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겨라 광주

전국 블로그 기자단 및 SNS 서포터즈 <제주 4.3 바로 알기>

지난 22일, 전국 각 지역에서 모여든 블로그, SNS, 기자단 54명이 제주 4.3 바로 알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 직원이 미리 나와서 54명의 기자단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붉은색이 아름다운 동백꽃은 꽃이 통째로 떨어지면서 지게 되는데요. 제주 4.3에서도 무고한 국민들이 동백꽃처럼 희생되었다는 그 역사적 사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널리 알리기 위한 사명을 띤 전국 블로그, SNS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청 4층 탐라홀에 제주 4.3에 대해 바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김종민 강사의 제주 4.3 바로 알기 역사 교육이 있었는데요. 영상 자료와 함께 자세한 해설을 곁들여 주는 강의로 기자단 모두가 제주 4.3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 영상과 교육을 통해, 제주 4.3 사건이 1947년 3월 1일에 시작되어 1954년 9월 21일까지 약 7년 7개월 동안 일어난 무력충돌로써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약 30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여 근 10%에 달하는 무고한 주민 약 3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끔찍한 일이 발생된 지 반세기 만에 2000년 1월 12일 김대중 정부에서 드디어 제주 4.3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며, 그로부터 제주 4.3 이 국가적 차원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5.18의 아픔이 있는 광주와 비슷한 모습이 많아 유독 마음이 아팠습니다.


비록 기억하고 싶지 않은 슬픈 역사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기억함으로써 다시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진리와도 같은 것입니다.
_박명림 작가 '전쟁과 평화'

가슴 아픈 역사를 기억하면서 두 번다시 이러한 일이 없어야 하겠죠.


 

교육이 끝난 후 평화 공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평화공원 내에는 오는 4월 3일 제주에서 진행될 4.3 희생자 70주년 행사에 대한 안내가 있었는데요. 제주에 방문할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제주 평화공원에 방문하여 제주 4.3에 대해 알아보는 건 어떨까요?


평화공원 중심부에 세워진 위령탑입니다. 오름 분화구를 형상화했다고 하는데요. 4.3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하기 위한 인간의 어울림을 표현한 상징성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제주 4.3 행방불명 희생자 위령단입니다. 무려 3,800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무고한 국민들의 희생이 이렇게 많았다니 5.18의 아픔과 너무나도 흡사하여 이러한 아픔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봅니다.


일본군들에 의해 완전히 요새화되었다는 제주도는 해안가 곳곳에는 특공 기지가 설치되고 비행장을 만드는 일도 추진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제주 주민의 남자들은 강제 노역에 시달렸으며 여성들은 공출에 큰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나라는 정말 아프고 서러웠네요.

각 지역에서 희생되신 분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인명피해 지도인데요. 그저 보기만 하여도 가슴 아픈 먹먹함이 밀려옵니다.


'큰넓궤'를 향한 길은 제주의 봄날이 내려앉은 따뜻한 길이었는데요.


20분 정도를 걷다 보니 4.3유적지인 큰넓궤에 도착하였습니다.


큰넓궤는 약 180m 길이의 자연 동굴인데요.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연적인 동굴인 '궤'를 발견하여 몸을 은신하기 위해 120여 명의 동광리 사람들이 70일 동안 이 동굴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입구는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 안쪽에는 큰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넓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요. 동광리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큰넓궤' 동굴을 체험해보았습니다. 어둠컴컴한 동굴을 거의 엎드린 포복 자세로 180m를 기어 들어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 동광리 주민들의 삶을 체험해보고 느껴보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굳게 다져봅니다.


동광리 사람들에게 70일간의 은신처였던 큰넓궤 탐방을 마치고 다음 탐방지인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11살 때 4.3사건을 겪으셨다는 홍춘호 할머니는 현재 제주 4.3역사 해설사로 활약하고 계시는데요. 할머니의 4.3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은 빈 마을 터만 남아있는 무등이왓 마을의 지독한 학살 현장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무등이왓 마을에는 최초 학살 터가 있는데요. 1948년 11월 15일 광평리에서 무장대 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온 토벌대들이 동광리에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토벌대는 소개령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주민들을 무등이왓에 집결시켜, 주민 10여 명을 호명하면서 팔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구타했다고 합니다. 좀 덜 맞아 육신이 온전한 사람들은 도망을 쳤지만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총살을 당했다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옛날 선량한 수많은 양민들의 학살터 답지 않게 지금은 빈 집터에 따뜻한 햇살을 비추며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요. 지금은 따뜻해 보이는 곳이지만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는 곳이죠.


 

다음 목적지로 향해볼까요? 동알오름을 오르는 산길에는 말들이 풀을 뜯어먹는 제주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여주었는데요. 끝까지 오르고 나니 설경의 한라산과 아름다운 제주 바다가 펼쳐졌습니다.


셋알오름 일제 고사포 진지를 향해 출발해봅니다!


이 고사포 진지는 일제 강점기에 알뜨르 비행장을 미군 항공기 공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세운 군사시설이라고 하는데요.


해방되기 직전에 설치된 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5기의 고사포 진지 계획이 있었다고 합니다. 4기는 완성되고 1기는 미완성 상태였는데요.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군사시설의 하나로 태평양 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이 제주도를 저항기지로 삼으려고 했던 증거를 보여주는 시설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셋알오름 유적지입니다. 위에서 총으로 쏘면 이 웅덩이로 사람이 툭툭 떨어졌다고 하는데요. 무고한 제주도민들을 학살하였던 곳... 당시 비참했던 양민 학살 터 셋알오름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고한 제주도민들의 희생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아픈 역사를 가져야 했을까요.


5.18의 아픔이 있는 광주 역시 제주 4.3과 비슷한 역사에 더욱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었는데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 역사가 주는 아픔과 깨달음을 가슴속에 새겨 봅시다!


차마 눈과 귀를 열어 듣고 보기 어려운 참상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4.3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역사를 가슴에 새기고 이제 우리 블로그 기자단이 4.3에 대해 널리 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