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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충사

고경명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우 포충사- 광주랑 고경명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우 포충사- 광주랑기나긴 조선 5 백 년의 호남 사상과 호남의 기질을 살펴보면 각인되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국난을 당하자 과감히 칼을 든 시인 고경명 장군이다. 아름다운 시문으로 일찍이 문장력을 인정받은 60세의 노선비가 임진왜란 이라는 국난에 즈음하여 농민과 함께 힘차게 북을 울리고 의기를 휘날려 왜적에 대항하자 그를 따르는 젊은 의병들이 피가 끓어 넘쳤다 이런 고경명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우가 포충사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자리한 포충사는 1606년 선조가 친히 고경명에게 '포충'이란 액호를 내리고 뜻을 기리게 하면서 만들어졌다. 1978년 포충사를 호남의 대표적인 호국성지로 육성하려는 정부의 지원에 의해 신사우인 유물전시관, 내삼문.. 더보기
임진왜란 당시 의병 5명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 - 포충사 [광주랑] 임진왜란 당시 의병 5명의 충절을 기리는 서원 - 포충사 [광주랑] 포충사는...1974년 5월 22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호남지방에서 최초로 의병 7,000여 명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1593년 8월의 금산싸움에서 전사한 고경명(高敬命)과 그의 두 아들, 종후(從厚)·인후(因厚)의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안영(安瑛) 등 5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입니다.포충사는 1865년 대원군이 전국의 서원을 정리할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폐쇄되지 않았던 전라남도 지방의 2대 서원 가운데 중 하나입니다. 지나오던 길에 '빛고을공예창작촌'이 있던데 다음에 이곳을 한번 방문해 보겠습니다. 예전에는 1차선의 아주 작은 지방도로 였습니다.새로 다져진 길은 넓고 좋.. 더보기
호남인물열전_ '의병장' 고경명 ▲의병장_ '고경명' 선생 진미: 고경명, 고종후, 고인후와 유팽노, 안영!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7천 의병을 일으킨 충절들의 사당 산해: 캬~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대촌들녁이다. 고경명(1533~1592)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의병장이다. 자는 이순, 호는 제봉, 시호는 충렬 이다. 중종 28년 광주 압보촌에서 출생 ~ 선조25년(임진왜란 발생) 금산 전투에서 순절 26세 때인 명종 13년(1558)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호조자랑 기용 후 성균관 전적이 되었으며, 이후 사헌부 지평/홍문관 교리/순창 군수/승문원 판교 등을 거쳐 59세로 동래 부사직에서 물러나기까지 내외의 많은 관직을 역입하였다. 그 사이 성산의 식영정 등을 무대로 많은 문인들과 교유하여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김인후/기대승 정철.. 더보기
만화로 보는 광주: 산해와 진미의 '광주의 아름다운 8경' 만화 : 박영철 작가님 만화로 보는 광주: 산해와 진미의 '광주한정식' 만화로 보는 광주: 산해와 진미의 '오리탕' 만화로 보는 광주: 산해와 진미의 '송정떡갈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