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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의병 5명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 - 포충사 [광주랑]

임진왜란 당시 의병 5명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 - 포충사 [광주랑]




포충사는...

1974년 5월 22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호남지방에서 최초로 의병 7,000여 명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1593년 8월의 금산싸움에서 전사한 고경명(高敬命)과 그의 두 아들, 종후(從厚)·인후(因厚)의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안영(安瑛) 등 5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입니다.

포충사는 1865년 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정리할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폐쇄되지 않았던 전라남도 지방의 2대 서원 가운데 중 하나입니다.





지나오던 길에 '빛고을공예창작촌'이 있던데 다음에 이곳을 한번 방문해 보겠습니다.




예전에는 1차선의 아주 작은 지방도로 였습니다.

새로 다져진 길은 넓고 좋아 보이긴 합니다.






위치는...

주소는_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947-4

전화는_ 062-613-3471




포충사 입구입니다.




그런데 어느 유치원에서 이곳으로 소풍을 왔나 봅니다.

저 멀리 잔디밭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들어서는 입구가 곧게 뻗은 것이 뭔가 암시를 하는 듯 합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주차장과 왼쪽으로는 관리사무실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간식을 구입할 수 있는 휴게소도 마련되어 있더군요.




포충사의 안내도

그림을 보면 직접 그린 그림과 글씨입니다. 그런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위로 덧대어 칠한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다른 곳의 안내도 처럼 프린트를 하지 않고 아직도 덧대어 칠하는 것이 촌스럽지만 정겹습니다.

왠지 오래된 영화포스터를 보는 듯한 기분... 특히 들쑥날쑥한 글씨체...;;





포충사에는 안내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미리 전화를 예약을 해두시면 방문시 자세한 설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전화는_ 062-613-3471
가족들과 아이들과 함께라면 같이 해설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포충사는 1623년, 1810년, 1879년, 1919년, 1927년, 1933년에 각각 중수했고, 

1978~1980년에 현재의 사우(신사우)를 정화하였다. 사당은 앞면 3칸으로, 1고주 5량가의 맞배집이고, 

동재와 서재는 정면 3칸, 옆면 1칸 반의 맞배집이다. 내삼문과 외삼문은 앞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집으로 되어 있습니다.




외삼문을 지나 들어서면 정면으로는 신사당의 계단이보이며, 왼편으로는 정원과 연못과 정화비가 있습니다.




오른편에는 정기관이 있습니다.


암튼 저 멀리 꼬맹이들 신났습니다.





이곳 정기관에는 <포충사우가 褒忠祠宇歌, 1614>등 현판문 3매, 복호입안문서(復戶立案文書, 1592)와 고경명의 문과급제교지(1558)등 

고문서 6매, 고경명친필 마상격문(馬上檄文), <제봉집 霽峯集>(252매), <정기록 精氣錄>(71매) 등의 목판 493매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뒤돌아서 잠시 외삼문쪽을 바라봅니다.




정화비




.............

그럼 먼저 정기관을 방문해 봅니다.

정기관 입구에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고경명 장군의 동상 사진 위에는 직접 쓰신 '세독충정'이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세독충정<世篤忠貞>이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나라에 충성하고 항시 올바른 마음을 굳게 지녀야 한다"는 

평소 후손에게 가르치던 좌우명이라고 합니다.





의병을 모을 때 백마피로 피의맹세를 하는 그림 등 여러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

그외 목판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신사당을 향해 걸어가 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 합시다' 라는 저 문구는 이제 거의 보기 힘든데... 아직도 저현판이 존재하는 걸 보면은...

이곳은 아직도 꼬맹이 아이들이 소풍을 많이 오나 봅니다.





내삼문 앞에서 잠시 뒤를 돌아 봅니다.

꽤나 멋진 뷰를 선사해 줍니다.

요즘 장마기간이라 하늘은 뭐 포기한지 오래입니다.





단체 인증사진은 필수겠지요.




원장선생님이 무서운 것인지 아니면 유독 얌전한 아이들이 소풍온 것인지 선생님 말씀을 잘 따릅니다.




고경명 장군이 모셔진 신 사당입니다.




잠시 둘러봅니다.

....

......

저도 왔으니 참배를 해봅니다.

......

그렇게 참배와 관람을 마치고 신사당을 나와 정원쪽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로 향합니다.




이곳은 옛 사당의 입구인 홍살문입니다.

포충사에서 특히 이채로운 것은 옛 사당의 입구 홍살문 옆에 있는 자연석에 새겨져 있는 봉이(鳳伊)와 귀인(貴仁)의 비문이다. 

이들은 고경명의 충직스러운 노비로, 주인과 함께 의병에 참가하였고, 금산싸움에서 고경명과 고인후 부자가 

전사하자 그 시신을 거두어 정성껏 장사지냈다 합니다. 

이듬해에는 다시 살아 남아 있던 고경명의 아들 고종후를 따라 진주성 전투에 참가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충의의 인물들이라고 합니다.






생긴건 참으로 볼품이 없습니다. 그냥 자연석의 바위를 깍아만든 비석이지만 비석에는 <충노 봉이 . 귀인 지비>라 씌어 있습니다.

이 비록 볼품은 없지만, 국내에서는 유일한 노비들을 기리는 비석인 겁니다.

고경명 선생의 장남 종후를 따라 진주성전투에 참가해 왜적과 싸우다가 주인과 함께 순절하였는데 국난을 당해 신분을 초월한

자기희생을 기리기 위해 자연석에 새긴 비라고 하니 왠지 숙연해 집니다.






옛사당인 구사당으로 가는 홍살문입니다.




그럼 올라가 봅니다.




쓰러질 듯 보이지만 잘도 버티어 서있는 소나무들... 너희들도 충절이더냐? 참으로 멋지구나.




앗...~ 입구의 지붕이 좀 위태로워 보이는 군요.




옛사당은 이제 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담장너머로 살며시 내다 봅니다.

그런데 오히려 옛사당이 더 멋스러워 보입니다.





구사당에서 내려가는 길~

예전에는 그냥 언덕에 흙길이였는데....





말끔하게 다져진것이 걷기에 참 좋습니다.




홍살문을 향해 갸우뚱한 소나무들...




왼쪽길은 산책길인 것 같습니다.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것이 가을에 오면 좋겠다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포충사를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에 오시면 꼭 해설해주시는 분의 설명도 함께 들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또 한번 도시락 싸서 돗자리 깔고 나들이를 오고 싶군요.

그날이 언제쯤 다시 올런지...



그럼, 오늘도 행복하게 내일을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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