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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광주 기념물 1호 -- 바람, 그리고 물과 함께 세월을 기다린다.. 환벽당을 찾아서

    광주 기념물 1호 환벽당을 찾아서...

세월은 항상 흔적을 남긴다.

역사의 고된 시련 속에서 살아남아 빛고을 광주를 상징하는 것들이 주위에 참 많다.

광주를 상징하기 위해 광주 기념물을 제정하고 보호하는 이유도 세월을 흔적을

보듬어 안으려는 광주 사람 모두의 희망으로 만들어 졌으리라 생각된다.

항상 광주와 함께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몰랐던 광주 기념물들을 찾아 앞으로 하나 하나

연재할 예정이다.

                          광주 기념물 위치와 목록

지정번호 등록명 소재지
1호 환벽당 북구 충효동
2호 정지장군예장석묘 북구 망월동
3호 전상의장군예장석묘 북구 화암동
4호 충효동정려비각 북구 충효동
5호 허백련 춘설헌 동구 운림동
6호 오지호가 동구 지산동
7호 포충사 남구 원산동
8호 양송천묘역 광산구 동호동
9호 빙월당 광산구 광산동
10호 칠석동 은행나무 남구 칠석동
11호 양씨삼강문 광산구 박호동
12호 고씨삼강문 남구 압촌동
13호 용아생가 광산구 소촌동
14호 무진고성지 북구 두암동, 동구 지산동, 산수동
15호 우일선선교사사택 남구 양림동
16호 충효동 왕버들 북구 충효동
17호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남구 양림동
18호 화담사 서구 화정동
19호 학동 느티나무 동구 학동
20호 월계동 장고분 광산구 월계동
21호 금곡동 제철유적 북구 금곡동
22호 명화동 장고분 광산구 명화동
23호 범세동선생묘 광산구 덕림동
24호 괘고정수 남구 원산동
25호 광주 북동천주교회 북구 북동
26호 광주학생운동발상지 북구 누문동, 동구 장동

 

        광주 기념물 1호 환벽당을 찾아서...

 7월의 장마는 오랜 가뭄을 삭히는 어느때 보다 고마운 비인것 같다.

장마가 잠시 그친 7월의 여름 열기는 30도를 훌쩍 넘는 더위를 안고 환벽당을 찾았다.

환벽당은 푸르른 기운이 벽처럼 둘러쳐졌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그 이름만 들어도 벌써부터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환벽당에 거의 다다르면 유명한 가사문학관이 눈앞에 보인다.

                                   < 가사 문학관 입구>

                            < 가사 문학관 담장 옆 야생화>

                           < 환벽당으로 들어 가는 초입>

 

               물과 바람, 그리고 사람이 어울려 사는곳

                               -  환벽당으로 들어가다.

 

 환벽당은 충효동에서 태어난 사촌() 김윤제(悌, 1501∼1572)선생이 나주 목사 등 지방관을 역임하다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환벽당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앞에 흐르는 개울물과 오랜 시간을 그렇게 거기서 서 있었을 것 같은 아름드리 소나무들, 그리고 바람까지 어우러져 이곳을 환벽당이라 이름 지을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래 사진들은 환벽당으로 들어 가는 작은 오솔길을 모은 사진들이다.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에 나오는 환벽당 묘사 장면을 기록한 시비 >

 

 

아름다운 만남이 있어 환벽당은 더 멋지다.

                        -송강 정철과 김윤재선생과의 만남

 우리나라 어디를 막론하고 멋진 풍광이 펼쳐진 곳이라면 그에 맞는 전설들이 있기 마련이다.

푸르름이 어울린 이곳에 전설이 숨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송강 정철이 14세 되던 해 순천에 있는 형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지나다 용소라는 맑은 물에 물놀이를 즐긴다. 그때 마침 환벽당에서 낮잠을 즐기던 김윤재 선생이 용소에서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꾼다. 그리고는 급히 그곳에 가보니 소년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터라 그를 데려다 시험삼아 문답을 해보니 그의 영특함이 하늘의 이치를 통한지라. 이에 그를 제자로 삼아 그곳에 함께 머물면서 학문의 즐거움을 맛보고 학문에 정진하니 훗날 이 소년이 장성하여 명 문장가로 세상의 이름을 알리니 바로 송강 정철 선생이다 . 또한 김윤제선생의 외손녀와 송강 정철 선생이 결혼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송강 정철과 김윤재 선생의 아름다운 만남을 이야기 하는 전설이다.

이처럼 환벽당은 만남을 즐기고 자연을 즐기는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환벽당 돌담길>

                                                      <환벽당 모습>

                                             < 환벽당 앞에서 본 풍경>

                                           < 환벽당으로 올라가는 돌 층계>

 

                    자연과 벗하니 어찌 詩 한수 빠 질 쏘냐     

                                   - 문학이 어우러진 환벽당 이러세. 

늘 푸른 대나무처럼 넉넉히 살아 온 선비들이 함께 어울린 곳이 바로 환벽당이다.

정자에 환벽당이란 멋진 현판을 쓴 분이 바로 송시열 선생이다.

또한 환벽당 안에는 아직도 임억령 조자이 선생이 직접 쓴 시가 남아 있다.

이곳과 더불어 3대 명승으로 불린 식영정 소쇄원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

자연속에서 세상 근심을 잊고 시 한 수에 취하고 좋은 사람에 취해 밤새도록 문학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논하 던 선비들의 모습이 아련히 그려 지는 듯하다.

이곳 역시 조선 시대 가사 문학의 본 고장이다. 특히 근처에 있었던 송순 김인후 김성원 백광훈 등 시대의 대 문장가들이 함께 있었으니 남도 문학의 전성기를 맞았 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환벽당을 둘러 보는 사이 세상 근심을 잊고 환하게 웃고 즐기 던 선비들의 모습이 떠 오랐다.

돌 담 밑에 부끄럽게 자라 난 들국화 한 송이 마저도 정감이 간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빛고을 광주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진 광주 기념물 제 1호 인 환벽당을 찾아 보고

숙여한 마음마저 들었다.

비록 넓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자연과 어울리기 위한 환벽당의 세심한 배려를 보면서

작은 들풀 하나 하나가 환벽당을 닮아 환하게 웃음 짓는것 같아 미소를 머금고 환벽당을 떠나

다시 삶으로 향한다.

 

                                                                     시민블러그 기자 하 성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