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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라 광주/소식

가을 무등산 억새에 취하다(광주 무등산 옛길 2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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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옛길 2구간이 시작되는 길. 

무등산 옛길 2구간 1.  

무등산 옛길 2구간 2. 

무등산 옛길 2구간 3. 

무등산 옛길 2구간 4. 

가을 단풍의 운치와 정취를 맛보기도 전에 겨울이 성큼 다가와 옷깃을 여미게 한다. 가을 여인(?)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지인들과 함께 그제(10.30일) 국립공원 승격을 추진하고 있는 남도의 명산 무등산을 찾았다.

언제나 어머니의 품속 같은 무등산은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가을의 무등산은 을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억새와 청명한 가을하늘이 더욱 등산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무등산은 남도인의 꿈과 이상이 숨 쉬는 곳 

또한,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고 있는 무등산은 남도인의 꿈과 이상이 숨 쉬는 곳이며, 자연과 역사의 숨결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주말이면, 광주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등산으로 달려가 의 활력과 건강을 충전 받는 일은, 이제 일상의 큰 즐거움이 되고 있다.

무등산장 → 무등산 옛길 2구간(원효사-서석대-입석대) → 장불재 → 중봉 → 중머리재 → 토끼봉 능선 → 덕산 너덜지대 → 바람재 → 무등산장 코스로 산행(왕복 5시간)을 시작했다.

광주광역시 북구와 전남 화순군 이서면, 전남 담양군 남면과의 경계에 놓여있는 높이 1187m의 무등산은 백제 때에는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에는 서석산(瑞石山)이라고 불렸다.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원 면적은 30.23㎢이다. 유적으로는 증심사(證心寺)·원효사(元曉寺) 등의 사찰과 석조여래좌상(보물 600)을 소장하고 있는 약사암(藥師庵:)·천문사(天門寺)·미력사(彌力寺) 등의 암자가 있다. 정상 가까이에는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하여 기암괴석의 경치가 뛰어나다.

동쪽 경사면에서 정상을 향하여 입석대(立石臺)·서석대(瑞石臺)·삼존석(三尊石)·규봉암(圭峰庵) 등이 있고, 정상 부근에는 수신대(隨身臺)가 있다. 산 북쪽 기슭인 충효동에는 환벽당·소쇄원·식영정 등의 누정이 세워져 있고, 완만한 산기슭에는 무등산 수박과 춘설차의 재배가 왕성하다.  

서석대 1. 

서석대 2.

서석대 정상.   

서석대 정상 주변 절리. 

등산로는 여러 코스가 있는데, 주로 증심사와 무등산장 방면을 출발점으로 하여 2∼3시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산 북동쪽에는 관광도로가 개설되어 산허리의 원효계곡까지 자동차로 약 30분이면 갈 수 있고, 여기서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오르면 된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瑞石山)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부른 이름으로 '무돌', '무진'이라 했던 것이 무등산으로 바뀐 것이다. 무등산에 대해 육당 최남선 선생은 "금강산에도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비길 경승이 없으며, 특히 서석대는 마치 해금강 한쪽을 산위에 올려놓은 것 같다"고 찬탄한 바 있다.

무등산은 구름도 바람도 쉬어가는 무릉도원

봄에는 서석대, 입석대 주위에 흐드러지게 피는 철쭉과 진달래, 여름에는 규봉암, 시무지기 폭포, 가을에는 장불재, 중봉 일대의 억새꽃이 장관이며, 겨울에 피는 서석대, 입석대의 설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밝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산행하기에는 그만이다. 길가에는 자동차들이 즐비하고, 무등산에는 울긋불긋 등산객들로 대만원이다. 무등산의 숲과 나무는 더욱 깊은 초록과 단풍으로 물들면서 서서히 무등산을 가을 수채화로 물들이고 있다.

무등산장 원효사 앞에서 무등산 옛길 2구간의 산행을 시작했다. 무등산 옛길은 무등산 아래 광주, 화순, 담양사람들이 신작로가 생기기 이전 광주를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소통하던 길이다.


무등산 옛길은 산수동에서 원효사를 거쳐 서석대로 이어지는 길로 수지사 입구에서 청암교에 이르는 사색할 수 있는 길, 청풍 쉼터에서 화암마을 옛 주막터까지 시인 김삿갓이 화순 적벽을 찾아 갔던 길, 화암마을에서 충장사까지 담양 화순 사람들이 광주로 장을 보러 다니던 길, 충장사에서 원효사까지 옛 산장을 찾아가는 길 등이다. 이 길 외에도 화순 이서나 동복 사람들이 광주를 넘나들던 장불재 길이 있다.

