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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가

[광주광역시] 송구영신 광주전통문화관 송년음악회(2013.12.28)-광주랑 전통문화관 송구영신 기원 송년음악회(2013.12.21) 광주전통문화관에서는 한해를 보내는 송구영신(送舊迎新)기원 송년음악회가 열렸다. 무등산 국립공원 자락의 진입로에 위치한 광주전통문화의 산실이다 전통문화관은 2012년 2월 개관한 주말 토, 일 상설공연으로 무등산국립공원 입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아 무등산을 찾은 많은 시민들에게 큰 호응 속에 공연이 실시되고 있다. 광주시 광주문화재단에서는 전통문화관에 무형문화재 전승, 보존 및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목표로 전통국악공연 및 문화혜술행사, 무형문화재 전승, 전수교육을 실시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전통문화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통한옥으로 지어진 서석당의 공연장에는 차가운 날씨에도 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가뜩 메웠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는.. 더보기
[문화수도 광주/예향 광주]제21회 임방울 국악제 전야제 판소리 명창 임방울 선생을 기리고, 새로운 명창을 발굴하는 `제 21회 임방울 국악제 전국대회`가 오늘부터 나흘간 열립니다. 저는 전야제가 열리는 날 갔습니다. 마침 이슬비가 내리는데 가뭄해갈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첫무대는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에 김광복님의 지휘아래 피리협주곡이었습니다. 김광복님은 여러방면에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사진을 카메라로 300장 정도 찎었는데, 날려먹고 스마트 폰으로 찍은 사진을 사용하는데 이 사진은 빠져 있네요. 이 날 사회는 국악인 박애리씨가 봐 주셨습니다. 사회를 보면서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에 맞혀 ‘날이 갈수록’이라는 창을 불려 주셨습니다. 고향이 목포 시라네요. 작년 광주세계아리랑축전 때 팝핀현준씨랑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보고 다시 보네요. 다음은 임방울 .. 더보기
[광주공연] 26일 전통문화관 광주예술고 개교 30주년 특별공연‘동백, 선하다’ - 광주랑 [광주공연] 26일 전통문화관 광주예술고 개교 30주년 특별공연‘동백, 선하다’ - 광주랑 요즘 저 토요일에는 무등산에서 살고 있어요.차세대 인재들의 젊은 국악한마당26일 전통문화관 광주예술고 개교 30주년 특별공연‘동백, 선하다’지역 전통음악의 맥을 이어갈 차세대 국악인재들의 무대가 펼쳐진다. 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은 오는 26일 오후 3시 서석당에서 열리는 토요상설공연에서 이 지역 대표 전통문화 인재양성의 요람인 광주예술고등학교 개교 30주년 특별공연 ‘동백, 선(宣)하다’를 선보인다.예술고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꾸미는 이번 공연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기던 대표적 예술성악곡인 ‘경풍년’을 첫 무대로 선보인다. 경풍년은 가곡에 뿌리를 둔 음악으로 주로 노래 없이 향피리, 대금, 해금, 장구, 북 등 삼현.. 더보기
빛고을국악전수관 '정주희의 김세종제 춘향가' - 광주랑 빛고을국악전수관 목요열린국악한마당 무등산에 첫 눈이 내렸던 11월15일(목) 저녁7시, 서구 빛고을국악전수관 공연장에서는 정주희님의 판소리 '김세종제 춘향가' 그 첫번째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판소리는 발생 당시에는 한 마당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하여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그 수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성없는 이야기 소재와 소리가 점차 길어지면서 충, 효, 의리, 정절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만이 보다 예술적인 음악으로 가다듬어져 오늘날 판소리 다섯마당으로 정착되었습니다. 공/연/소/개 판소리 춘향가 중 김세종제 .. 더보기
전철경보음 '쑥대머리'를 기다리며... 한 시대를 풍미하며 흔적을 남긴 이들이 흔하지 않지만 그런 명사들 중에서도 자신의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고 민족의 아픔에 참여한 이들은 오천년의 역사를 거슬러 보아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소리꾼 임방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의 일대기가 영화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죽기까지 민초들의 한을 보듬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자신의 모든 것으로 여겼던 소리를 통하여 그들과 위로를 나누었던 예술인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시대를 조금만 거슬러가도 소리꾼들의 사회적 처우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임국창은 소리의 삶을 자신의 전부로 받아들이고 소리의 완성을 위하여 게으르지 않았으며 또한 소리꾼으로서 명망을 얻었음에도 세상 영화를 탐하지 않음은 물론 화려한 무대가 아니어도 어디에서든.. 더보기