고 본다. 이번 라운드 베스트 일레븐에 광주선수로서는 김동섭 선수가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상대팀의 수비수 여섯 명을 갈라버렸으니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박호진 선수가 뽑히지 않았다는 것은 못내 아쉽다.
솔직히 박호진 선수는 이번 라운드 베스트 일레븐이 아니라, 이번 라운드 MVP가 되어도 손색이 없는 활약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는 토요일 저녁 경기라서 일요일 경기들에 묻혀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뻘 생각도 해본다. 어쨌거나 결과에 관계없이 필자의 생각은 박호진 선수가 이번 라운드 MVP다! 이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쉽게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승리의 기쁨에 가려졌지만 이 경기에서 정우인 선수는 부상을 당했다. 정확한 치료기간은 알 수 없지만 전력의 공백이 불가피하다. 우리처럼 선수층이 얇고 경험이 부족한 팀은 그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팀은 주전과 비주전의 기량차가 크지 않다. 덕분에 이러한 상황에서 또 다른 신데렐라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 신데렐라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주전 수비수로 도약할 수도 있다.
필자는 이 날 정우인 선수 대신에 교체되어 들어온 임하람 선수에게 희망을 봤다. 아무래도 붙박이 주전 수비수에 비해서는 부족하지만, 그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기대 이상의 활약을 했다. 지난 컵대회 부산과의 원정경기에서 필자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던 임하람 선수가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굉장히 기대가 된다. 동시에 정우인 선수가 부상에서 빨리 복귀해서 임하람 선수와의 피튀기는 경쟁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도 강하다. 정우인 선수의 빠른 복귀를 기대한다. 동시에 우리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앞으로도 부상선수 방지에 총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중계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경기장 밖에서도 훈훈한 모습이 이어졌다. 사실 0:5로 졌던 지난 컵대회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3월에 내리는 눈까지 맞아가며 멀고 먼 강원 원정길에서 0:5의 대패를 한 것도 굉장히 굴욕적이었는데, 경기장 밖에서 서포터끼리 충돌이 있었다. 말 그대로 설상가상의 상황이었다.
물론 규정으로 명시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 원정팀 서포터스는 경기장 밖에서 섭팅을 하지 않는 것이 각 팀 서포터스 사이에는 불문율로 굳어져있다. 하지만 그 날 광주 서포터들은 강원 홈구장인 춘천에서 장외 섭팅을 했다. 강원 팬들의 입장에서는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광주 서포터들은 장외 섭팅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강원 서포터들과 충돌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경호원까지 투입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시즌이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고, 게다가 컵대회 첫 경기부터 춘천까지 먼 원정을 가서 불문율을 지키지 않고 장외섭팅을 해서 상대팀 서포터와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킨 것은 분명히 광주 서포터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팀을 사랑했기 때문에, 0:5로 대패를 당한 우리 선수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 충돌 때문에 강원 서포터와의 사이는 좋을 수 가 없었다.
그런데 이 날 경기가 끝난 후에 강원 서포터스 ‘나르샤’에서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광주 FC의 K리그 입성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직접 광주 서포터스를 찾아온 것이다. 긴 말 하지 않아도 그 행동 하나만으로 두 달 전 충돌은 자연스럽게 눈이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짧지만 즐거운 대화도 나눴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었고, 감동의 연속이었다.
경기에서도 이기고 상대팀 서포터들과 훈훈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던 이번 강원 원정은 굉장히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아마 강원전에서 또 다시 대패를 했다고 하더라도 강원 서포터 ‘나르샤’의 이런 모습 덕분에 광주 서포터들은 분명히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경기까지 이겨주지 더 금상첨화다. 먼 곳까지 원정가서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 아낌없는 열정적 응원을 보낸 광주 서포터스 ‘빛고을’, 그리고 과거의 앙금을 씻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어준 강원 서포터스 ‘나르샤’까지 이래저래 행복했던 강원 원정길이었다. 광주FC와 강원FC가 시민·도민 구단으로서 앞으로도 놀라운 발전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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