무등산 옛길은 3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구간은 산수동에서 충장사를 거쳐 원효사까지 7.75km,  제2구간은 원효사에서 제철유적지를 거쳐 무등산 산행 정상인 서석대까지 4.12km, 제3구간은 장원봉 삼가리에서 환벽당까지 11.3km이다.

무등산 옛길은 원시림에 가까운 생태의 보고

입석대 1.

입석대 2.  

무등산 옛길 2구간을 걸으면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만 있어 마음으로 숨소리도 죽여 가며 조용히 걸어가라는 무아지경의 길, 옛날부터 돌에서 철을 제조했다는 제철유적지, 멍석같은 치마바위, 김덕령 장군께서 무기를 제련했다는 주검동, 원효사 시천지, 활짝 열린 아름, 수백년 된 노송나무와 이름 모를 아름드리 나무들, 크고 작은 수많은 바위와 이끼, 조금씩 물들은 단풍 등과 조우했다. 이곳은 그야말로 생태적으로 원시림에 가까운 자연의 보고였다.

2시간 동안 길을 가다 하늘이 열린다는 푯말을 지나니, 중봉과 서석대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무등산 사방팔방의 자태와 광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400여m를 더 위로 올라 서석대 앞에 섰다.

마치 거대한 병풍을 둘러 쳐놓은 것 같은 장엄한 돌무더기인 서석대의 비경에 등산객들은 탄성을 지르며, 연신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서석대의 위용은 전에는 단풍나무로 가려져 있어 그 아름다운 모습을 온전히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에 광주시가 ‘무등산 옛길’을 조성하면서, 바로 눈앞에서 서석대의 전경을 모두 볼 수 있도록 탐방로를 개설하였다. 서석대는 그야말로 수정병풍(水晶屛風)이다. 서석대(1100m)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 있어서 저녁노을이 물들 때 햇빛이 반사되면 수정처럼 강한 빛을 발하면서 반짝거리기 때문에 '서석의 수정병풍'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무등산 절리대(서석대, 입석대, 규봉암)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 것도 실은 이 서석대의 돌 경치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석대의 병풍바위는 청명한 날이면, 광주시가지에서도 그 수려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고, 5월 하순쯤 이곳에 만개한 연분홍 철쭉꽃은 기암절벽과 어울려서 초여름 무등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서석대 아래 오형제 바위를 거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널 부러진 바위 위에서 기념사진 한 컷 하고, 입석대로 올라갔다. 서석대 바로 위에는 입석대가 있고, 무등산의 정점 천왕봉이 위치하고 있다.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은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 입산이 금지되어 있다. 무등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큰 아쉬움이다.

온갖 식물들과 나무들이 반기는 정상의 서쪽 해발 1017m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입석대(立石臺)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남한에서 가장 큰 바위기둥이다. 입석대를 바라보면서, 자연의 경이로움에 새삼 감탄했다.

장불재 억새 1.  

장불재 억새 2. 

가을 채색 중인 무등산.


무등산 단풍. 

무등산 너덜경.

이곳에 오니, 힘든 등산의 맛이 절로 느껴진다. 등산객들로 북적거린다. 입석대 표지석 주변에서 간식 먹으며, 꿀 맛 같은 망중한의 시간 보내니, 세상 모든 시름이 봄눈처럼 사라진다.

입석대의 이 바위기둥들은 화산폭발의 산물로 보인다. 무등산에서 화산활동이 일어난 시기는 정확히 측정된 바 없지만, 중생대 백악기 후기(대략 9천 만 년 전 전후)로 추정되고 있다. 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무등산 주상절리대(입석대, 서석대, 규봉암)는 용암이 식을 때 수축되어 생기는 절리 중 단면의 형태가 오각형이나 육각형의 기둥모양인 것을 말한다.

