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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라 광주/문화와 예술

[광주광역시] 오늘은 발레리 시집가는 날

 

하늘이 잔뜩 장맛비를 머금은 토요일 오전, 무등산 운림제는 아침부터 잔칫집 분위기로 들썩입니다.

오늘은 하늘에서 점찍어 준 두 선남선녀의 혼례식이 펼쳐지는 날입니다.

간간이 약한 비가 흩날리긴 했지만 결혼하기 딱 좋은 날입니다.

연지곤지를 찍은 푸른 눈의 외국인 신부가 가마에 오르자 네 명의 가마꾼들도 긴장을 한 듯 혼례 전부터 연신 하늘을 보며 발을 땅에 콩콩 찍어댑니다.

 

 ▲한국 신랑 박지훈(34)씨와 프랑스 신부 발레리(26)양의 전통 혼례 시작 전

 

 파란 단령과 사모를 갖춰 입은 신랑 박지훈(34)씨는 행여 신부 발레리(26) 양이 피곤하지나 않을까 자꾸 가마 앞으로 와 기웃거리더니 숫제 가마 문을 열고 신부와 대화를 나누고 갑니다 

 하객들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가린 파란 천 사이로 새신랑의 미소가 가득합니다.

 오늘 같이 좋은 날 가마꾼들은 궁둥이를 크게 흔들며 들어오라는 진행자의 너스레에 하객들이 폭소를 터트립니다오늘은 프랑스 신부 발레리양이 한국 전통 혼례식을 경험하는 날입니다.

 

▲신랑의 입장 모습 

 

이들은 이미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기간인 9일 광주유니버시아드파크에서 열린 혼례 재현행사에서 공개 전통혼례를 통해 세계인들의 축복을 받은 커플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지훈씨와 발레리양이 한국에서 맞는 진짜(?) 백년가약 혼례식입니다.

▲혼례식장 이모저모 스케치  

 

▲신랑 부모님께 인사

 

 U대회를 찾은 외국인들에게 한국 고유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6년간 사귄 발레리 갈라시양을 설득해 유대회 전통 혼례 재현 행사에 동참한 후 치러지는 두 번째 전통 결혼식입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프랑스로 날아가 또 한번의 결혼식이 이어질 계획입니다.

 설명대로라면 이들은 올해 세 번이나 결혼하는 어마한 커플임이 분명합니다.

 

▲신부 손 씻기 (몸과 마음을 새로이 정화하는 의미입니다.) 

 

 먼저 주례사에게 절을 하고 깨끗한 물에 손을 씻어 잡귀를 없앤 후 신랑과 신부의 맞절을 시작으로 전통혼례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두 번째 결혼식이 익숙한 듯(?) 발레리 양은 손 씻기도 맞절도 실수 없이 곧잘 해냅니다.

신랑과 신부는 둘로 쪼갠 표주박에 따른 술을 마시고 감사 인사를 함으로써 혼례가 성사됨을 하객들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이어 성혼 선언문이 낭독되면서 이들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친지분이 읽어주는 성혼 선언문 

 

오늘 전통혼례식은 신부에게 기러기를 주는 전근례’, 신랑신부가 절을 주고받는 교배례’, 신랑신부가 술잔을 주고받는 합근례등 예법에 따라 충실히 진행되었습니다. 혼례 축하마당에서는 국악가요가 펼쳐지고, 결혼식에 초대된 외국인 지인들과 함께한 강남 스타일춤추기 깜짝 이벤트도 이어졌습니다.

 

▲신부 발레리의 친구들과 함께한 유쾌한 시간

 

 붉은 활옷과 족두리를 한 신부의 얼굴에는 의식이 진행되는 내내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외국인 신부가 더운 날 두 번씩이나 결혼허고, 고생허네

 ‘돈 내불면서 다이아 끼고 비싼 결혼식하면 뭔 소양이당가. 소박하게 전통혼례 헌게 월메나 좋아

 ‘결혼식 차말로 볼만 허네. 근디, 말도 안 통한디 어쭈고 만나서 뽀뽀했단가. 애기는 날란가?’

 하객들 사이에서는 외국인 신부를 걱정하는 이야기부터 수위를 넘는 짓궂은 대화까지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옆에서 모른 체 듣고 있으려니 어르신들의 대화에 쿡쿡 웃음이 나옵니다.

 습하고 더운 기운이 가득한 후텁지근한 날씨임에도 혼례식장 안은 웃음꽃이 가득합니다.

 원앙처럼 어여쁜 신부의 모습이 외국인 친구들에게는 참 부럽고 신기해 보이나 봅니다. 시종일관 카메라에 눈을 떼지 않고 촬영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눈치 빠른 진행자가 가만히 있을 수 없죠.

걸쭉한 입담으로 콩글리쉬까지 섞어가며 프랑스에서 건너온 하객들을 무대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틀어주니 모두 혼비백산!!!!

하객들까지 하나 되어 케이팝 스타가 만든 말 춤을 추면서 식장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신부 부모님의 눈물 

 

 신랑 신부의 가족의 인사가 시작되자 신부 아버지는 감춰왔던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소매로 닦아 냅니다. 그리고, 오늘의 신부이자 천사보다 고운 딸을 한참동안 안아줍니다. 저도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세상 모든 부모님 마음은 같나봅니다.

 

이 부부는 6년 전, 영국 유학 중에 처음 만났고 함께 수업을 받으면서 연인관계를 유지하다 오늘 드디어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혼례를 마친 뒤,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식 전통 결혼식을 치룰 계획입니다.

3번의 결혼식!!! 몸은 힘들겠지만 세계인들의 축복을 받은 복 많은 커플입니다.

 

▲ 하객들에게 닭 날리는 모습

 

마지막으로 두 마리의 닭을 멀리 날리며 전통 결혼식은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전통 혼례에서 닭은 아침을 상징하기 때문에 출발의 의미와 악귀를 쫓는 의미, 희망, 다산의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이제 아들 딸 쑥쑥 낳고 잘 살아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