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골목길
1965년 어느날 광주여고 주변
어느 무르익은 봄 날이거나 초여름 오후. 골목은 평화롭고 조용하다. 사진을 찍은 이가 누구인지, 왜 그곳에 주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골목길의 풍경은 여유롭다.
돈이 없는 아이들은 만화방을 기웃거리고, 무엇인지 모를 물건 파는 아저씨 좌판은 한가할 뿐이고, 양장점 앞 여인네들이나 그 앞을 지나는 멋쟁이 중절모 아저씨도 급할 게 하나도 없는 폼새들이다.
여유가 있다. 거리도 여유가 있고, 그곳을 무대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도 넉넉하다. 차림은 비록 화려하지 못하고, 분명 가진 것 없어 궁핍했을 60년대지만, 거리 표정에선 궁핍과 분주함, 삭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연출된 영화세트처럼.
아이들에 주목했다. 동무와 어깨 걸고 어딘가를 가는 녀석들, 만화방 앞에 제법 진지한 폼으로 전시된 만화를 들여다보는 아이들, 그리고 골목을 가득 메운 저 뒤편의 녀석들까지…. 요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학원 다니느라 놀 친구가 없고, 학원 주변 외에는 아이들을 구경할 수도 없는 요즘의 골목길 풍경과는 대조적이니 말이다.
1965년에 찍은 사진이니 지금으로부터 40년이 넘은 광주여고 앞길의 모습이다. 이 골목 주변은 지금도 아이들이 많이 다니기는 한다. 하지만 40년 전의 그 때 아이들과는 달리, 요즘 아이들은 동명동 일대에 즐비한 학원을 다니느라 어깨가 쳐져있다.
광주여고 앞 도로는 그 때나 지금이나 폭이 똑 같다. 그곳을 뛰놀던 아이들 외에 변한 것이라면 상가 건물들 뿐. 도로변 상가 건물들은 반듯해졌거나 조금 높아졌을 뿐이다. 한적해 아이들의 놀이터였을 거리는 자동차들이 차지했고, 사람들은 많아졌으나 모두들 바쁘기만 하다. 특히 사진 속 골목 뒤쪽은 지금, 공부만 하는 학생들이 득실거리는 ‘학원가’로 변해있다.
비록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어도, 적어도 골목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뛰고 구르고 장난치며 함께 크는 아이들, 그런 녀석들이 가득한 골목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옥렬_전대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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