무등산 주상절리는 약 7천만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서석대, 입석대, 규봉암이 대표적이다.  입석대, 규봉암은 풍화가 많이 진행되어 기둥모양이지만, 서석대는 풍화가 덜 진행되어 병풍모양을 하고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산비탈에 있는 너덜경은 이러한 돌기둥이 무너져 쌓인 것이다. 너덜경들은 암석의 생성과 풍화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희귀한 자연유적으로 입석대, 서석대 등의 주상절리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지난 2005년 12월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된 무등산 주상절리는 역사성과 보존성이 뛰어나다. 상상을 뛰어넘은 세월동안 물리적 풍화작용으로 수십 개의 돌기둥과 병풍이 다듬어져 경관이 수려할 뿐더러 학술적 가치가 크다. 특히 입석대는 5~8각, 둘레 6~7m, 높이 10여m의 독립된 돌기둥 수십 개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으며, 서석대는 돌병풍 모양으로 동서로 길게 발달해 있다. 광주시는 현재 ‘무등산 절리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입석대 정상에서 약 400m쯤 아래로 산을 내려오니, 장불재이다. 장불재로 내려오는 곳곳에 주상절리 바위와 억새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곳에도 등산객들이 넘친다. 잠시 깊은 숨 몰아쉬니,  말등 같은 백마산 능선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말갈기 같은 억새가 땀과 마음을 훔쳐 준다.

여느 산처럼 가을 무등산에서 내려다보는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어 푸른빛의 큰 호수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무등산은 곳곳이 마치 때 묻지 않는 원시림 숲을 걷는 상큼한 기분이다. 구상나무와 이름 모를 꽃들 사이사이로 살짝 살짝 웃음 흘리며 뜻 모를 그리움을 솟구치게 하는 억새들의 살랑거림이 마치 처녀의 속살처럼 다가와 가슴팍을 친다.

말갈기 같은 무등산 억새는 그리움 가득한 처녀의 속살

 

중봉 탐방로 억새 1. 

 

중봉 탐방로 억새 2.

 

중봉 탐방로 억새 3.

 중봉 탐방로 억새 4. 

장불재에서 중봉으로 내려오니, 억새가 장관이다. 햇살을 한껏 품은 억새꽃은 속살까지 투명하게 비치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이곳은 지난 1998년까지 주둔했던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등고선 복원과 목재 탐방로 조성 등 생태복원사업이 이루어진 곳이다. 성공적인 생태복원사업으로 무등산 중봉 억새밭은 서석대, 입석대 등의 주상절리대와 함께 무등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무등산의 억새는 두 곳으로 나뉘는데, 특히 무등산장 원효사 지구에서 꼬막재를 넘어가는 목장 일대와 규봉암 가는 길에 펼쳐진 억새의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동화사터를 올라 능선에서부터 시작되어 중봉 근방과 군부대 복원지, 장불재를 지나 백마능선과 안양산까지 펼쳐진 억새의 물결이 더욱 아름답다.

억새 밭에서 사진 몇 컷 하고, 중봉을 거쳐 토끼봉 능선을 타고 비람재로 내려왔다. 이곳으로 내려오는 등산로는 한마디로 돌바다의 산행이다. 무등산 비탈에서 보면 많은 돌무더기들인 너덜겅이 발달되어 있다. 바윗덩이가 제멋대로 굴러 떨어져 있지만, 사이사이에 자라난 관목과 어울려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 너덜겅들은 서석대나 입석대와 같은 주상절리의 돌기둥들이 세월이 더 지나서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들이란다. 특히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경관이다.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가 이곳에 와서 석굴을 만들고 많은 제자에게 불법을 가르치면서 좌선수도(坐禪修道)하다가 그의 법력으로 수없이 많은 돌을 이곳에 깔아 놓았기에 누가 어느 돌을 밟아도 덜컥거리지 않고, 그리하여 이곳을 지공너덜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 많은 수억의 돌은 본시 상봉근처에 있는 돌무더기였는데 김덕령장군이 하루아침에 깨뜨렸다가 내던져서 이렇게 된 것이라는 전설도 있다.

바람재에 도착하여 약 30여분을 더 내려와 무등산장 보리밥 집에서 땀 훔치며, 식사 하니, 신선의 밥상이 따로 없다. 마음이 충만하고, 넉넉하다. 등급이 없는 누구에게나 사랑과 자비의 마음 가득 안겨주는 무등산의 가치와 그 감동의 여운이 지금도 황홀한 감전으로 남아있다.

산에 머무는 시간만이라도 세상사 다 버리고, 일체의 상념을 떠나 자연 그대로의 이상적인 무념무상의 경지를 느끼고 싶으면, 빛고을 광주의 무등산을 찾으라. 그리하면, 절로 생각의 신선이 되고, 마음의 천사가 되고, 행복의 전령이 되리라. 

중봉에서 내려다 본 억새 1.  

중봉에서 내려다 본 억새 2. 

중봉에서 내려다 본 억새 3. 

중봉에서 내려다 본 억새 4,

 

중봉에서 내려다 본 억새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