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을 보며 춘설헌에 반하다.
햇살조차 서쪽으로의 길이가 더 짧은 시각 춘설헌을 찾았다. 게오르규가 이곳을 찾아 갈 때의 느낌을 연상하면서 천천히 발소리를 음미하며 걸었다. 춘설헌을 찾아가는 길은 조급히 하지 말라는 지인의 말을 지침삼아 바로 옆의 개울과 무등산 자락에 눈길을 주어가며 내심 여유롭게 걷고자 했다. 신림교를 건너고 산자락에 자그마한 집 한채가 보이는 순간 발길은 그새 빨라진다. 집에는 관풍대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차 한잔을 하고 가라는 깃대가 걸려있다. 빨간 단풍이 온통 주변을 밝혀 마치 커다란 호롱불 같은 느낌이다. 관풍대로 오르는 십 여개의 계단 옆에는 차나무가 심어져 있다. 말로만 듣던 춘설차다. 꾸민것도 없이 단출한 관풍대는 어김없이 소박한 다방이다. 나무로 된 긴 탁자에 다기들이 하얀 보에 덮여있을 뿐이다. 여기서 차는 모두 공짜다. 담백하고 구수한 차 향을 맡으며 내다보는 풍경도 단정하다. 무등산과 증심사를 오르는 사람들이 눈 밑으로 다가오고 키 큰 단풍나무에서 빨간 잎들이 불꽃처럼 떨어진다.
관풍대 풍경
관풍대에서는 무료 차 시음을 한다
관풍대에서 증심사를 향해 조금 더 가면, 의재미술관이다. 미술관 앞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문향정 앞. 주변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 바로 아래의 계곡에서 물소리가 쉼 없이 들려오고 계곡 옆에는 자그마한 정원과 물레방아가 보기 좋다. 이곳은 원래 의재 허백련이 만든 농업기술학교의 실습장이자 차 공장이었다. 여기서 춘설차가 직접 만들어졌다. 지금의 문향정은 차를 체험하는 곳이다. 춘설차를 따고 덖어서 차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차 체험이 어려운 가을에는 차를 마시며 경관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향정 뒤로 돌아가면 춘설헌이 있다.
문향정외관
문향정 내부 모습
문향정에서 차 체험을 할 수 있다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가였던 의재의 삶이 녹아있는 곳이다. 봄 눈을 녹여 차를 끓여먹는다는 춘설차. 그리고 차를 마시던 그곳 춘설헌. 이름부터 남다르다. 지금은 춘설 자리에 단풍이 그 맛을 대신한다. 춘설에 못지않은 풍경이다.
춘설헌은 의재 선생이 1958년에 지은 화실이자 카페다. 1973년 3월에 25시의 작가 게오르규가 무심코 찾아와 난초에 대해 물었다지.“ 난초는 동양인의 마음과 같다는데, 그만큼 대하기가 까다롭다는 건가?” 의재가 답하기를 “ 아니오, 조용하고 깊이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흔히들 난초를 선비에 비유합니다.” 이름난 작가들은 대화도 남다른가 보다. 너무 멋있는 대화 아닌가. 아마도 이들은 지금처럼 햇빛좋은 날 창가에 앉아 춘설차를 나누며 대화를 했으리라.
단풍든 춘설헌
춘설헌은 한옥이나 양옥이라기 보다 일본식 집에 가깝다. 원래 방 2개에 화실과 마루가 있는 자그마한 집이었지만, 찾는 손님이 많아지자 옆에 방을 더 늘렸단다. 이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대표적인 인물들이 다석 유영모, 지운 김철수, 효당 최범술, 함석헌 등이었다. 특히 함석헌은 힘들 때 마다 찾아와 며칠씩 묵어가곤 하였다고....
늦 가을의 춘설헌
춘설헌에서 되나와 산 쪽으로 오르면 의재의 묘지 가는 길이다. 길 옆에는 가꾸지 않은 춘설차밭이 그늘아래 펼쳐진다. 비스듬한 오후 빛에 연푸른 차 잎이 반짝인다. 차밭 곳곳에 하얗게 핀 차 꽃도 이색적이다. 차밭 옆으로 나 있는 오솔길은 떨어진 단풍잎으로 온통 빨갛고 노오란 꽃길이다.
의재묘소 가는길
의재묘소가는길의 춘설차
춘설차 꽃
광주 무등산 주변에서 연인과 걸으며 감동받을 만한 곳이 여기가 아닌가 싶어진다. 누군가가 광주에서 가볼만한 곳을 물어오면 자신 있게 맨 먼저 알려주고 싶은 곳이 바로 여기다. 의재의 삶과 미술. 그리고 무등산의 자연까지, 요즈음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여행의 모습이 이러하리라 자신한다.
의재묘소주변풍경
의재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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