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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여수,순천사건의 아픔을 간직한 보성문덕 천봉산 대원사-광주랑

여수,순천사건의 아픔을 간직한 보성문덕 천봉산 대원사

 

가장 아름다운 대원사 벚꽃길 끝자락 천봉산 자락에 위치한 대원사...

인터넷에 대원사라고 입력하고 검색해보면 지리산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대원사가 검색이 되지요

잘 정리되어었고 연꽃과 수련 좋은글귀 등이 사찰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대원사는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잘 정리되어었고 연꽃과 수련 좋은글귀등이 사찰내를 가득채우고 있는

대원사는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로서

503년(백제 무령왕 3)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신라에서 활동하던 아도가 백제에 사찰을 세웠다는 점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창건 당시에는 죽원사(竹原寺)라 불렀다고 합니다.

통일신라 때는 오교구산(五敎九山) 중 열반종의 8대 가람에

들었다고 하며, 1260년(고려 원종 1) 송광사 제5대 국사(國師)

천영(天英: 1215∼1286)이 사세를 크게 일으켜

대가람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이 때 산 이름도 중봉산(中鳳山)에서 천봉산으로 바꾸고

절 이름도 죽원사에서 대원사로 바꾸었다합니다.

대원사를 품고 있는 천봉산(天鳳山)은 해발 609m 로 보성,

화순, 순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원사는 백제 무녕왕 3년(서기50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경상북도 선산군 모레네 집에 숨어 살면서 불법을 전파하던

아도화상은 하룻밤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 말하였다합니다.

아도!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

어서 일어 나거라, 아도! 아도!” 하는 봉황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 봉황이 날개짓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봉황의 인도를 받아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는데

그곳에서 봉황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봉황의 인도로 목숨을 구한 아도화상은 3달 동안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을 헤메다가 마침내 하늘의

봉황이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내고

기뻐 춤추며 산 이름을 천봉산이라 부르고 대원사를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하였으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습니다.

1757년(영조 33) 불에 탄 것을 1759년(영조 35) 현정이 중창하면서

건물 16동을 복원하였고, 거느린 암자만도 상원암(上院庵)과

호적암(虎蹟庵) 등 12개나 되었다합니다.

 

 

1948년까지만 해도 10여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1948년 여수·순천사건 때 대부분 불에 탔습니다.

1990년 선원과 요사·일주문·주지실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릅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과 요사·일주문·주지실 등이 있으며

이 중 극락전은 1948년 여수·순천사건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을 때 유일하게 남은 건물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배흘림을 한 기둥이 주목되며

내부에 아미타불이 본존불로 모셔져 있고, 협시불은 오른쪽에만 있습니다.

왼쪽 협시불은 1950년 6.25전쟁중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하며

1981년 10월 20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된 뒤

1982년 해체 복원된 바 있습니다.

 

 

극락전 오른쪽에 있는 부도는 고려 때 이 절을 크게 일으킨

자진국사(慈眞國師) 천영의 부도로, 1973년 4월 21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총 높이 2.6m이다.

인근의 백민 미술관, 서재필 생가 및 기념공원, 주암호반,

그리고 고인돌 공원과 연계되는 교육문화탐방 루트가 있어

해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