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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라 광주/여행과 맛집

[전남나주] 나주 백호문학관 여행

 

 

 

 

 

 

전남 나주에는 백호문학관이 있는데요,

처음에는 백호라는 앞말만 보고 흰호랑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문학관이라니요?!!

조선시대 문인인 백호 임제선생의 평생 글들이 소장되어 있는

나주 다시면에 있는 백호문학관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보실게요!!

 

 

 

 

 

 

 

 

 

 

백호문학관 입구 밖으로 적토마 비석과 시구가 있었습니다.

 

 

수줍어 말 못하고

열다섯살 아리따운 아가씨

돌아와 겹문을 꼭꼭 닫고선

배꽃사이 달을 보며 눈물 흘리네

 

 

적토마는 백호의 부친인 절도사가 성인이 된 기념으로 준 적토마 형상으로

 백호선생은 평생 주유천하 할때나 변새 관직에 있을 때도 애마, 거문고, 장검, 옥통소와

함께 했다고 합니다. 적토마와 시구를 통해 백호 선생이 대충 누구인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글을 잘썼음으로 문인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적토마를 타고, 장검을 사용할 줄 알며 글을 벗삼아

옥통소를 연주할 수 있는 문무를 겸비한 감성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백호 임제 선생(1549~1587)은 조선의 문신으로 자는 자순, 호는 백호, 본관은 나주입니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을 지냈으나 선비들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다투는 것을 개탄하고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문장과 시에 뛰어났으며 조선이 중국의 속국과 같은 형태로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죽은 뒤 곡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저서로는 백호집과 사화가 등이 있습니다.

 

 

 

 

 

 

 

 

 

백호문학관은 처음에는 나주 여행을 하다가 잠시 둘러볼까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외부의 글이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였습니다.

2층 전시실에는 백호임제선생의 친필들 수십점이 있었는데요, 글씨체가 부드러운 작품도 있고

나무분재처럼 생긴 작품, 부드러우면서 강한 필체가 느껴지는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백호선생의 일화로 35세의 나이로 평안도도사로 부임되어 개성을 지나던 중,

개성3절인 황진이 묘에 제사를 지내다가 후에 탄핵을 받아 술과 시로 주유하였습니다.

엄격한 유교국가였던 조선시대에 황진이 묘를 찾아 제사를 찾은 것은 양반으로서의 권위가 아닌

그의 타고난 예술가적 기질과 세상에 대한 비탄이 황진이와 말을 해보고 싶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 의 시 속에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더불어 자유로운 표현력도

많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청호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홍안은 어듸 두고 백골만 무첫나니

잔 자바 권 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 하노라

 

 

- 백호선생이 황진이 묘 앞에서 읊었다는 시

 

 

 

 

 

 

 

 

 

백호문학관 2층 정문에는 울림석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백호공 부친이 제주목사를 마치고 귀향길에 녹봉으로 받은 곡식을 어려운 백성에게 나누어주고

배가 가벼워지자 돌을 가득 싣고 고향 회진 풍호 나루로 돌아와 제주도민이 그 선정과 청렴을

기리기 위해 청정비를 세워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공직자뿐만 아니라 사회의 지도자들도 백호선친과 같이 국민들에게 선량하고 베풀 수 있는

청렴의 정신을 본받았으면 합니다.

 

 

 

 

 

 

 

 

 

 

 

유언

 

주위의 모든 나라가 황제라 일컫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중국에 속박되어 있으니

내가 살아 무엇을 할 것이며 내가 죽을 들 무슨 한이 되랴 곡하지 마라

- 나주 임씨 세승에서

 

 

 

 

임제선생의 유언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요,

문인의 기질 속에 강한 대장부의 기질이 유언에서 느껴졌습니다.

 

백호문학의 평가는 다양한데요, 시라는 것은 개인의 감정, 경험에 따라 느끼는 점들도

각각 다른 것 같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것 같습니다.

영산호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백호문학관에서 시한 수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